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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3년째 13살

파이팅!

<3년째 13살>

by 이어진


아침부터 거울을 20분동안이나 들여다 봤습니다.

부족한 손기술로 화장을 하고, 머리를 마느라 말이죠. 게다가 데이트 날이 아니면 입지 않을 핑크색 원피스에 자켓까지 걸쳐주었어요.

평소 우당탕탕인 민낯과 휘뚜루마뚜루한 디자인의 후드티를 입고 출근하는 제가 무슨 날이길래 그랬는가! 하면 학부모총회 날이었기 때문입니다.


사실 잠도 조금 설쳤습니다. 말하기 부끄럽지만, 벌써 7번째 총회이고 학부모님은 고작 3명밖에 안 오시는데도요. 불필요한 긴장이었음을 압니다. 그런 긴장은 나를 소모시킬 뿐이라는 것도요. 하지만 알면서도 뜻대로 안 되는 게 또 사람 마음이잖아요?


긴장감은 하루 내 지속되었는데요. 떨릴 때 떨린다고 말하면 모순적으로 떨림이 가라앉는 것을 경험한 적이 있어요. 이번에도 같은 걸 기대하며 아이들에게 앓는 소리를 했어요.

"악~~ 오늘 부모님들 오신다고 해서 너무 떨려~~"

"그렇게 떨려요?"

"응..완전. 소중한 너희들의 부모님이시잖아."

"얼굴이 빨개요!"

"떨려서 그래. 모르는 척좀 해줘~"


빈약한 잔머리를 굴려서 그런지, 아니면 역시 뜻대로 안 되는 게 사람 마음이라서 그런지 감정을 발설해도 효과가 없었습니다.






온몸에 전기가 통한 듯 빠릿!한 느낌으로 시간을 흘려보내다 보니 어느덧 총회 시간입니다.


똑똑.

뒷문이었습니다.

'아. 오셨구나.'

최대한 인자한 표정으로 갈아끼우며 답했습니다.

"네~"


빼꼼.

"쌤."

문을 살짝 열고 얼굴만 빼꼼히 내민 그 녀석은 우리반 13살이었습니다. 아까 제게 그렇게 떨리냐고 물었던 그 13살이요.

"응~ 재희야. 안 갔어?"

"파이팅!"

아이는 그러면서 귀엽게 하이파이브 표시를 지어보였습니다.

"아 뭐야~ 왜 감동인데~"

너털웃음을 지으며 이어 말했습니다.

"이제 부모님들 오신다. 재희 얼른 집에 가~"

"넹~"

그렇게 말하고 아이는 사라졌습니다. 뒷문에서도, 제 기억속에서도요. 잠시 피식 했던 것도 같지만.






온종일 긴장했던 하루. 많은 말을 듣고 많은 말을 뱉었습니다. 수업을 했고요, 3명의 학부모님과 쫄깃하고 깊숙한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재테크 유튜브를 들으며 운동도 했으며 제 마음 속 이야기를 쏟아내는 일기도 썼습니다.

하지만 하루의 끝에 남은 건 이상하게도.. 아까 기억속에서 지워버린 "파이팅!"뿐입니다.

빼꼼했던 13살의 파이팅..말이죠.. (역시 뜻대로 안 돼~)

좀 허무한데요. 괜히 피식 바람빠진 웃음이 나오네요.


마지막은 이 말로 끝낼 수 밖에 없겠습니다. 좀 허무하겠지만 바람빠진 웃음이라도 지어주시길.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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