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쌤 마니또 해요!”
“마니또! 마니또!”
“마니또 언제부터 해요?”
“마니..”
“알았어! 할게! 할게! 이제 그만!”
하. 며칠 전부터 아이들 사이에 마니또 하자는 민원?이 대폭발 했습니다. 평소 있는 듯 없는 듯 앉아있는 조용한 여학생까지 와서 설레는 표정으로 마니또 진짜 하는 거냐고 묻더군요. 상황이 이렇게 되니 마니또를 할 때까지 마니또 하자는 말을 듣게 될 것 같아 황급히 두 손 두 발을 다 들어주었습니다.
사실 그간 아이들의 원성을 무시해 온 데에는 나름의 합리적인 이유가 있는데요. 그건 지금껏 수차례 마니또를 진행해 오며 마니또 필패의 법칙을 (원치 않게) 알아버렸기 때문입니다. 마니또는 필히 망할 수밖에 없는데요, 그 이유는 아이들의 촉새 입 때문입니다.
“좋아요. 마니또 해 봅시다. 대신 이거 하나만 약속해요.”
13살들은 이럴 때(만) 눈에 불을 켜고 집중을 합니다.
“절대 비밀! 지키세요. 내 마니또든, 친구 마니또는 알려고 하지 마세요. 친구가 네 마니또 누구냐고 물어봐도 절대 말해주면 안됩니다. 들키는 순간? 소문나는 순간? 재미 없어지는 거예요. 다들 약속 지킬 수 있죠?”
“네!”
아이들은 ‘됐고, 빨리 뽑읍시다.’라는 눈초리로 서둘러 대답했습니다.
사실 알고 있었습니다. 제가 아무리 경고해도 아이들은 기필코 마니또를 밝혀내고 말 것이라는 것을요. 그로 인해 올해의 마니또도 필연적으로 실패하고 말 것이라는 것을요.
하지만 이렇게 빨리 망할 줄은 몰랐습니다.
마니또 시작 후 1시간이 지났을 때까지만 해도 괜찮았습니다. 비밀 쪽지를 필통 안에 숨겨두고 내 마니또가 언제쯤 발견할까 몰래 훔쳐보는 모습들, 그 기분 좋은 긴장감. 혹시나 마니또가 다녀갔을까 사물함, 서랍을 꼼꼼히 살피는 두근 거림과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했다는 아쉬운 마음들. 그러다 마니또의 흔적을 발견했을 때의 쾌감과 주변 친구들의 부러움 등등. 그런 감정들을 구경하고 있자니 이럴 줄 알았으면 진작 할 걸 하는 간사한 마음까지 들기도 했습니다.
문제는 2시간쯤 되니 역시나 정해진 수순을 밟더군요. 13살들은 FBI요원이라도 된 듯, 서로의 마니또를 찾고 찾아주며 마니또의 본질을 흐렸습니다.
“야 쪽지 가져와봐. 교실 뒤판에 있는 작품(시화)의 글씨체랑 비교하면 누군지 알 수 있어.”
“그렇네. ㅇ이랑 ㅅ 쓰는 방법이 똑같아!”
그런가 하면 마치 사랑의 오작교라도 되는 듯, 서로의 마니또를 귓속말로 알려주는 아이들도 있었습니다.
“야 내가 너 마니또 누군지 알려줄까?”
“에? 네가 어떻게 알아?”
“아까 네 필통에 쪽지 넣는 거 봤어.”
이런 식입니다.
얘들아 좀 제발. 그러면 재미없다고!
속으로 수십 번 외쳤지만, 차마 입 밖으로 내뱉을 수는 없었습니다. 생각해 보면 저도 그랬던 것 같아서요. 발신인이 표시되지 않은 비밀쪽지를 열어보고, 상대를 추측해 보고, 친구들과 둘러앉아 범인을 색출하고, 혹시 내 마니또가 정체를 알아챌까 두근거리기도 하는 과정들. 그것이 또 이 게임의 묘미이니까요. 녀석들의 마음이 뭔지 너무 잘 알겠으니까 말릴 수가 없겠더라고요.
몇몇 아이들이 와서 마니또 다 들켰다고, 누구누구가 제 마니또 다 소문내고 다닌다며 앓는 소리를 합니다. 아무래도 2주 후에 밝히자고 했던 계획은 다 틀어진 것 같습니다. 올해의 마니또도 또 그르치게 되겠죠.
하지만 한편으로는 13살들에게 있어서 마니또는 다 들켜버리고 마는 것이 오히려 그들에게 어울리는 결과이지 않나 싶습니다. 마니또를 도무지 궁금해하지 않고, 기필코 상대를 속이며, 비로소 2주 후에 깜짝하며 정체를 밝히는 것이 가능한 일일까요?
마니또 필패의 법칙은 모순적으로 필승의 법칙이 되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적어도 13살들에게는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