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호-능곡역에서 쉬다 가세요
내가 가장 사랑하는 지하철역이 계양역이라면, 가장 사랑하는 기차역은 능곡역이다.
능곡역은 탁 트인 전망도 좋지만, 무엇보다도 미화 담당사의 장인 정신이 느껴지는 깨끗한 화장실 칸 내부가 가장 매력적이다.
사실 나는 카페든 식당이든 화장실이 깨끗하지 않으면 그 밖의 공간이 아무리 넓고 쾌적하더라도 안 가게 된다. 음식이 아무리 맛있더라도 말이다.
'고양이□'이라는 카페도 화장실이 매력적인 곳이라서 가끔 가게 된다. (물론 수박 주스도 맛있다. 수박 주스 때문에 거기서 일하고 싶다는 생각도 잠깐 들 정도로.)
이상하지 않은가. 화장실이나 역은 머무르는 곳이 아니고 그저 잠시 스치는 곳인데 왜 이런 애착(?)이 생기는 것일까.
어쩌면, 잠시 스친다는 점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내가 쭌을 이렇게 오랫동안 추억하는 것 또한 우리가 그저 잠시 스쳐 지나간 인연이라서, 그래서 자꾸 생각이 나는 것 같다.
역은 지나치고 나면 그만이다. 삶도 왕복이 없고 편도뿐이다. 그런데, 왠지 쭌은 스쳐 지나간 이 길에서 꼭 다시 만날 것 같다. 왜일까. 이 믿음의 근원은 뭘까.
-만약 갈 수 있다면, 쭌의 이름을 딴 "나준역"으로 가고 싶다. 오늘처럼 비 오는 날은 그 역에서 우산을 든 쭌을 만나고 싶다.
BGM: Travel (리스본행 야간열차 OST)
https://m.youtube.com/watch?v=f-tP0DB18V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