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미가 있으세요?”
“하시는 운동 같은 거 있으신가요?”
사회인으로서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으레 받는 질문, 혹은 필수 질문이라고 할 수 있겠다.
스몰톡 카테고리에서 빠질 수 없는 질문.
너는 여가 시간에 무얼 하니, 돈 버는 일 말고는 어떤 것에 돈을 쓰고 있니?
이 세상엔 다양한 취미와 액티비티가 있지만
그중 이러한 질문을 주고받는 저 stranger와 내 취미가 맞는 순간,
갑자기 ‘어머나, 세상에!’ 하고 순식간에 공통 관심사와 이야기 주제가 생기면서
적어도 몇십 분간은 그 주제로 떠들 수 있게 만들어주는.
안타깝게도 나는 아직 ‘어머나, 세상에!’를 육성으로 내뱉으며 손뼉을 짝짝 두 번 치고
두 눈이 휘둥그레지면서, 저도 그거 열심히 하는데!!라는 리액션을 해본 적이 없다.
사람들은 내 생각만큼 요가를 하지 않더라고.
나는 요가 6년 차 수련 중이며, 아쉬탕가 마이솔 수련을 하고 있다.
마이솔은 주 6일 수련을 기본으로 두고 있으며, 부상이 와도 슬럼프가 와도 매트 위에 서야 하고
구루지(=스승)의 말을 따르며 매일 새벽 뜨는 태양에게 경배하는 마음을 담아
1시간 반에서 2시간 정도 수련을 해야 한다.
정해진 시퀀스를 그대로 따라가야 하며 구루지로부터 내가 받은 시퀀스 진도 그 이상으로는 수련할 수 없다.
도대체가 지금 2024년인데 이렇게 무식하고 강압적이게 수련하라는 게 도통 와닿지 않을 것이다.
6년 차인 나도 와닿지 않는데 뭘.
그리고 나조차도 이런 전통 마이솔 정신을 따르지 않는다. (마이솔 수련 기본인 새벽 수련부터 하질 않는다.)
회사에서 쳐내야 하는 업무를 따라가는 것도 벅찬데 뭔 놈의 아쉬탕가 정신까지 따라가려면
일단 링거부터 맞고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수련을 계속하고 있고,
특별한 일이 없는 이상 매일 수련하자고 나 자신과의 약속을 한 상태이다.
이 약속을 늘 잘 지키느냐?
뭐, 약속은 깨지라고 있는 법이란 걸 잊지 말아 달라.
아무튼 아쉬탕가를 수련하고 있지만,
Stranger들 눈에는 6년 동안 요가 수련했어요 엣헴 하는 내 모습이 멋있어 보이는 건지
갑자기 내게 요가를 하면 좋은 점, 달라지는 점, 마음이 차분해지는지, 화를 어떻게 다스리는지 등
‘요가‘하면 보편적으로 떠올리는 질문들을 마구잡이로 물어보기 시작한다.
더불어, 어떻게 그렇게 꾸준히 수련을 했던 것인지.
매일 수련하는 원동력이 무엇인지.
처음 만나는 stranger들에게는 “뭐… 그냥 계속하다 보니까 습관이 되어서요”라고 웃으며 대답하곤 하지만,
나와 친해진 사람들은 곧이어 알게 된다.
내가 얼마나 수련을 하기 싫어하는지.
아니, 6년이나 해왔으면서 수련이 싫다고?
라는 의문이 생길 것이다.
놀랍게도 나는 매일 수련하기가 싫고 수련 가는 길이 그렇게 무거울 수 없다.
가는 길 내내 오늘 수련은 얼마나 힘들까, 내가 왜 아쉬탕가를 해서 이 고생을 하고 있을까
지금이라도 집에 갈까?
라는 생각을 하면서 간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말하지만, 누가 협박해서 수련하는 거 아니다.
자의로 수련하는 것이다.
왜 하기 싫으냐고?
일단 아쉬탕가는 힘들다.
요가는 스트레칭이고 그까짓 거 호흡 좀 하고 명상하면 되는 거 아니야?
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서둘러 내 앞으로 줄을 서길 바란다.
딱콩 한 방씩 먹여줄 거니까.
다시 말한다. 아쉬탕가는 힘들다.
2시간 남짓 되는 시간 동안 나 혼자 고군분투를 하는 데, 이제 온몸을 찢고 비틀고 뒤집고 들어 올린다.
나에게 이런 근육이 있었어? 하는 부위의 근육들까지 챙겨 모아 자극시키고
근육을 늘렸다가 갑자기 수축시키고 그러다가 빨래 짜듯 왼쪽 오른쪽 비틀어내다가
마침내 위아래로 뒤집어버린다.
