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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2년째 13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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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어진 Nov 14. 2024

애플보이

<2년째 13살> (4)애플보이



저에겐 학생들의 이름을 제멋대로 바꿔부르는 건방진 습관이 있습니다.

노래를 잘 부르면 쏭

이름이 훈으로 끝나서 후니

허지웅을 빨리 말하면 허즁

대체로 이런 식입니다. 대충, 가볍게, 별 뜻 없이, 지어 부릅니다.


몇 번 마음대로 부르다보면 입에 익어서, 습관적으로 별명을 부르게 됩니다. 제가 하면, 아이들도 따라하고, 그렇게 그 아이는 1년 내내 별명으로 불리우게 되는..불가항력적인 일이랄까요.


별명은 주로 남학생들에게만 지어줍니다. 13살 여학생들은 아무리 친해져도 한창 예민할 나이라 감히 별명을 만들어 부르기가 겁이 서요.


그런데 올해 13살 중, 남학생인데도 불구하고 별명을 만들어주기가 겁이 나는 친구가 한 명 있었습니다.

여학생도 아닌데 머리가 여학생 보다 긴, 리즈시절 안정환이 떠오르는 친구입니다. 무려 2년동안 머리를 안 잘랐다는 아이. 부모님이 제발좀 자르라고 해도 한사코 길렀다는 개성 있는 아이에요. 


그 아이는 많은 것에 무심해보였어요. 재미있는 놀이를 해도 특별히 관심을 보이는 기색이 없었죠. 무기력해보이기도 했습니다. 표정이 디폴트인 그 아이의 표정은 좋고 싫음을 읽기가 어렵다보니 다가가기 힘들었던 것 같아요.

 



모든 수업 시간에 무감각했기에 미술시간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그 아이는 보통 미술 2시간 내내 멍을 며 시간을 보냈어요.

"뭐든 좋으니 그려봐. 미술은 정답이 없어."

라고 말하며 아무리 어르고 달래도, 연필을 잡는 법이 없었죠.


그런데 어느 미술시간에는 연필을 잡고 도화지에 뭔가를 그리고 있더라구요. 제가 잔소리 하지도 않았는데 말이죠.

살짝 다가가서 보니 사과 3개를 그리고 있더라구요. 그것도 아주 허접한 솜씨로..ㅎㅎ

다른 학생이었으면 잔소리를 참지 못 했을텐데, 그 아이가 그렇게 그려놓으니 감탄이 절로 나오더라구요.

그리고 저도 모르게 냅다!

"이야, 애플보이 최고네!"

라고 질러버렸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너무 충동적이고 허접한 별명이 아니었나.. 반성하게 되지만요.


대담함도 잠시, 저는 어느 새 그 아이의 표정을 살피며 눈치를 보고 있었습니다. 그 아이는 제 속을 아는지 모르는지  무표정으로 일구요.

'좋은 거야, 싫은 거야. 어휴 이제 다시는 그렇게 안 불러야지.'

머쓱함은 제 몫이었습니다.


며칠이 더 흘렀을까요. 아이들과 실과, 미술 통합으로 티셔츠 만들기 수업을 했던 날입니다.

티셔츠 앞면은 공판화 기법으로 디자인하고, 뒷면은 자유롭게 패브릭 마카로 디자인해보라고 시켰어요.

아이들은 후다닥 디자인을 하고 신나서 너도나도 자신이 디자인(낙서)한 옷을 입었습니다. 이 아이도 언제 완성했는지 티셔츠를 입고 있더라구요.


제 곁을 스쳐지나가는 그 아이의 뒷모습을 보는 순간. 저는 두 눈을 의심했어요.

아이가 티셔츠 뒷면에 '애플보이'라고 적어놓았더라구요.

그걸 보며 생각했습니다.

'귀여운 녀석.'

'그래도 13살은 13살이네.'

그리고,

'좀 친해졌나?'

  

저에게는 학생들의 이름을 제멋대로 바꿔부르는 건방진 습관이 있습니다. 앞으로 그 아이는 애플보이라고 불리울테죠.

쏭, 후니, 허즁, 제리, 누누, 그리고 애플보이.

오늘도 아이들과 한 발짝 더 가까워진 느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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