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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어진 Jul 12. 2024

한여름을 닮은 아이

 지웅이는 한여름을 닮았다. 청량하고 순수하며 맑다. 지웅이를 보면 마치 한여름 땡볕에 서 있다가 에어컨이 빵빵하게 틀어진 은행에 들어간 것 같은 '순간적으로 강렬한 시원함'을 느낀다. 아무리 옆반 선생님들이 "걔도 야동 봤을 걸요?"라고 말하며 지웅이의 순수함을 부정하더라도 나는 지웅이만큼은 그럴 리 없다고 단정 짓는다. 설사 그렇다 하더라도 그 아이의 순수함엔 조금의 스크래치도 낼 수 없을 것이다.


 지웅이는 늘 모호한 표정을 짓는다. 언뜻 보면 시큰둥해 보여서 보는 이로 하여금 감정을 파악하기 힘들게 한다. 하지만 나는 할 수 있다. 모호함 속에서도 감정을 읽을 수 있다. 그 표정은 높은 확률로 "좋음"이다. 나는 그 숫기 없는 아이와 몇 마디 대화를 나누지 않아도 좋음을 쉬이 찾아낼 수 있다. 


 지웅이는 장난기가 많다. 신체활동이라면 뭐든 다 좋아한다. 행동이 크진 않지만 활발함을 숨길 수 없을 정도로는 크다. 그리하여 이따금 실수를 한다. 친구를 피구공으로 세게 맞히거나, 수업시간에 옆 자리 남학생과 말장난을 주고받거나, 짓궂은 별명을 만들어 여학생을 놀린다. 그러면 억지로라도 지웅이를 혼낼 수밖에 없는데 그럴 때마다 지웅이는 느릿하고 낮게 깐 목소리로 "죄송합니다."라고 말한다. 변명이나 자기변호는 한 번도 덧붙인 적이 없다. 그리고 꼭 '죄'와 '송' 사이를 늘어뜨려서 말한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습관엔 자신의 행동에 대한 죄책감을 강조하려는 의도가 깔려 있지 않나 싶다.


 지웅이는 먼저 말을 걸어오는 일이 없다. 그런데 어쩐 일로 먼저 와서 말을 걸었다. 작년 일이다.

"선생님, 저 합기도 대회 나가요."

"정말? 너 그거 우승하면 선생님이 아이스크림 사줄게."

"아니에요."

지웅이는 그렇게 말하고는 뒤도 안 돌아보고 친구들에게 갔다. 한동안은 합기도의 합자도 꺼내지 않았다. 나는 어느새 합기도의 합자도 까먹었다.


 몇 주 뒤, 지웅이가 대뜸 와서 핸드폰 전원을 켜도 되냐고 물었다.

"핸드폰? 쉬는 시간엔 핸드폰 사용 안 되는데. 갑자기 왜?"

"뭐 보여드리려고요."

"뭐?"

"저 합기도 대회 우승했어요."

그리고는 "사랑하는 엄마"라고 저장되어 있는 사람에게서 온 카카오톡 동영상을 보여주었다. 그 영상 속 지웅이는 검은색 합기도복을 입고 이런저런 동작을 취하고 있었다. 


 지웅이는 그런 아이였다. 언제나 모호한 표정을 짓는, 잘못했을 땐 죄와 송을 늘어뜨려서 말하는, 13살 사춘기임에도 엄마를 사랑하는 엄마로 저장해 놓는, 선생님께 보여주려고 동영상을 찍어오는. 한여름을 닮은 아이.








 잠을 설쳤다. 밀려오는 회의감과 답답함에 허우적거린 밤과 새벽이었다. 간신히 몸을 일으켜 이불 정리를 했다. 할 수만 있다면 느지막이 12시쯤 일어나 진한 커피 한 잔을 내려 먹으며 여유를 즐기고 싶었다. 그러나 시간은 오전 8시. 조금만 늑장을 부리면 지각이다. 부랴부랴 운전을 했다. 다소 위험한 운전이었다. 눈을 다 떴는데도 반쯤은 감고 있는 것 같았다. 눈 밑 다크서클의 보라색이 시야를 반쯤 가리는 것과 비슷했다.


 학교에 거의 다다를 무렵이었다. 교복을 입은 남학생 무리가 내 차 쪽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나는 속도를 늦추고, 그들을 피하기 위해 핸들을 살짝 왼쪽으로 꺾었다. 그런데 교복 무리 중 한 명이 내 차에 대고 120도 인사를 했다. 나는 순간적으로 당황한 나머지 그 아이가 고개를 들 때까지 기다려서 얼굴을 확인한다든지, 창문을 열어 대답을 한다는 생각을 못했다. 마치 못 봤다는 듯 액셀레이터를 밟았다. 그러면서 백미러에 시선을 던졌다. 점점 멀어지고 있는 그 교복은 이제는 양팔을 머리 위로 들고 좌우로 휘젓고 있었다. 교복은 명백히 나를, 내 차를 알아본 것이다. 소멸할 듯 작은 그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가지런한 앞머리와 동그란 안경을 쓴 그 교복은 지웅이었다.


 나는 급속도로 시야가 맑아지는 것을 체감했다. 엔도르핀인지 도파민인지 사람을 기분 좋게 만든다는 호르몬이 뿜어져 나오고 있음을 직감했다. 미소가 절로 지어졌다.  "지웅이구나."하고 작게 혼잣말을 했다. 회의감, 답답함과 더불어서 정신을 지배한 졸음이 자취를 감췄다. 기분 좋은 하루가 될 것이라는 예감이 들었다.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 줄여서 소확행. 그동안 소확행 목록에 사람의 여지를 두지 않았다. 사람으로 인해 행복해지고 싶지 않았다. 그건 다르게 말하면 사람으로 인해 불행해질 수도 있다는 뜻이니까. 그러나 오늘은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지웅이로 행복해졌다.


 지웅이는 틀림없이 나를 잊을 것이다. 시험기간이라며 찾아오지도 않을 테고, 스승의 날이라며 새빨간 카네이션을 사들고 오지도 않을 것이다. 7일 중 5초는 생각해 줄까? 그렇지 않을 것이다. 

 나는 다르다. 나는 한여름이 오면 지웅이를 떠올릴 것이다. 앞으로 그 아이를 만날 횟수가 한 손가락 안에 들 것 같아도 말이다. 지웅이가 이 세상 어딘가에서 순수함을 오래오래 간직하고 있을 것이라는 사실, 그것으로 됐다. 


 어느새 한여름이 왔다. 지웅이도 함께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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