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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콤쌉쌀 Mar 21. 2024

이 따위 사랑. 나만 바보

너랑 나랑 너무 다르잖아, 그 무게가

너무 화가 나고 억울하다. 몸과 마음을 더럽혀 온 남편 때문에 나는 마음이 너무 어질러져 버렸다. 자존심 상하게, 의심하는 여자가 되었다. 사랑에 불안해하고, 남편의 사랑을 의심하고, 행적을 의심하고, 불안에 벌벌 떠는 바보 같은 여자가 되었다. 내가 왜…….  너 때문에…….


남편이 회사 생활로 너무 스트레스를 받고 힘들어했다. 20년을 훨씬 넘게 봐왔지만 본인이 해야 할 일에 대해 그렇게 힘들어하는 건 처음 봤다. 그러던 어느 날, 종종 가족여행도 함께 갔었던 친한 형이 베트남에 나가는데 자기도 함께 가겠다고 했다. 그래, 그렇게 힘든데 며칠이라도 마음 맞는 사람과 현실과 떨어져 있다 보면 힐링이 되겠지. 정말 쿨하게 다녀오라고 했다. 재미있게 잘 놀고 오라고.

그 '재미'가 나와 달랐던 걸까? 아니면 수시로 해외에 혼자 나가는 그 지인이 재미있고 좋다 하니 현혹된 걸까? 아니면 평소에 은근히 그래보고 싶었을까?


내가 자라온 가정환경은 늘 불안하고 다툼이 이어졌지만 그중에 그래도 나는 사랑을 많이 받았다고 생각한다. 다정한 말이나 따뜻한 손길은 없었어도 언제나 나는 믿어주셨으니까. 데이트 폭력을 행사했던 그놈도 지나치게 내 생각에 빠져 자기 세상을 만들었던 거지, 이렇게 내 존재 자체를 무시하진 않았다. 오히려 반대여서 문제.

남편이 여행을 준비하며(?) 성매매를 하고자 마음을 먹었을 때, 나 몰래 계획을  때, 여자를 고를 때, 방에 들어가 씻을 때, 또 그 이후에. 얼마든지 선택을 되돌릴 수 있는 기회들이 있었다. 그런데 그 모든 순간에 남편은 나 아이들을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내 존재가 사라져 버렸다. 버림받았다.

그 사실을 알고 난 뒤, 나는 인생에서 제일 크게 좌절하고 화가 나고 슬펐다. 내 인생이 다 무너져 내린 것 같았다. 내가 23년을 사랑앞으로 함께 할 행복한 미래를 꿈꿨던 사람이, 나의 지난 23년과 기대했던 미래를 다 무너뜨린 것 같았다. 가슴이 터질 것 같았지만 너무 창피해서 내 답답한 마음을 누구에게 말을 할 수도 없었다.

시누이에게 문자를 했다. 대략적인 내용을 간추려서. 시누이는 대노했다. "너 같은 애를 두고 그 XX는 왜……."

며칠을 더 생각하니, 나 볼 때마다 '넌 어떻게 이런 남편을 만났냐, 복도 많다.' 하는 시어머니, 이걸 알고도 그런 말이 나올지 묻고 싶었다. 어머님께 말씀드리겠다고 시누이에게 말을 했더니 어느새 시누이가 나 대신 전달을 했다. 내가 말씀드리면 충격받으실까 걱정이 됐겠지. 다음 날 시어머니에게서 남편에게 전화가 왔다. 용산역으로 가는 중이니 나오라고.

난 만나자마자 역정을 내 남편을 혼낼 시어머니의 모습을 상상했다. 그런데, 조금 어색한 분위기에서 함께 점심을 먹고 차를 마셨다. 그러더니 은근슬쩍 얘기를 꺼내신다.

"어쩌려고 그런 거를 했냐. 애들이 알면 어쩌려고 그러냐. 상처받은 마음은 평생을 간다." 

남편은 작은 목소리로 "이젠 안 그래요.".

"너는 이○균 얘기도 못 들었냐.  그런 데 다니다가 마약하고 그러는 거다. 그런 데 가지 마라.",  "왜 책 잡힐 일을 했냐."

뭔가 전개가 이상한 그 다정한 타이름이 전부였다. 남편이 자리를 비우자 어머님은 정말 하고 싶던 말씀을 하셨다.

"이번 한 번은 우리가 용서해 주자. 한 번 그러겠지, 또 그러겠냐? 그리고 니가 자꾸 얘기 꺼내면 싫어하고 그만하라고 할 테니까 자꾸 말하지 마라."

