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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미미 Sep 19. 2024

사람이라 다행이다

장어와 벌초의 상관관계.




 나는 생선장수의 딸이었다. 옥돔과 고등어가 우리 수산의 주 품목이었고, 서브 품목으로는 오징어, 한치, 새우, 장어, 객주리 등이 있었다. 그중 장어는 가끔씩 들여왔는데, 나는 장어를 특히 징그러워했다. 뱀처럼 징그럽게 몸을 돌돌 말아 죽은 무리들이 고무대야에 있는 걸 보면 구역질이 날 것 같았다.



 사람은 적응하는 동물이지 않나. 보다 보니 정까지는 아니더라도 눈에 담을 만큼은 되었다. 장어는 손질할 때 좀 특이하다. 생선 손질은 아가미를 들어내어 내장을 빼고 배를 가르는 절차를 거치는데, 장어는 좀 잔인하다.

 기다란 판자 가장 윗부분에 대못이 박혀있다. 이 판자를 뒤집으면 못의 뾰족한 부분이 우뚝 솟아있다. 이제부터 장어의 고난이 시작된다. 장어 대가리는 가차 없이 못에 끼워지고 그걸 지지대 삼아 칼로 배를 쭉~ 가르는 것이다.



 아이가 처음으로 아빠와 할아버지를 따라 벌초 길에 나섰다. 벌초가 뭔지 잘 모르는 아이는 멋도 모르고 따라가겠다 했다. 1학년이면 아직 벌초를 따라가기엔 어리지만, 가도 거의 구경만 할 터이니 긴 옷을 입히고 장화를 신겨 보냈다. 돗자리와 간식까지 챙겨서 소풍 가듯이 말이다.

 초반에 몇 번 잡초들을 옆으로 치우는 작업을 돕고, 돗자리에 앉아 쉬고 있다며 전화가 왔다. 생각보다 힘들고 덥지만 견딜만하다 하니, 비록 가서 노는 시간이 많더라도 아이가 많이 컸구나 생각이 들었다. 할아버지는 손자가 기특했을 것이다. 벌초 끝나고 뭐 먹고 싶냐고 물으니 장어라고 대답했단다.


 엥. 장어? 몇 번 장어집에 데려가기도 했고 포장도 한 적은 있지만 삼겹살이나 치킨이 아니라 장어라니 의외고, 웃음이 나왔다.

벌초에 아버님 친구분이 오셔서 목욕재계를 하고 만나기로 하여, 아버님은 함께 가지 못하니 아이에게 장어를 사주라며 용돈을 주신 것이다.



 이리하여 장어와 벌초의 상관관계가 시작되었다. 우리는 저녁에 일도지구 통큰장어로 향했다. 아라동 만궁을 가려했는데, 가격이 두 배나 차이가 났다. 조금 번잡스러운 분위기이지만 가성비가 좋은 통근장어에서 그렇게 장어를 먹게 되었다.


 이 장어집은 불경기를 피해 가나 보다. 우리는 번호표를 받고 한참을 기다렸다. 주차장에서부터 장어 굽는 냄새가 주변 공기를 삼키는 듯했다. 길냥이 한 마리가 장어 쪼가리를 먹으며 우리를 힐끔 쳐다봤다.




 장어보다 장어 냄새에 취하는 기분이었다. 아이는 가시가 많은지 한 번씩 불편함을 호소했지만, 오늘 제대로 된 식사를 처음 하는 거라 군말 없이 잘 먹었다. 나는 정말 허기진 상태라 오히려 금방 배가 불렀다. 아니면 나도 모르게 그 시절 대야에 있던, 꿈틀거리며 몸을 배배 꼬고 매끄러운데 징그러운 생물들이 생각난 건지 모른다. 손질되어 같은 크기로 조각 난 길쭉한 장어가 나란히 불판 위에 누워 있는 걸 보고 있자니, 어릴 때 시장통에서 봤던 장어들이 떠올랐다.

 우리 테이블과, 옆 테이블, 그 옆 옆 테이블 불판에도 나란히 누워 있는 장어 조각들을 보며 생각했다.

내가 장어로 태어나지 않아 정말 다행이라고.


 지금은 시장에 가도 엄마도, 아빠도 안 계시다. 시장은 나에게 애증의 공간이다. 시장은 나를 키웠으나, 나에게 상처도 많이 주었다. 그러나 나는 아직도 생선을 잘 먹는다.




오늘 아이 덕분에 저녁 한 끼를 제대로 먹게 되었다. 본인도 본인 덕분이라며 오늘은 먼저 한 입을 먹어보겠다 한다. 자신감 뿜뿜인 아이를 보며 미소가 지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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