고문도 이런 고문이 없는데 그 와중에 숨을 헉헉대면 안 된다.
숨을 크게 쉬어서도 안되고 숨소리도 작게, 평소 숨소리처럼 내란다.
부동을 하는 하타요가와 달리 아쉬탕가는 끊이지 않고 격동적이게 시퀀스를 이어가야 하기 때문에
결국 두 시간을 쉬지 않고 버틸 수 있는 힘과 지구력, 정신력 등이 필요한 것이다.
이걸 매일 하라고 하면 어떤 사람이 매일 할 수 있겠어?
그래서 그런지 나와 같은 평범한 회사원이면서 취미로 요가를 하시는 분들 중
아쉬탕가 마이솔을 수련하는 분을 본 적이 없다.
그나마 샬라(=수련실)에서 나와 함께 몇 년을 수련하시는 분 들 뿐이고
이분들 마저도 몇 개월 후엔 또 사라지셨다가 새로운 분들이 오시고 하더라.
뭐 아쉬탕가가 힘들어서 하기 싫다는 나의 변명을 길게 써봤는데,
아무튼 나는 남들이 생각하는 것과 달리
파블로프의 개처럼 오후 4시 땡 치면 요가 가기 싫어하는 마음이 올라오는
게으른, 그리고 종종 수련을 빼먹는 요기니라고 할 수 있겠다.
아니 그렇게 하기 싫으면 안 하면 되잖아?
요즘 다른 운동들이 얼마나 많은데?
맞다.
다이어트를 위해서, 건강을 위해서, 친목을 위해서
생겨나는 운동들은 너무나도 다양하고 심지어 재미도 있다.
사람들과 함께하는 운동을 하면 내가 하기 싫어도 으쌰으쌰 응원 덕으로 이어 나갈 수도 있으며,
외향적인 성격의 나는 사람들과 부대끼며 하는 운동이 더 잘 맞을 수도 있을 것이다.
나라고 왜 다른 곳에 눈을 안 돌렸겠어.
헬스, 폴댄스, 크로스핏, 필라테스 등 뜨는 운동이라면 다 해 보고
이러한 운동에서 힘도 얻고 재미도 느꼈다.
그렇지만
결국엔 요가만 한 게 없었다.
헬스에서 중량 칠 때 드는 생각이
이렇게 전거근 수축시키다간 우르드바다누라아사나를 제대로 못 하겠는데?
크로스핏에서 스쿼트와 워킹 런지를 할 때 드는 생각이
대퇴근을 이렇게 펌핑시키면 우띠다하스타파당구쉬타아사나에서 근육통 때문에 버티질 못하겠다.
필라테스에서 입으로 숨을 내뱉으며 드는 생각이
입으로 숨 쉬는 게 너무 힘들고 신경 쓰여. 요가는 코로만 숨 쉬는데… 호흡은 조용히, 그렇지만 깊게 해야지!
클라이밍 하면서 드는 생각이
삼각근이 이렇게 아프면 마리챠아사나 시리즈에서 손목을 잡지도 못하겠다. 파샤아사나는 뭐 말도 못 하지.
새로운 운동을 하면서도 나는 그다음 날 수련 가서 얻게 될 고통에 대해 미리 생각하고 걱정하고 있었던 것이다.
마음 한 켠에 요가라는 놈이 뿌리를 깊숙이 내려 뽑히지도 않는 거지.
그리고 새로운 운동도 나의 요가 수련에 방해가 되는 것 같아 얼마 안 가 그냥 그만두었다.
결국 나는 요가를 떠날 생각은 없었으면서 괜스레 새로운 자극이 필요했던 것이다.
이건 마치 마음 굳게 먹고 ‘그래! 바람피울 거야!’ 해놓고 계속 신경이 쓰여서 바람도 제대로 못 피우는
비유가 적절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뭐 아무튼.
그래서 인정하기로 했다.
지독한 짝사랑 중이라는 것을.
내가 현생에서도 안 하는 짝사랑을 요가를 통해서 경험하고 있다는 것을.
그렇게 미적대다가도 땀 흘려 수련을 끝내고 집에 돌아가는 길에서는
아까 가기 싫어했던 마음은 온데간데없이 비실비실 웃음 지으며
오늘 수련을 복기하며 지하철을 타는 내 모습을.
분명 나는 두 시간 내내 젖 먹던 힘까지 다 써내서 수련을 했는 데
왜인지 수련 이후에는 에너지가 더 차오르는 이 느낌을.
이게 짝사랑인 건지 애증인 건지 증오인 건지 혐오인 건지는
좀 더 지켜보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