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한 살 무렵, 몇 주간 병원에 입원했다. 이름도 생소했던 인두편도는 원래 일곱 살 무렵이면 자연스럽게 작아지기 마련인데, 내 경우엔 그렇지 않았다. 그래서 절제하기로 했다. 수면 마취에서 깨어났을 때, 콧속 깊숙이 허연 거즈 두 개가 단단히 박혀 있었다. 길이는 대략 8센티미터. 피가 엉겨 붙은 거즈는 이틀 뒤 처음 교체되었고, 그것을 빼낼 때 선혈이 뚝뚝 떨어졌으며, 눈물도 함께 흘러내렸다. 이후 며칠에 한 번씩 고통스러운 거즈 교체가 반복되었다. 그러나 그 고통보다 나를 더 힘들게 했던 건, 죽조차 어떤 맛인지 분간할 수 없던 순간들이었다. 코는 시멘트를 부은 듯 완전히 막혀 있었다. 몇 주 동안 나는 오직 입으로만 숨을 쉬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거즈를 제거할 때마다 설명하기 어려운 해방감이 밀려왔다. 숨이 뚫리는 찰나, 공기가 통과하는 길을 따라 시원한 선이 그어졌다. 아, 내가 살아 있구나. 단순한 들숨과 날숨, 숨을 쉰다는 사실이 그렇게 선명하게 인식된 건 처음이었다. 하지만 그 경험은 시작에 불과했다. 수술의 후유증인지, 나는 이후 평생 코가 막힌 상태로 살아야 했다. 아마도 수술의 부작용인 것 같다. 지금도 통화를 할 때면 마이크를 얼굴에서 멀리 둔다. 코 막힌 소리가 상대방에게 너무 크게 전달되기 때문이다. 친구들은 종종 웃으며 “지금 마이크 청소 중이냐?”라고 묻곤 한다. 그 말이 얄밉게 들리는 날도 있다. 냄새를 맡아야 하는 순간이면, 나는 무대 위 뮤지컬 배우처럼 과장되게 행동한다. 맨 뒷좌석 관객에게도 표정이 전달되도록 연기하듯, 깊고 크게 숨을 들이마신다. 후각이 무뎌진 탓에, 항상 그렇게 무리하게 공기를 끌어들인다. 재작년 어느 겨울날 새벽, 차가운 공기 속에서 코가 한순간 거짓말처럼 완전히 뚫린 적이 있었다. 그 생경한 자유로움에 몇 번이고 코로 숨을 깊이 들이마셨다. 공기는 맑고 날카로웠으며, 폐까지 한꺼번에 씻기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물론 다음 날, 어김없이 심한 목감기가 찾아와 며칠간 말을 잃었다. 인어공주는 잘생긴 남자를 만나기 위해 목소리를 희생했지만, 나는 뻥 뚫린 공기를 들이마시기 위해 그 대가를 치렀다. 그래서일까. 나는 태국산 아로마요법 흡입기, 야돔(ยาดม)을 항상 가지고 다닌다. 뚜껑을 열어 가볍게 들이마시면, 약한 멘톨 향이 코끝을 간질이고, 비로소 숨이 통한다는 실감이 든다. 아주 짧은 순간이지만, 그때마다 나는 또다시 ‘살아 있다’라는 감각을 되찾는다. 다른 감각들이 아무렇지 않게 지나칠 때, 이 하나의 감각은 때때로 내 존재를 환기한다.
숨을 쉰다는 것. 그 단순하고도 절실한 행위가 얼마나 소중한지, 평생 막혀 살아온 사람만이 어렴풋이나마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