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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미미 Sep 15. 2024

시장 할머니

서귀포 올레시장 여장부. 


 시장 할머니가 장사하던 곳은 동명 백화점 뒷문으로 이어져 있는 곳이라 목이 좋았다. 좌로는 크라운 마트, 우로는 참기름집이 있었고 그 사이로 바닥이 울퉁불퉁한 골목을 들어서면 4-5가구가 옹기종기 살고 있었다. 수돗가를 지나 마지막 집이 시장 할머니 댁이었다. 시장 할머니는 친할머니다. 우리는 어릴 때부터 친할머니를 시장 할머니, 외할머니를 태흥리 할머니라고 불렀다. 



 5살 춥지도 덥지도 않은 어느 무렵, 태흥리 할머니가 나를 시장 할머니에게 데려갔다. 서귀포로 가는 버스에서 “이제 느네 할망이영 잘 지내라이.” 하던 말씀이 흐리게 기억이 난다. 어린 마음에도 할머니와 헤어지기 싫었지만, 내가 어찌할 상황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던 것 같다. 


 “히미 데령와수다. 부탁햄수다양. 히미, 할망말 잘 들어산다이. 외할망 감쩌이.”


시장 할머니는 좌판에 진열 되어있는 옥돔 위에 파리들을 파리채로 쫓고 있었다.




 태흥리는 한적하고 고요했다. 밤이면 정말 눈을 감은 것 마냥 주변이 컴컴해서 무서울 정도였다. 그리고 분명 문을 닫았는데도 자려고 불을 끄면 마루에서 작은 물체들의 점프 소리가 들렸다. 불을 켜면 그 소리는 멈추었고, 다시 불을 끄면 점프하는 소리가 났다. 


 “할머니, 무서워.” 

라며 할머니 품으로 파고들면, 할머니는 딱딱한 손으로 내 등을 쓰다듬으며 


“무서운 거 아니난 좀 자라.” 라고 말씀하셨다.


그게 귀뚜라미라는 것을 크고 나서야 알았다. 얘네들은 꼭 닫힌 문안으로 어떻게 들어왔을까. 아직도 의문이다.


 그렇게 다섯 살 꼬맹이는 고요한 마을에서 할머니의 보살핌과 동네 사람들의 관심을 받으며 지내다, 온갖 냄새가 코를 찌르고 사람들이 쉼 없이 지나가는 시장에서 살게 된 것이다. 




 시장 할머니는 태흥리 할머니처럼 나긋한 말투도 아니었고, 조용하지도 않았다. 늘 성난 말투로 표정도 심술이 궂어 보였다. 시장 할머니와 함께 장사를 하던 셋고모가 내 머리를 빗겨주고, 어린이집 갈 때 옷도 챙겨주었다. 셋고모도 시장할머니를 닮아 늘 성난 얼굴이었는데 나를 예쁘게 꾸며주기는 잘했다. 


 엄마는 멀지 않은 곳에서 장사를 하고 있었는데, 자주 볼 수 없었다. 나는 일부러 엄마를 찾아가 배고프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럼 엄마는 오백 원을 주었고 나는 무얼 사 먹었던 것 같다. 배고픈 것은 거짓말이고 엄마의 얼굴이, 목소리가 그리워 그랬으리라. 


 입학할 때가 돼서야 나는 본가로 입성하게 되었다. 그때까지 아빠 얼굴을 열 번도 안 봤던거 같은데, 무서운 아빠와 살게 된 순간부터 나는 시장 할머니가 참 온순하셨구나(?) 생각을 했다. 




 시장 할머니는 내가 3학년 때 위암으로 돌아가셨다. 내게 시장할머니는 여장부였고, 시장통 대장님이었다. 누구에게도 기죽지 않고 늘 불호령을 내리는 무서운 할머니. 시장 골목에 방 하나 부엌 하나 딸린, 공용 화장실을 쓰던 집에서 어린 손녀를 데리고 살았던 할머니. 


 남편은 먼저 보내고 모진 풍파 겪으며 자식 넷 먹이고 재우고 키우신 할머니가 왜 그리 무섭게 보였는지 이제서야 알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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