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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어진 Jul 07. 2024

맛 없는 떡볶이

 소녀는 평생 공부를 잘했고, 평생 책 읽기를 좋아했다. 요리와는 거리가 멀었다. 요리 솜씨가 빼어난 엄마와 외숙모가 늘 맛있는 음식들을 내놓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평생 연필과 형광펜만 쥐고 살던 소녀는 소년을 만나 결혼을 하였고, 처음으로 요리 비슷한 것을 하기 시작했다.     


 요리를 시작한 소녀는 각종 조미료를 혐오했고 그에 관해서는 타협이 없었다. 미원이나 다시다는 소녀의 주방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것이었다.

 모든 요리는 싱거웠다. 소녀의 미각은 유치원생이나 초등학교 저학년들과 비슷할 정도였다. 라면을 끓여도 한강 라면으로 끓이기 일쑤였고, 소녀는 그게 맛있는 거라고 생각했다.

 소녀는 몇 개의 요리를 연마하여 기간을 두고 반복적으로 내놓는 것에 능숙했다. 짜장면, 치킨, 피자 등은 밖에서 사 먹는 것이 맛있고 저렴하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었고, 애초에 도전해 볼 용기도 의지도 없었다. 



                   

 소녀에게는 말 안 듣는 둘째 꼬맹이, 희영이 있었다. 희영은 무엇이든 남들보다 맛있게 먹는 아이였다. 편식을 심하게 했지만 안 먹는 음식 빼곤 모조리 먹어치웠다. 여느 아이들처럼 짜장면, 치킨, 피자를 좋아했지만 계절마다 반복되는 소녀의 요리들도 불평 없이 잘 먹었다. 봄이면 직접 캔 쑥을 잔뜩 넣은 쑥 된장국, 장마엔 미나리와 시금치를 잔뜩 넣은 국수와 파전, 가을이면 고구마 맛탕, 겨울엔 수제비 등등등.     


 소녀는 희영을 이길 수 없었는데 그날도 희영의 조름에 못 이긴 날이었다.     


“아 엄마 제발! 떡볶이!”

“집에서 하면 맛없어. 차라리 나가서 하나 사와.”

“아아, 제발 한 번만 해줘!”

“그런 건 집에서 하는 것보다 사 먹는 게 훨씬 맛있다니까?”     


희영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날따라 희영의 똥고집이 끝나지 않을 것처럼 느껴졌다.     


“떡볶이가 어떻게 맛없어? 그냥 대충 해줘. 나도 엄마표 떡볶이 한 번 먹어보자! 응?”

“어휴, 얘가 오늘따라 귀찮게 왜 이래? 엄마 그런 거 못한다니까?”       


 소녀는 마지못해 냉장고를 열었다. 냉장고엔 지난 구정에 쓰고 남은 떡국떡이 조금 남아있었다. 다행이다. 만만한 반찬인 어묵볶음용으로 사두었던 부산어묵도 있었다. 야채는 양파만 넣어도 되겠지. 이 정도면 재료는 충분하다. 소녀는 별 수 없다는 듯 가스불을 켰다.                    


“희영. 다 했어. 나와서 먹어.”

“오예! 엄마 최고!”     


 희영은 한 입 맛보자마자 직감했다. 큰일 났음을. 떡볶이는 소녀의 다른 요리들처럼 싱거웠고, 조미료를 전혀 넣지 않은 탓에 고추장과 고춧가루 맛이 애매하게 났으며, 소스가 떡국떡에 배어들지 않아 생 가래떡을 먹는 것 같았다. 그건 떡볶이라기보단 떡볶이 향이 나는 떡국에 가까운, 애매모호한 음식이었다.     


 희영은 생각했다. 이 많은 걸 어떻게 다 먹지.     


 소녀는 희영이 조용한 것을 느꼈다. 희영의 표정을 살폈다. 소녀는 자신도 모르게 화가 치밀어 올랐다.

“집에서 하면 맛없다고 했지!”     


그러자 희영이 손사래를 저으며 황급히 대답했다.

“무슨 소리야, 엄청 맛있는데? 너무 맛있어!”

“이런 건 사 먹어야 맛있는 거야. 다음엔 무조건 사 먹어 알겠지?”

“에이 맛있다니까 왜 그래?”     


희영은 그렇게 대답하긴 했지만 갑작스러운 임무가 주어졌음을 느꼈다. 

미션 1. 맛없어도 맛있는 척한다. 

미션 2. 어떻게든 이 떡볶이와 비슷하지만 도저히 떡볶이라고 부를 수 없는 눈앞의 것을 다 먹어야 한다.               



 그로부터 몇 년이 지났다. 두 손가락을 다 접지도 못할 정도로 짧은 시간이었다. 그날의 그 미션을 다 완수했는지 어쨌는지는 아무도 기억하지 못했다.      


 희영은 소녀의 요리를 떠올리면 그 떡볶이를 가장 먼저 생각했다. 딱 한 번 먹어본 소녀의 떡볶이. 희영은 그 미션 같은 떡볶이가 어쩌면 소녀 요리의 아이덴티티가 아니었을까 하고 생각했다. 싱겁고 밍밍한. 조미료는 조금도 들어가지 않는. 희영은 그렇다고 확신했다.     


 희영은 그 떡볶이를 두 번 다시 먹을 수 없었다. 일정 기간을 두고 간헐적으로 반복되는 싱거운 요리들도 다시는 맛볼 수 없었다. 어느 가게를 가도 그런 음식은 찾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희영은 소녀의 음식을 평생 그리워할 수밖에 없었다. 그것은 희영에게 주어진 평생의 미션이라도 되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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