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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의파랑 Aug 16. 2023

파티, 새로운 인연이 시작되는 곳

외향형 인간이 네트워킹에서 살아남는 법

네트워킹이라는 단어는 항상 모호했다, 프랑스에서 취업하려면 매우 중요하다는 이야기를 석사 과정에 입학했을 때부터 들었지만 실체가 없는 대상처럼 느껴졌다. 대체 어디서부터 시작하는 건지, 네트워킹을 잘한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말이다.


프랑스에서는 프랑스어로 수아레(soirée)라고 하는 파티 문화가 매우 흔하다. 석사를 같이 하던 친구들과도 늘 크고 작은 수아레를 열었다. 누군가의 생일파티나 집들이처럼 명확히 모임의 목적이 있기도 하지만 독립해서 살거나 친구들끼리 하우스 메이트로 사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집에서 일상적인 파티를 여는 게 흔한 편이다. 우리나라처럼 외식비가 싼 것도 아니고, 식당이나 술집들이 늦게까지 여는 것도 아니라 집에서 만나는 게 경제적으로도 합리적일 때가 많다. 보통 각자 와인 한 병이나 맥주를 사 오고 호스트가 간단한 안주 및 주전부리를 준비하거나 소규모 모임인 경우에는 돈을 모아 장을 보고 같이 요리를 하기도 한다. 수아레는 친구의 친구를, 다시 말해 모르는 사람을 만나는 일이 흔하고 그렇게 만나서 친구가 되는 일도 흔하다. 그렇기에 항상 새로운 사람을 만날 마음의 준비를 하고 가야 하고 또 사실은 그런 이유로 수아레에 참석하기도 한다.



회사가 주최하는 다양한 규모의 파티도 있다. 프랑스에서 회식의 개념은 흔하지 않지만, 일 년에 한 번씩은 팀 단위, 회사 단위, 그리고 그룹 차원의 파티가 열린다. 내가 근무했던 브랜드를 예로 들면, 1월부터 7월까지 근무하는 동안 서너 번의 파티에 참석했다. 2월에는 브랜드 직원들을 대상으로 호텔 라운지를 빌려서 한 파티, 6월에는 그룹 본사 건물에서 진행한 전체 그룹 직원 대상의 써머 피크닉, 7월에는 커뮤니케이션 팀만을 대상으로 한 팀 파티가 있었다. 그리고 특수한 상황이었긴 했지만 칸 영화제를 가 있는 동안엔 칸에 가 있는 직원들끼리의 파티도 있었다.


파티에선 때로 예상치도 못했던 일이 일어나기도 한다. 대부분 스탠딩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이동이 자유롭고 따라서 다양한 사람과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 대화를 나누고 싶은 상대가 있다면 그 주위를 맴돌다가 적당한 타이밍에 대화에 끼어들어 존재감을 드러내면 된다. 새로운 사람 만나는 걸 좋아하는 나에게도 이런 일련의 과정에는 굉장한 용기가 필요한 법이라 일단 파티에 입장해서 샴페인 세 잔 정도는 스트레이트로 마시는 편이다. 그럼 좀 더 자연스럽게 거리낌 없이 원하는 사람에게 말을 걸 수 있을뿐더러 외국어 능력이 향상되는 듯한 착각도 누릴 수 있다. 물론 너무 취하면 횡설수설할 수도 있으니 주의해야 하지만.



칸으로 2주간 출장을 갔을 때 일이다. 첫 주말에는 그룹 주관의 큰 행사가 있었고 모두들 그 행사 준비로 엄청난 압박감과 피로를 느끼는 상태였다. 그렇게 물리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생사의 경계를 오가고 있을 때, 지친 몸을 이끌고 파티에 참석했다. 이 파티에는 주말 행사 참석을 위해 칸을 찾은 CEO와 커뮤니케이션 팀장이 올 거라는 걸 알고 있었으므로 아무리 피곤해도 이 자리에서 그 둘에게 내 소개를 제대로 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어떻게든 이 회사에 남고 싶다는 야망도 있었으니까. 그리고 말을 나눌 기회는 언제나 그렇듯 급작스럽게 찾아왔다. CEO가 다른 브랜드 관계자들이랑 대화를 나눌 때, 슬쩍 옆을 지키고 있다가 그 브랜드가 한국에서 요새 얼마나 사랑받는지 얘기하며 자연스레 대화에 끼어들었다. 그 주제가 자리에 있던 모두의 관심을 샀고, 나를 모르던 CEO는 나에게 혹시 어디서 일하고 있냐고 물어왔다. 그렇게 내 소개를 하며 자연스레 대화의 물꼬를 트게 되었고 나는 우리가 같은 경영 대학을 나왔다는 사실까지 어필했다. 공통 주제가 생기니 대화가 한결 수월했고 학교 이야기와 회사 이야기를 번갈아 나누다 보니 모든 대화가 물 흐르듯 진행됐다. 그녀는 끼고 있던 반지를 내게 껴보라며 건네기도 했는데 나는 그것이 우리가 나눈 작은 우정의 보답인 것처럼 느껴졌다.


그렇게 파티 분위기가 무르익었고 마지막에는 정말 소수의 사람만이 남았다. 다양한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팀원들도 이제야 내게 마음의 문을 연 느낌이었고 나도 처음으로 이 사람들에 대한 애정을 느꼈다. 한 번은 상사를 포함한 팀원들이 나를 불러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는데 갑자기 나타난 CEO가 내 손을 붙잡고 어디론가 가더니 그룹 총괄 디렉터한테 나를 인사시켰다. 그 사람을 만나면, 네가 이 자리에서 만날 만한 사람은 다 만난 거라는 말과 함께. 우리는 서로의 학교에 대해(다 비즈니스 스쿨 출신!), 프랑스와 한국에 대해, 회사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고, 나는 한국인으로서 럭셔리 그룹 본사에서 일하는 게 얼마나 흥미로운지에 대해 끊임없이 어필했다. 그룹 디렉터는 진담인지 농담인지 모를 말로 나중에 일자리를 찾고 싶으면 자신에게 연락하라는 말을 남겼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내 상사는 나에게 네가 이 파티의 슈퍼스타라는 농을 던졌고, 나는 그 순간 처음으로 어느 집단에 비로소 ‘속한 느낌’을 받았다. 나는 떠돌이 행성이 아니야.


그날 밤 이후 회사 생활은 더 편해지고 즐거워졌다. 그 후 종종 만난 CEO랑은 편하게 안부를 물으며 지낼 수 있었다. 인턴으로서 계약기간이 끝나고 팀을 떠날 때, 팀장은 나에게 거대한 꽃다발과 땡큐 카드를 건넸다. 팀에서 보여주는 퍼포먼스만큼 좋은 관계를 쌓는 것도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이었다. 네트워킹이 뜻하는 바를 이제야 비로소 알 것도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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