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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하 Feb 29. 2024

육아일기가 쓰고 싶어-3. 수술은 처음이라

육아일기가 쓰고 싶은 4년 차 주부의 난임일기

자궁내막증으로 난소에 자란 7cm의 혹을 제거하기 위해서는 복강경 수술을 해야 했다. 배꼽과 그 주변에 2개의 구멍을 뚫어 총 3개의 구멍을 통해 혹을 제거하는 수술인데, 문제는 7cm나 되는 혹이 대장에 심하게 유착되어 잘못하다간 대장을 건드릴 수도 있어 주의가 필요한 수술이었다.


보통은 수술 당일이나 하루 전에 입원하는 게 일반적이지만, 대장유착으로 인해 꼼꼼한 관장이 필요했고 수술하기 2일 전에 입원한 후 수술 하루 전에는 온종일 관장만 했다. 다행히 건강검진처럼 마시는 약을 통한 관장은 아니었지만 하루종일 먹은 것 없이 비워내기만 하는 것은 보통일이 아니었다. 


3-4번의 관장을 마무리 짓는 마지막엔 볼일을 본 후 물을 내리지 않은 상태로 간호사에게 확인을 받아야 했다. 관장이 확실히 됐는지, 추가 관장이 필요한지. 보여주는 나도 못할 짓이었지만 그걸 확인해야 하는 간호사들은 더 할 짓이 아닐 듯했다.


입원 3일 차 아침 7시, 수술 준비를 시작했다. 남편은 하필 그 당시가 가장 바쁜 시기였고, 지독한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보호자는 보호자 명찰을 가진 한 명만 출입이 가능했다. 예상 수술 시간은 2시간이었고, 10시 반이 되면 남편과 친정엄마가 바톤 터치하기로 했다. 


처음 누워보는 수술대는 매우 차가웠으며, 넓은 수술실에서 두려움에 떨고 있는 나를 제외한 십여 명의 사람들은 일상인 듯 자연스러웠으며 심지어 웃고 떠드는 사람도 있었다. 혈관이 약한 나는 입원기간 동안 매일 링거주사 위치를 바꾸느라 손이 개구리처럼 부어있었고, 수술 직전에도 링거가 잘 들어가지 않아 수술대 위에서 링거 위치를 조정했다. 다시 꽂은 링거가 아파서였을까, 차가운 수술대가 서러워서였을까 눈물이 고이기 시작했다. 그때 마침 마취제가 들어갔고 팔이 절단되는 듯한 고통을 느낌과 동시에 내 기억은 끝이 났다.


간호사의 부름에 눈을 뜨니 회복실로 보이는 곳이었으며 시계는 정확히 10시 반을 가리키고 있었다. 


"지금 몇 시예요?"

"10시 반이에요."

"지금 몇 시예요?"

"10시 반이요~"

"지금 몇 시예요?"

"10시 반이에요ㅎㅎ"


내 눈으로 10시 반을 직접 확인했지만, 마취약에 취해 몽롱했던 나는 지금 몇 시냐는 질문을 세 번이나 했다. 마취 탓에 아픔은 느껴지지 않은 상태였지만 머릿속에는 온통 남편과 친정 엄마가 10시 반에 교대한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수술하기 전날, 처음 해보는 마취에 혹여나 마취가 채 깨기 전 헛소리를 하면 어떡하나 장난스러운 걱정을 했었는데 직접 경험해 보니 눈감기 전 걱정하던 것들이 무의식 속에 남아있는 듯했다.

 

그다음 기억나는 장면은 침대 위에 누워서 수술실을 나오는 것이었고, 예상과 달리 친정 엄마와 남편의 얼굴이 모두 보였다. 마취가 깨서 물어보니 엄마는 예상시간보다 조금 일찍 오셨고, 조금이라도 늦게까지 있고 싶었던 남편은 마침 입구에 보호자 명찰을 확인하는 사람이 없어 엄마와 함께 수술실로 다시 올라온 것이라고 했다.


그 후로 병실로 옮겨질 때까지도 누군가가 편집한 것처럼 기억은 드문드문 나지 않았다. 병실에서 마취가 완전히 깬 후에야 기억이 온전해졌으며, 기억과 함께 수술의 통증도 찾아왔다. 통증을 견디기 힘들 때 주입하기 위한 무통주사를 달아놓았지만 무통주사를 많이 맞게 되면 속이 안 좋거나 두통이 올 수도 있다고 했다. 평소 참을성이 많은 편이었던 나는 두통대신 수술 통증을 택했고, 무통주사는 한 번도 쓰지 않았다. 


수술한 날부터 2일간은 밤에도, 낮에도 엄마가 보호자로 병실을 지키셨다.

결혼한 지 4개월밖에 되지 않은 새댁인데 회사는 그만두게 되었고, 자궁문제로 수술을 하게 되니 엄마는 남편과 시댁보기 미안해하는 눈치셨다.

나의 퇴사와 수술은 엄마의 탓이 아니지만, 딸 가진 엄마의 마음은 그러했다.


많이 걸어야 빨리 회복한다는 간호사의 말에, 수술 다음 날 아침이 밝을 때부터 틈만 나면 걸었다. 처음 24시간 만에 침대에서 일어날 땐 난생처음 겪어보는 고통 속에서 허리도 제대로 펴지 못하며 겨우 몸을 일으켜 세웠는데 고통 속에서도 남들보다 열심히 걷고, 또 걷다 보니 확실히 회복도 남들보다 빨랐다. 같은 병실의 환자는 나보다 하루 일찍 수술했는데 수술 후 거의 걷지 않고 누워만 있더니 퇴원하는 날 울면서 겨우 걸어 나갔다.


입원 일주일 만에 퇴원을 했고, 퇴원 후에도 빠른 속도로 회복을 했다.

자궁 수술의 경우 수술 후 6개월 내에 임신이 가장 잘 되므로, 우리의 계획과는 상관없이 수술 한 달 후부터는 임신 시도를 해야 했다. 그러나 임신은 생각처럼 쉽지 않았고, 6개월 후 경과점검 차 병원을 방문했는데 이게 웬걸... 

수술한 쪽이 아닌 반대편에 또다시 혹이 자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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