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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미미 Sep 21. 2024

시간 여행

가족을 먼저 떠나보낸다는 것.




할머니는 시간여행자

                                                           김히미.

                               

할머니가 가끔

여러분의 얼굴을 알아보지 못하나요?

할머니가 가끔 혹은 자주

하셨던 말을 되풀이하나요?


걱정하지 말아요

별일 아니랍니다


할머니는 종종 아무도 모르게

시간 여행을 하시거든요


할머니가 하는 시간 여행에는

할아버지도 있고

할머니가 하는 시간 여행에는

옛 동무도 있고

할머니가 하는 시간 여행에는

할머니의 할머니도 있죠.


우리가 줄 수 없는 것들이에요

할머니의 소중한 시간이죠


시간여행자 할머니를 기다려주세요

여행에서 돌아오고 싶을 때까지 말이에요


시간여행자 할머니를 존중해 주세요

우리도 존중받길 원하듯이 말이에요


할머니는 기억이 나지 않는 게 아니에요

단지,

시간 여행 중일 뿐이에요




태흥리 할머니(외할머니)는 동네에서도 소문난 강인한 분이셨다고 들었다. 어린 나의 시선에도 동네 어른들 중에서도 할머니는 더 큰 어른이었다. 사람들은 할머니를 보고 인사를 했고, 할머니보다 할머니는 안 보였기 때문이다. 할머니는 매일 아침 머리를 곱게 빗어 동그랗게 말아 단정한 모습을 하고 계셨다. 머리카락을 풀면 그 긴 것들은 할머니의 척추를 다 가릴 정도로 길었다. 그 모습은 아마 꼬마 ‘히미’만 보았을 것이다.



할머니는 내가 대학생이 되었을 때도 정정하셨다. 가끔 이모와 엄마가 하는 말을 들으면 치매 증상이 있다고 걱정을 하셨다. 하지만 할머니는 여전히 아들 손주들에게는 세뱃돈을 만 원, 딸 손주들에게는 3천 원을 주시는 걸 잊지 않으셨다. 시간 여행을 가끔 하고 돌아오셔도 딸 손주들에게 만 원을 주지는 않으셨으니, 나는 할머니가 아직 건강하시다고 생각했다.



어느 날, 할머니가 날 보고도 내 이름을 부르지 않으셨다. 딸 넷의 12명 손주들 중 다른 손주 이름은 다 잊어도 내 이름 ‘히미’는 끝까지 기억하시던 할머니였다. 하지만 날 보고도 누군지 알아보지 못하셨다. 적잖이 충격으로 다가왔지만, 나는 할머니가 여행을 하는 중이라 생각하기로 했다. 서운해하지 않기로 다짐했다.



할머니는 우리 엄마보다 6개월가량 늦게 돌아가셨다. 엄마와 아빠를 보내고 할머니까지 떠났을 때, 나는 내 몸에 껍데기만 남은 듯했다. 하지만 할머니가 여행이 너무 행복해서 돌아오지 않으셨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그리고... 많이 울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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