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영에겐 '울 일'이 아직 많이 남아 있었다. 그것은 매달 빠져나가는 학자금 대출처럼 자신의 존재를 과시했다. '할당량만큼 빼앗아 갈 거야.' 경고하듯 희영을 주시하고 있는 듯했다. 그러므로 아까운 눈물을 쏟을 수는 없다. 겨우 이런 일에는 더더욱. 지나갈 일이다. 단단하게 버텨야 한다. 시간은 모든 것을 가지고 저편으로 흘러갈 것이다.
희영은 손에 힘이 없는 아이였다. 8주 만에 엄마 뱃속에서 나온 탓인지 아니면 유년 시절 계속되었던 저체중 탓인지 아니면 그냥 유전인지. 아무튼 유달리 손에 힘이 없는 아이였다. 손에 든 것이라면 그게 무엇이든 붙잡아두지 못했다. 살아 움직이는 미끄덩한 낙지가 어떻게든 손에서 빠져나가려고 안간힘을 쓰는 것처럼 느꼈다. 현수가 선물한 핑크색 코끼리 모양 머그컵도, 큰맘 먹고 산 아이폰6도 희영의 손만 닿으면 쉬이 미끄러졌다.
희영의 별명은 마이너스의 손이었다. 뭐든 희영의 손에 들어가면 손해가 난다고 하여 붙여진 별명이다. 또 깨뜨렸다며, 또 망가뜨렸다며 부모님께 혼난 기억은 희영의 자존감을 두고두고 깎아내렸다.
마이너스의 손이 인간관계에까지 영향을 미쳤는지. 희영은 사람도 붙잡지 못하고 깨뜨려버리곤 했다. 항상 화장실을 같이 갔던 고등학교 단짝 수현이가 어느 날 다른 친구와 화장실을 가더라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침대 위에서는 항상 마주 보고 누워있자던 전 애인이 어느 날부터인가 등을 돌리고 잠을 청해도 아쉬운 소리 한 번 내뱉지 않았다. 재밌게 이야기하던 상대가 이만 가봐야겠다고 말하면 아무리 아쉬워도 혹여나 미련해 보일까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다. 손에서 빠져나간 핑크색 코끼리 머그컵처럼, 아이폰6처럼, 희영이 아끼던 사람들은 언제나 그랬듯 희영의 손을 빠져나갔다.
현수도 그렇게 놓칠 것이다. 홧김에 내뱉은 '가.'라는 말에 정말로 뒤돌아 가버렸으니까. 희영이 아끼던 사람이었으니까.
희영에겐 울 일이 너무 많다. 그러므로 희영은 울지 않는다. 희영은 손에 힘이 없는 아이였고 이건 지나가는 일이고 시간은 늘 그렇듯 모든 것을 가지고 저편으로 흘러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