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워를 마치고 수건으로 물기를 닦는다. 무심히 거울을 본다. 뿌옇게 김이 서린 유리 너머, 낯선 사람이 서 있다. 분명 나인데, 나 같지 않은 형상. 팔다리는 여전히 가늘고 긴데, 배만 둥글게 솟아올라 있다. 거미 내지는 E.T. 를 연상케 한다. 즐겨 입었던 바지는 이제 지퍼가 잠기지 않는다. 허리둘레는 어느덧 27에서 29로. 이 기묘한 결과물은 도대체 어떤 조리법을 따라 만들어진 걸까.
나는 이 조리법을 ‘뽈롱 레시피’라고 부르기로 했다. 핵심은, 서서히 진행된 변화와 그것을 늦게야 인지했을 때의 어색한 낯섦이다. 어떤 날은 내 의식이 '이 몸'이라는 낯선 상태를 한 발짝 뒤에서 관찰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변화는 조용히 침투했고, 내가 그것을 분명히 인지했을 때는 이미 꽤 많은 것이 바뀐 후였다. 그래서 어색하다. 십 대, 이십 대 시절의 가볍고 건강했던 내 몸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과 함께, 점점 짙어지는 팔자주름이 그 간극을 더욱 선명하게 만든다.
이 레시피의 주재료는 시간이다. 대략 30년. 여기에 삼겹살과 소주, 콜라 약간, 80~90년대 팝송과 디즈니 영화들, 새치 몇 가닥, 뜻밖의 눈물 한 방울, 설명하기 힘든 어색함 한 스푼을 넣는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 징후가 하나둘 나타난다. 새치를 신경 쓰는 시간이 점점 길어지고, 삼겹살에 오도독뼈가 있는지 확인하며, 감정의 허들이 낮아진다.
거울은 그 레시피의 결과를 매일 보여준다. 바지 몇 벌이 옷장 한구석에 묵은 시간처럼 걸려 있다. 누우면 배의 무게가 낯설게 느껴지고, 무의식 중에 손이 그곳을 쓰다듬는다. 건강과 젊음은 영원할 거라 믿었던 오만함의 대가. 외면했던 변화가 이제는 내 일이다. 기분이 썩 좋지 않다.
이 어색한 몸과의 동거는, 빚 독촉장을 매일 받는 것 같다. 당장 할 수 있는 게 없으니 자꾸만 외면하게 된다. 좋아하는 음악에 몰두하거나, 영화를 보거나, 글을 쓰거나, 때로는 술을 마신다. 그렇게 무언가에 집중함으로써 불편한 생각 위에 뚜껑을 덮는다. 이것이 회피인지, 아니면 이 단계를 지나가는 나만의 방식인지 알 수는 없다. 다만 지금 내가 찾은 불안정한 임시방편의 행복이라는 것만은 확실하다.
주말 정오가 지난 시간. 원룸 침대에 몸을 눕힌다. 얼굴을 비추던 햇살은 어느새 자리를 옮겼고, 창문 너머 구름은 아무 일 없다는 듯 흘러간다. 발치에는 화장실 문이 있고, 그 위에는 거울이 있다. 뽈롱한 배의 사람. 레시피의 현재 결과물. 나는 일어나 화장실 문을 닫고, 창문을 연다.
거울 속 나. 창밖의 구름. 오늘은 마주하는 대신, 구름을 보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