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_나는 아직도 상을 차린다
아이들의 성년기! 딸애가 스무 살을 넘었고
이제는 내 손이 닿지 않는 세상을 살아간다.
엄마가 해줄 수 있는 일이라는 건
이제 거의 없는 것 같고,
오히려 엄마의 말이 불편한 때가 많아졌다.
처음엔 그게 섭섭했고,
나를 밀어내는 것 같아 마음이 아렸다.
그런데 가만 생각해 보니
그건 딸이 커졌다는 증거였고,
내가 이제 다른 시간을 살아야 한다는 신호 같았다.
아이들이 자라는 동안
나는 늘 '다음'을 미루고 살았다.
애기 때 지나고,
학교 가고,
대학 가고,
군대 다녀오면, 취직하면...
그때쯤엔 나도 나를 살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런데 막상
그 시간이 왔는데,
나는 나를 사는 법을 잊고 있었다.
언니들이 말했다.
"이제부터가 시작이야, 진짜 인생은 지금부터야."
그 말에 처음엔 웃었다.
뭐가 시작이야, 벌써 반백살인데.
몸도 여기저기 고장 나고,
기억력도 깜빡깜빡,
일도 언제까지 할 수 있는지 모르겠고,
자신감은 바닥나 있는데,
그런데...
그 말이 자꾸 위로처럼 들렸다.
내가 혼자 늙어가는 게 아니라,
함께 중년을 건너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느낌.
다들 모양은 다르지만
각자 자기 자리에서 천천히
자신의 시간을 다시 살아내고 있다는 위로.
요즘은
나보다 나이 많은 언니들 말이 더 와닿는다.
그들이 지나온 시간에
나의 불안과 질문이 겹쳐 보인다.
그리고 나보다 조금 어린 친구들도
각자의 방식으로 이 시간의 문턱에 서 있는 게 보인다.
가끔은 나도
그들에게 이렇게 말하고 싶어진다.
"이제부터야, 아직 안 늦었어."
이 말은 위로 같기도 하고,
약속 같기도 하다.
혼자 늦게 출발하는 게 아니라,
우리 모두가 이제야 진짜 '나'로 살아보려는 시기를 맞은 것 같아서.
이제부터가 시작이래요.
언니들이 그랬거든요.
나도 그 말을,
당신에게 건네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