"느그 둘이 있는 일은 둘이서 해결해야. 내가 니들 일까지 신경 써야 쓰겄냐."

그래, 안 그래도 아들이라면 끔찍하신데 편을 드셔야지. 그게 맞지, 엄마로서는. 그런데, 용서하고 말고는 나의 몫인데 시어머니께서는 이미 용서하고 오신 모양이었다. 나에게 용서하라고 하시면 언제나처럼 "네." 할 줄 아셨겠지. 그저 아들이 책 잡힐 일이 생겨버린 거고, 이상한 데 휘말릴까 봐 그 걱정이 되신 거지. 거기다 이게 그냥 둘 사이의 일?


전에 예약했던 시누이와 어머님의 건강검진이 며칠 뒤로 잡혀 있었다. 서울에서 고 싶다고 하셔서 우리 집에 검진 하루 전에 오시기로 되어 있던 일이다. 용산에서 만난 지 2,3일 뒤에 다시 전화가 왔다.

"넌 아직도 마음이 그러냐? 언제까지 그럴래? 잊어야지."

나는 그 사실을 알게 된 지 이제 막 2주쯤 지났을 때였다. '아직도'... 언제부터가 '아직도'에 포함되는 걸까. 이미 잊었어야 할 일일 뿐인데, 내가 미련하고 뒤끝이 길어서 아직도 마음이 힘든 걸까.

어머님 말씀이 이어졌다. "이번에 서울 갈 때, 아롱이 다롱이(시누이의 딸들)도 같이 가겠다고 신나서 짐을 다 싸놨는데 어쩔까, 같이 가서 있다가 올까? 어쩌고 싶냐?"

아, 그럼 시부모님에 시누이에 조카 둘이 오는 건데, 어쩌면 아주버님도 오시겠구나. 한 10초쯤 말이 안 나왔다. 나도 고민이 됐으니까. 정신줄 겨우 잡고 살고 있는 이런 상황에 시댁식구 우리 집에 총출동이라니. 놀러 온다니……. 그 10초 후에, "네, 그러세요. 오세요." 했다. 아직 안 살기로 정한 건 아니었으니 헤어지기 전엔 그냥 지금까지처럼 살자 싶었다.

그런데 두어 시간 뒤에 다시 전화가 걸려왔다.

"건강검진 다 취소했다. 안 갈 테니 그렇게 알아라."

"어머님, 왜요?"

"그럼 어떡하냐! 니가 오라 말아라 확실히 대답을 하는 것도 아니고, 내가 서울 가면 어디서 잠을 자냐?! 안 간다!  너도 그냥 설에 오지 마라. 심난한데 설은 무슨 설이냐."

"그냥 다시 접수하고 오세요."

"아이, 싫다. 안 간다. 너도 오지 말고 쉬어라. 오지 마라, 오지 마."

"네, 그럼 그러세요."

하, 지금 이 상황은 내 탓인 거구나. 본인 아들 잘못으로 이 지경이 된 건데, 건강검진에 조카들 데려오는 문제로 10초 고민했다고 서울까지 오시는 시어머니 내쫓은 며느리가 됐구나. 어쩜 사고가 이렇게 흘러가지?


내 마음 더 어지러운 지옥이 되었다. 불난 데 기름 붓는 정도가 아니라, 지옥불에서 못 나오게 내 머리를 짓이기는 기분이었다.

남편은 날 지옥 끝으로 떨어뜨렸고, 시어머니는 그런 나에게 흙 한 삽을 부으셨다.


그런데도 한심하게 나는 남편이 좋다. 정말 미치겠다. 이런 배신을 당하고도 사랑이라는 감정이 나에게 아직 남아 있다니, 사랑이 떠나갈까 봐 노심초사하는 바보천치가 되었다니, 스스로도 정말 이해가 안 된다. 내 여동생의 일이었다면, 언니의 일이었다면 나는 무슨 말을 해줬을까. 이 상황에 왜 난, 이 남자가 좋을까. 이 나쁜 놈이 대체 뭐라고.

자존심이 상하고, 분노가 일고, 슬픔이 나를 눌러서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하지만 아직 내가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헤어지는 게 답일지 아닐지 결정하지 못한 이상 (결정이라는 걸 제대로 내릴 수나 있을까.) 아이들에게도 티를 내서는 안되고 친정에도 여전히 사이좋은 부부, 착한 사위로 보여야 한다.  아이 아빠이고 나의 남편이니까. 내가 계속 이렇게 살 수 있을까 순간순간 흔들리지만, 아무런 결정이 안 되는 지금은 그저 이를 악 물고 산다. 행복한 표정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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