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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어진 Jun 30. 2024

별의 단상

1.

 천문학자를 꿈꿨던 적이 있다. 17살이었다. 22시까지 이어지는 야간자율학습을 무한 반복하던 고등학생에게 지구과학 시간은 일종의 도피처였다. 관동별곡과 일차함수, 관계대명사 사이에서 별, 은하수, 수소 핵융합, 팽창하는 우주는 시커먼 현무암 사이에 낀 다이아몬드와도 같았다.      


 ‘문과 갈 건데 지구과학을 이렇게까지 파도 되나.’ 불안감이 들 정도로 했던 별과 우주에 대한 공부는 내게 희망이었다. 아무리 어려운 고민도 고작 먼지 한 톨에 지나지 않는다는 생각. 그것이 나를 안심시켰다. 나를 위로했다. 일주일 남은 기말고사도, 요즘 들어 무뚝뚝한 친구들도, 거울만 보면 짜증이 절로 나는 이마의 뾰루지도 우주에 비교하면 먼지보다 못한 것이 되었다.     


 아쉽지만 천문학자는 되지 못했다. 그녀가 반대했기 때문이다. 천문학과는 철학과만큼이나 취업이 어려웠고, 그만큼 인기가 없었다. 17살이었지만 알았다. 꿈은 꿈이고 현실은 현실이라는 것을.          



2.

 별이 잘 보이는 장소를 안다. 양평의 벗고개 터미널, 강릉의 안반데기, 영천의 보문산 천문대 등등등. 하지만 그중 최고는 제주도의 오른쪽에 붙어 있는 작은 섬, 우도. 그 우도에서도 가장 지대가 높은 곳에 위치한 ‘라이트하우스’다. 라이트하우스는 오징어잡이 배들에게 길을 알려주는 등대지기를 위해 만들어진 작은 공간이다.      

 관광객이 싹 빠져나간 저녁의 우도는 온 동네가 캄캄하다. 희미한 가로등 불빛만이 작은 섬의 한적함을 증명한다. 하물며 라이트하우스는 어떨까. 그곳에는 등대에서 쏘는 빛과 칠흑, 그리고 별들만이 남는다.    


 라이트하우스에 가면 별이 쏟아지는 것을 볼 수 있다. 들깨 씨를 흩뿌려 놓은 게 틀림없는 광경을 볼 수 있다. 고개를 어느 방위로 돌려도 새로운 별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 별자리를 보여주는 스타 워크 어플 화면을 통째로 하늘에 옮겨 놓은 것 같다. 그것을 보고 있자면 온 세상에 별과 나만 존재하는 것 같은 아득함이 몰려온다.



3.

 죽으면 별이 된다는 말이 있다. 그 말을 처음 들었을 땐 제법 어린 나이였음에도 건방진 코웃음을 쳤다. 유치하다고 생각했다. 죽으면 끝이지. 


 하지만 내가 어리석었다. 그녀는 틀림없이 별이 되었을 것이다. 그래야만 한다. 그건 증명이 필요 없는 일종의 공리와도 같다. 그녀는 별이 되었다.     


 그녀의 별은 5월 28일 처음으로 반짝임을 관측당했고, 열대야가 지극한 8월의 밤하늘에서 특히 잘 관측되는 여름별이 되었다.           



4. 

 다시 내 꿈은 천문학자다. 고개를 들어 별을 관측한다. 그녀를 찾는다. 그 반짝임을 보고 있으면 안심이 된다. 지금 겪고 있는 일련의 괴로움들이 고작 먼지 한 톨에 지나지 않는다는 생각이 피어오른다. 그렇게 어제와 오늘을 버텼고 다가올 내일도 다짐해 본다.

 

 구름이 자욱한 어떤 날은 그녀가 보이지 않는다. 그래도 상관없다. 내가 관측하지 못할 뿐이니까. 은하계 어딘가에서, 내 시야가 닿지 않는 어딘가에서 그녀는 반짝이고 있을 것이다. 분명 그 반짝임으로 나를 지켜주고 있을 것이다.     


 그리움이 사무치는 날에는 종달항에 간다. 우도행 선표를 끊는다. 관광객이 다 빠져나가고, 칠흑 같은 밤이 올 때까지 기다린다. 손전등과 우산을 챙겨서 라이트하우스에 간다. 그곳엔 등대 불빛과 칠흑과 별밖에 없다. 그녀를 바라본다. 다시 내 꿈은 천문학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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