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능성 없는 일에 마음을 걸 때

by 에투알 주아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의 영화 〈우연과 상상〉은 세 편의 짧은 이야기로 구성된다. 2021년 베를린국제영화제에서 은곰상을 수상한 이 작품은, 우연한 만남과 사소한 착오, 그 틈에서 비롯된 감정의 진동을 섬세하게 포착한다. 마지막 에피소드 ‘다시 한번’은 정보통신망이 마비된 근미래를 배경으로, 소통의 본질을 탐색하는 정적인 드라마이자 은밀한 재난 영화다. 바이러스로 인해 인터넷과 메신저가 불통되고, 사람들은 다시 편지와 전보를 주고받는다. 말은 다시 직접 만나서 건네야 하는 것이 된다. 정보를 빠르게 주고받는 통신은 사라지고, 감정은 돌아가는 길을 택한다. 그렇게 말은 도구가 아니라 몸짓이 되고, 말하는 행위 자체가 다시 중요해진다. 전제가 사라지자, 말은 오히려 본질에 가까워진다. 이야기는 육교에서 우연히 마주친 두 여자의 착오로 시작된다. 나츠코는 상대를 고교 동창으로 착각하고 반가움에 말을 건다. 상대는 당황하지만, 이 오해는 곧 역할놀이가 된다. 나츠코는 아야를 옛 친구로, 아야는 나츠코의 기억 속 인물을 연기한다. 처음엔 상황을 맞춰주기 위한 제스처였지만, 대화가 이어지면서 두 사람 모두 의도하지 않은 내면을 꺼내놓게 된다.


이들은 서로를 정확히 알지 못한 채 이야기를 주고받는다. 하지만 바로 그 불확실함 덕분에, 이미 알고 있는 관계에선 꺼내지 못했을 말들이 튀어나온다. 직접적이지 않아서 가능한 진심이 있다. 말의 가장과 회피, 설정된 역할 속에서 오히려 감정은 솔직해진다. 대화는 실재와 허구를 오가며, 허구처럼 보이던 말들이 점점 현실의 무게를 지닌다. 시각적 장치는 인물의 정체성과 삶의 결을 압축적으로 드러낸다. 나츠코는 파란색 상의와 검은색 하의를 입고 등장한다. 강한 색 대비는 그녀가 환경에 흡수되지 못한 채 존재하고 있음을 암시한다. 동성애자로서의 정체성과 외부 세계 사이의 긴장을 시각적으로 표현한다. 반면 아야는 집의 벽지나 가구 색과 유사한 흰색 상의와 베이지색 바지를 입는다. 공간에 섞이는 색감은, 사회적 틀에 맞춰 살아온 흔적처럼 보인다. 우연은 대비되는 존재들이 일시적으로나마 교차할 수 있게 만든다. 두 사람은 실수에서 놀이로, 놀이에서 고백으로 옮겨간다. 그 과정에서 불완전한 기억과 닿지 못한 감정, 흐릿해진 자기 자신을 조금씩 드러낸다. 카메라는 인물들의 얼굴을 오래 잡는다. 대사는 짧지만, 표정과 시선은 길게 이어진다. 감정은 말보다 먼저 얼굴에서 움직이고, 침묵은 감정을 밀도 있게 채운다. 시선이 멈추지 않고 이어질 때, 둘 사이의 공기가 달라진다. 그 변화는 말로 설명되지 않지만, 화면 너머로 전해진다.


이 만남은 아야와 아들 사이의 단절과 병치된다. 가족이라는 가장 가까운 틀 안에서도 마음은 쉽게 닿지 않는다. 일상의 언어는 익숙하지만, 감정을 충분히 담지 못한다. 반면, 한 번의 오해와 짧은 역할놀이는, 예상하지 못한 이해로 이어진다.


나츠코에게 “아들에게 인사해 달라”는 아야의 말은 일상적인 인사가 아니다. 그것은 자신이 직접 하지 못한 말을, 누군가를 통해서라도 건네보고자 하는 시도다. 타인을 거쳐 감정을 전달하는 행위는, 회피가 아니라 간접적 진심의 방식이다.


감독은 말로 설명하지 않는다. 대신, 인물들의 얼굴을 따라가며 마음이 움직이는 순간을 응시한다. 닿지 않은 감정들, 닿으려 했던 말들을. 연결은 극적이지 않다. 그러나 그 작고 느린 진동이, 허구의 언어 너머로 조용히 이어진다.


이 영화는 말한다. 대화는 반복되고, 오해는 쌓이며, 기술은 사라질 수 있다. 그러나 우연과 상상이 만나는 자리엔, 여전히 진심이 머문다. 그리고 그 조용한 연결이, 희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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