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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미미 Sep 20. 2024

집 구경

'살고 싶은 곳'과 '내가 사는 곳'.



어제 방문수업하는 찬이네 아파트 뒷골목에 주차를 하고 잠시 멍을 때리고 있었다. 눈앞에 보이는 건 모델 하우스. 모델 하우스 간판을 뚫어지게 보고 있자니 중학교 때 추억이 떠올랐다.



 서귀포에 유명한 브랜드 아파트 단지가 들어선다는 소문이 돌고, 어느 날 일호광장에 모델 하우스가 정말로 생겼다. 나는 그때 모델 하우스라는 말을 처음 접했다.

 친구들과 수업을 마치고 군것질을 하다 모델 하우스 구경을 가게 되었다. 당시 모델 하우스에는 늘 사람이 북적거렸다. 작은 촌 동네에(나름 서귀포 시내지만) 처음 생긴 모델 하우스는 사람들의 관심과 이목을 끌기에 충분했다.

 여중생 서너 명이 모델 하우스를 들어가며 잠시 머뭇거렸다.

“어른 없이 우리끼리 왔다고 나가라고 하면 어떡하지?”

“그럼 이건 어때? 우리 집 이사 갈지 몰라서 한번 구경 왔다고. “

순진한 여중생들은 우르르 몰려갔다가 퇴짜를 맞을까 걱정이 되었지만, 용감하게 모델 하우스에 입성했다. 다행히 친절한 직원은 슬리퍼까지 내어줬고, 우리를 내쫓는 일은 없었다.


 지금도 모델 하우스에 가면 입이 떡 벌어지는데, 그 시절은 오죽했을까. 나는 모델 하우스를 보고 첫눈에 반했다. 깔끔한 바닥, 반듯한 주방가구, 폭신해 보이는 침대, 작은 인테리어 소품 하나하나가 마음에 쏙 들었다.

 우리는 구경하며 준비한 대화를 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우리 엄마한테 가서 이사 가기 전에 모델 하우스 구경하라고 하자.”

굳이 이런 연기는 하지 않았어도 되었는데, 왜 그때 그렇게 의식했는지 모르겠다.

 우리는 그 뒤로 두어 번 모델 하우스를 또 찾아갔다. 아마 여름이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들어가면 산뜻한 에어컨 바람이 우리를 취하게 만들었는지 모른다. 그때는 에어컨 바람이 지금처럼 흔하지 않았으니 말이다.


 그 브랜드 아파트는 아직도 동홍동에 있다. 동홍초등학교는 그 후 서귀포 엄마들의 워너비 학군이 되었고, 지금도 그 주변에 학원가가 밀집되어 있다. 그중 남동생의 태권도 학원도 자리를 잡고 있다.


 지금 집으로 이사 오기 전 집 구경을 많이 다녔다. 돈이 있든 없든 ‘모델 하우스’나 ‘구경하는 집’이 보이면 당장 이사 계획이 없더라도 우선 들어가 보았다. 요즘은 어떤 감각의 인테리어가 유행하는지 궁금했고, 어떤 구조로 어떻게 꾸며 놓았는지 구경하는 게 재밌었다.


 물론 새집을 보면 욕심도 나지만, 딱 구경까지다.  지금 살고 있는 우리 집은 새집이 아니다. 앞서 살았던 사람들이 7년을 살았고, 그 후에 우리가 들어오게 되었다.


 어제 잠들기 전, 유준이가 문득 나에게 물었다.

“엄마도 어릴 때 우리 집처럼 좋은 집에 살았어?”

“유준아, 우리 집이 좋은 집 같아?”

“응. 이 정도면 좋은 집 아니야? “

 유준이의 말에 웃음이 나왔다. 아이가 우리 집에 만족한다니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면서 이 아이가 어른이 되었을 때 우리 집을, 우리 가정을 어떻게 기억하게 될지 궁금해졌다. 그야 앞으로 우리가 만들어가기 나름이겠지만 말이다.


 한라도서관 어귀에 모델 하우스가 있는데, 오늘 지나치면서 보니 ‘견본 주택’이라는 팻말이 있었다. 모델 하우스보다 견본 주택이라는 말이 더 단단하고 신뢰가 가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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