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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경 호수 맥주

야장의 계절

by 이어진


봄의 첫 문단입니다.

추위를 많이 타는 츄워인간인 저에게는 훈훈한 봄기운이 고향처럼 반갑게 느껴집니다.

한편 더위를 지독히도 많이 타는 더워인간인 그는 벌써부터 반팔을 꺼내입었어요.

그런 그를 보며 유행어처럼 하는 말은 “설마 그게 다 입은 건 아니지?”, “안 추워?”, “외투 챙겨와.”이구요. 반대로 그가 하는 유행어는 “이거 입어.”입니다.

몸을 바꿔보지 않는 한 절대 이해할 수 없는 체온이기에, 아마도 우리는 평생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고 살겠죠. 조금 슬프고 많이 부럽습니다.


서두가 길었네요. 하고 싶은 말은 드디어 야장의 계절이 왔다는 것입니다.

야장. 어쩜 세상에 이런 단어가 탄생할 수 있었을까요. 글자만 보아도 심장이 떨리지 않으신가요. 제 심장에는 이미 팀파니가 연주를 시작했습니다. 당신의 심장에도 팀파니까진 아니더라도 작은북의 떨림 정도는 전달될 수 있길 바랍니다.


영상 15도. 숫자를 확인하자마자 바로 석촌호수로 쏴줬습니다. 치킨과 맥주는 단연코 최고의 선택이었고요. 최고의 낭만, 극강의 감성은 제 코피를 터뜨리기에 충분했습니다. “오빠, 행복은 멀리있지 않은 것 같아.”와 같은 낯간지러운 말이 절로 나오더라고요.

무라카미 하루키가 고작 위스키를 홀짝이며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한 순간. 인생이란 이토록 단순한 것이며, 이다지도 아름답게 빛나는 것이다.”라는 문장을 써낸 것을 납득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시기상조였던 것일까요. 혹독한 츄워인간에게 3월의 호숫가는 아직 추웠습니다. (맞은편에 반팔을 입고 앉아있던 그는 선선하다며, 이런 날씨가 딱 좋다는 망언을 날렸습니다.) 낭만이고 뭐고 추위 앞에서는 어찌 할 도리가 없었습니다. 목도리로 온 얼굴을 감싸고 담요로 온 몸을 감싸는 수 밖에요.

“버..버텨…버티면 되는 거야.. 그러면 다 되는 거야…!”

제가 좋아하는 다비치의 강민경 언니 목소리가 귀에 맴돌더군요.


차가운 맥주를 들이키자 몸이 사시나무 떨리듯 바들바들했습니다. 그러면서도 생각했습니다.

“야경 호수 맥주”

이것은 어쩌면 그 조합 자체만으로 관형사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유의어로는 “낭만적”이 될 수 있고, 반의어로는 “실용적”이라든지 “현실적” 같은 것들이 될 수 있지 않을까?

네…3월에 이 무슨 비실용적이고 비현실적인 짓을 하고 있냐고 하실지도 모르겠습니다. 그것도 츄워인간이라고 자백한 주제에 말이죠.


하지만..

좋잖아요, 한 잔 하시죠.

야장은 그런 힘이 있는 것 같아요. 무장해제 되어 버리는. 속수무책이 되어 버리는. 도저히 하지 않고는 이 계절을 즐겼다고 할 수 없는 통과의례같은.

그러니까 우리 올 봄에는 “야경 호수 맥주”한 시간을 보내보면 어떨까요.

장소는 한강이 좋겠군요. 석촌호수도 나쁘지 않습니다. 아쉬운 대로 집앞 편의점도 훌륭한 대안이 될 수 있겠네요.

뭐든 좋습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야경이 멋진 호수에서 맥주 한 잔 시켜두고 “야경 호수 맥주”한 시간을 보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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