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참 회사 사람들과 노는 것에 미쳐있을 때였던 것 같다.
함께 시간을 보내는 날이 많아져 우리는 더욱 친해지고 있었다.
가끔씩은 사무실에 우리끼리 남을 때면 서로 집에 언제 가는지를 간 보며 수다도 떨고
놀리기도 하고 그러던 때였다.
보통 제이슨이 늦게까지 일을 하는 경우가 많았고, 나 역시 무슨 이유였었는지
황금 같은 금요일 일찍 퇴근을 못하고 있을 때였을 거다.
“제이슨 뭐 해. 언제 가?”
“좀… 있다가?”
딱이다. 내 수다 메이트 걸려들었어.
그렇게 사무실 방이 다름에도 수다 떨겠답시고 방을 서로 놀러 가며
어느새 일은 제쳐두고 회사 이야기, 사적인 이야기 등 여러 이야기를 떠들기 시작했다.
그러다 문득 내가 먼저
“제이슨 여자 소개받아볼래?”
“누군데? “
“내 친구. 겁나 예뻐. 얘 최근에 헤어졌어.”
“….. 그게 중요한 거야?”
“아니, 중요한 건 얘 겁나 예뻐.”
난 단호하게 말했다.
예쁘고 착한 나의 친구는 누가 봐도 내 친구가 아까울 정도의 남자와 여러 해 만나다
최근에 이별을 하여 내가 참 잘했다며 기립 박수를 치고 있었던 찰나,
마침 솔로인 제이슨을 소개해주면 딱일 것 같아 마구 오퍼를 들이밀었다.
사실은 제이슨도, 내 친구도 그 누구도 나에게 소개를 시켜달란 말을 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냥 나 혼자 그들의 동의 의사와 관계없이 한 번 진행해보고 싶은 마음이었다.
다만, 소개팅 형식을 싫어한다는 제이슨은 일대일 만남 대신 다 같이 모여서
액티비티를 하는 쪽으로 좀 더 자연스럽게 친해지는 방식을 하자고 제안했다.
그러면서 자연스레 제이슨도 본인의 친구를 보여주기 시작했다.
“얘 어때? 얘 잘생겼어”
“얘는 음악 하는 친구야.”
그가 보여준 그의 친구들 모두…
나와는 맞지 않을 것 같은 느낌이 팍 들었지만,
그래도 목적이 내가 아닌 내 친구들의 결실이기에
그렇게 우리는 얼떨결에 나와 내 친구 그리고 제이슨과 그의 친구
2대 2 만남을, 그것도 등산 만남을 갖게 되었다.
등산하기 딱 좋은 날.
평소에 등산을 하질 않던 나는 등산 중 가볍게 즐길 수 있는 인왕산조차 가보질 않아
이번 기회에 인왕산 완등을 해보자라는 마음으로 등산화까지 꼭꼭 챙겨 신었다.
모르는 남자 둘, 그것도 인왕산에서 만나자는 우리의 제안을 흔쾌히 받아 준 내 친구와
제이슨의 약간은 또라이 같고 날티가 나는 친구와 함께 만나
인왕산을 등산하기 시작했다.
초보자도 걱정 없이 올라갈 수 있다는 블로그의 말만 믿고 쉽게 생각하며 올랐지만,
등산을 해보지 않던 나에게 인왕산 정상 막바지의 바위 길을 마주할 때 약간 당황했다.
그러나 나를 제외한 모든 이들은 등산을 좀 했었는지 쉬지도 않고 빠른 속도로 올라가
우리는 예상 시간보다 더 일찍 정상을 찍게 되었다.
정말 등산만을 위한 모임처럼 두런두런 이야기를 하면서 가는 것이 아닌
오로지 정상 목표만을 향하여 직진하기 시작해
과연 이게 내가 생각한 그림이 맞는지 점점 의심이 들기 시작했다.
“야, 쟤네들 자기들끼리 저렇게 빨리 올라가는 게 있어?”
친구가 너무나도 빠르게 올라가는 저들의 등산 속도에 한 마디 했다.
이때부터 이 만남은 이미 잘 되긴 글렀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나름 우리 넷은 싸우지 않고 사고 없이 하산하여 만남의 뒤풀이 국룰 치킨까지 야무지게 잡수고
맥주 네 잔에 맛이 가버린 제이슨의 친구와 나의 친구는 하필 또 같은 동네 주민이어서
그 둘은 함께 택시를 타고 집에 가게 되었다.
이 모임의 원래 목적인 내 친구와 제이슨의 자연스러운 만남은 뭐 이루어졌다고 치더라도
제이슨의 친구와 나의 친구는 이 날 건너지 못할 강을 건널 정도로 서로가 서로를 맘에 안 들어하게 된다…
도대체 어느 순간에 서로를 싫어하게 된 건지는 모르겠지만,
그 덕에 이 등산 모임은 인왕산을 끝으로 다시 뭉치진 않았다.
그 이후에도 넷이서 뭉치진 않았지만,
나와 제이슨 그리고 제이슨의 친구 셋이서 관악산도 등산하게 되고
나와 제이슨 그리고 나의 친구도 함께 만나 회사 사람들과 밥도 먹고 치킨도 먹고 하게 된다.
나와 마음이 맞아 친해진 회사 사람들이 내 친구와 못 어울릴 리가 없지!
나이가 들 수록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풀도 좁아지고 마음을 열기도 어려운데
이렇게 서로가 서로의 친구를 소개해주며 함께 새로운 활동을 하는 것도
친해진 우리들만이 할 수 있는 것이라 생각한다.
인왕산을 다녀온 바로 다음 날 나는 내 친구와 또 다른 약속이 있어 우연찮게 연달아 만나게 되었는데
그때 내 친구는 나에게 이렇게 말을 했다.
“제이슨 친구 진짜 별로야. 내 스타일도 아니고 성격도 나랑 진짜 안 맞아.
그건 그렇고, 근데 너는 제이슨 왜 안 만나?
제이슨은 널 좋아하던데? “
“뭔 헛소리야 이게“
그때 당시에는 도대체 뭘 보고 그런 소리를 하냐며 밥이나 먹으라고 젓가락을 들이밀었었지만
추후 나는 미래를 내다보는 나의 친구의 능력에 소름이 끼치고 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