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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어진 Mar 18. 2024

너는 그렇게 나를 살찌운다.

이제는 네가 없이도 따뜻한 사랑을 먹는다.

 오늘은 네 생일이다. 작년에는 네게 연락을 해서 축하한다고 말했다. 재작년에는 함께 케이크의 초를 불었다. 그리고 오늘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그저 스쳐 지나간다. 너의 생일임을 알고 있지만 할 수 있는 것은 없다.

 너는 내게 요리를 알려주었다. 한 번도 내게 시킨 적은 없지만. 너를 보며 요리가 별 게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할 줄 아는 요리라고는 라면밖에 없던 내가 김밥을 말고, 제육볶음을 만들어 먹게 된 것은 네 덕분이었다.

 엄마를 떠나보내고, 집밥을 먹을 기회가 없던 나를 위해 너는 매일 요리를 해주었다. 처음에는 네가 살던 마산에 놀러 갈 때마다 맛있는 음식을 해주었다. 그다음엔 집에 가서 먹으라며 도시락 가방을 양손 가득 쥐어주었다. 그러다가는 우리 집에 와서 직접 요리를 해주었다.  

 너는 마산에 있던 투룸의 방에서 아주 많은 요리를 시도했다. 이 맘 때쯤엔 개학 기념 몸보신을 해야 한다며 삼계탕을 끓여주었다. 각종 재료와 함께 한 마리의 닭을 통째로 넣은 삼계탕. 자취방이라 냄비가 많지 않다며 네 몫은 웬 이상한 프라이팬 같은 용기에 끓이고, 내 것만 예쁜 냄비에 끓여주었다. 너무도 쉽게 휘리릭 끓인 그 삼계탕. 너는 처음 해본 것이라 말했지만, 나도 그렇게 맛있는 삼계탕은 처음이었다.

 너는 헤어질 때마다 양손 가득 도시락 가방을 쥐어주었다. 너희 어머니 표 반찬들을 단지 내가 좋아한다는 이유만으로 너는 한 입도 먹지 않고 그대로 내게 건넸다. 냉동실에 두고 먹으라며 직접 구운 쿠키를 한가득 담아주었다. 맛있으니 꼭 먹어보라며 값 비싼 감자칩이나 야채를 튀겨 만든 부각을 소분해서 나눠주었다. 어찌나 많이 주었던지 반찬통이 모자랄 정도였다. 그러면 나는 1~2주일 동안은 너를 생각하며 그 음식들을 먹었다.

 너는 엄마가 전을 좋아하셨다는 것을 알고는 제사 때를 맞추어 우리 집에 와서 전을 잔뜩 구워주었다. 시장표 음식들만 올라가던 우리 엄마 제사상에 처음으로 직접 만든 요리가 올라갔다. 언니와 아빠께는 내가 만든 것이라 말할 수밖에 없었지만 사실은 솔직하게 말하고 싶었다. 이건 네가 어제 몰래 와서 만들어 놓고 간 거라고. 내가 만든 게 아니라 네가 엄마를 위해 만들어준 거라고. 하지만 언니와 아빠는 너를 몰랐기에 엄마에게만 몰래 털어놓았다. 이 전은 네가 다 만든 거라고.

 너는 그렇게 야윈 나를 살찌웠다. 나는 네가 해준 따뜻한 사랑을 먹으며 한 뼘 더 자랐다. 그리고 이제는 네가 없이도 따뜻한 사랑을 먹는다. 할 수 있는 요리라고는 라면밖에 없던 내가, 네가 해줬던 레시피 그대로 해 먹는다. 김밥에는 꼭 깻잎을 넣고, 제육볶음에는 꼭 어묵을 넣는다. 네가 내게 해줬던 그대로. 너는 그렇게 나를 살 찌운다.

 오늘은 네 생일이다. 알고 있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대신 마음으로나마 전한다. 400km도 넘는 먼 곳에 있는 네게 가 닿진 않겠지만 그래도.

 생일 축하해. 오늘 좋은 하루 보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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