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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실크로드 Feb 26. 2024

유리창에 부딪힌 아기새

Just Moved In 미국 홈스테이 일기

홈스테이

브런치 작가 심사에서 합격 첫번째 글


미국 현지의 생활이 나에게는 마치 내가 살아왔던 고향처럼 익숙해지고 있었다. 약간의 불편함들도 분명 존재했으나 대자연의 매력은 그런 불편함을 상쇄시켜주었다. 나는 어느 날부터 미국 교회의 바이블 스터디에 참여하게 되었다. 미국은 대부분 차로 이동을 해야 하는 거리이긴 하지만, 그나마 어느 정도 가까운 거리에 살고 계시는 50-80세 분들이 일주일에 한 차례, 마치 가족처럼 모여 성경을 읽고 기도하며 나눔의 시간을 가졌다. 그들은 연세 있으시면서도 운전에 능숙했고 그만큼 또 안전한 도시였다.



이 시간은, 나에게 풍요로운 언어적 경험을 하게 해주었다. 한국에서의 문법 공부와는 달리, 이곳에서 나누는 대화들은 공부가 아닌 그들의 평범한 일상이었다. 물론 이제 막 맨땅에 헤딩 한 나로서는 그녀들의 대화에서 놓치는 부분도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모두 나를 힘껏 도와주려고 손을 내밀었다. 당시에는 스마트폰이 없던 시절이라 빠른 검색이나 번역으로 쉽게 언어의 장벽을 해결할 수 있는 시대가 아니었다. 신세계 Chatgpt는 말할 것도 없다.


여하튼 바이블 스터디를 시작으로 현지인과 함께 생활할 좋은 기회가 찾아왔고, 언어에 노출되는 환경이 얼마나 중요한지 실감했었다. 그뿐만 아니라, 인생의 고난과 즐거움을 오랜 시간 받아들이고 공유해온 이들은 모두, 50-80세, 한때 세월을 살아남은 고수 중에 고수들이었다.


콜로라도의 풍요롭고 아름다운 자연이 그들의 언어에 자연스럽게 반영되어 있었다. 내가 말하는 여유는 물질적인 풍요로움이 아닌, 그들의 내면의 여유와 풍요로움이었다. 아주머니, 또는 할머니들은 나에게 따뜻하게 대해줬고, 멜로디처럼 흘러가는 대화 속에 인생의 지혜와 미국 문화를 공유해 주었다.





그러던 어느 날, 이사를 해야 하는 시점이 찾아왔다. 바이블 스터디가 열렸던 집 주인아주머니도 마침 룸메이트를 찾고 있었다. 세상은 우연이 아닌 인연으로 얽혀져 있었다. 결국, 그 아주머니 댁으로 들어가 태어나서 처음 경험하는 홈스테이 생활을 시작하기로 했다.



이사 전, 나는 손수 깍두기를 담그기로 했다. 이제부터 함께 살게 될 미국 아주머니와 함께 어떤 음식을 공유하게 될지는 알 수 없었지만, 나름대로 깍두기로 이전 룸메이트들과 만찬의 시간을 갖고, 이사 후의 새로운 룸메이트와의 일상생활 준비를 한 것이다.


열심히 무를 썰고 소금을 치며 양념을 만들고, 미리 준비한 사이다를 조금 부어주며 맛있게(?) 완성했다. 요리라기보다는 자르고 뿌리고 굴리는 느낌이었지만 여하튼 마지막으로 함께한 깍두기 만찬은 내게 소중한 이별의 순간이 되었고, 우리는 정든 아파트를 떠나 각자의 길로 흩어졌다.




이사를 하였다. 나를 반겨주는 따뜻해 보이는 2층 집, 바로 이 집이다. 새로운 삶의 시작. 그 문턱을 넘나들면서 나는 나만의 세상을 창조했다. 거실 창문은 마치 책 속 페이지처럼 열려 있어서, 눈부신 햇살과 함께 새로운 일상의 장면이 눈앞에 펼쳐졌다. 깔끔하게 정리된 앞 정원과 뒷정원만으로도 나는 이미 숲속의 여행자 같았다.



그리고 더 이상은 누군가의 붕붕카에 의지하면서 살 수가 없어 10살이 된 혼다 아코드를 중고로 구입하였다.



폭설로 집에 갇혀 며칠 동안 머무르게 되면, 나는 이 자리에서 영화의 세계에 젖어들었다. 은은한 조명에 담요, 리모컨, 소파, 벽난로가 마치 영화 소품 같기도 했다.







한국에서 가져간 내 이불이 미국 침대에 잘 어울리지는 않았지만, 아주머니의 이불을 사용하는 것보다는 내 이불이 더 마음에 들었다. 수십 년 된 침대의 특유한 삐걱거림과 마룻바닥의 삐걱거리는 소리까지도 어느 날은 그 어떤 낡음 속에서 느껴지는 고요한 분위기를 더 깊게 만들어주곤 했다. 나는 이 방을 정말 좋아했다. 아주머니의 바로 옆 방이었는데, 나는 타지에서의 외로움을, 아주머니는 사별 후의 외로움을 서로 달래줄 수 있었다.



이사하면서 새로운 장소에서 스케치북을 한 권 구입했다. 현재 이 스케치북은 신혼집 또는 우리의 스튜디오를 꾸며주는 인테리어 소품으로 우리 부부와 함께 있다.



2층에서 가장, 아니 이 집에서 가장 이쁜 공간은 바로 마스터룸이다. 세면대, 욕실, 침대, 액자, 책꽂이 등등 소품 하나하나 아주머니의 손으로? 정성스럽게 꾸며져있었다. 게다가 최고급 매트리스에 하늘색 인형까지. 나는 이 방을 바라볼 때마다 항상 눈이 반짝거렸다. 물론 내가 사용하던 작은방도 분위기 있고 아늑했지만, 이 방은 넓게 트인 럭셔리 호텔방처럼 꾸며져있어, 마음에 들었다.


어느 날, 이 마스터룸을 사용하는 것은 어떻겠냐는 아주머니의 제안이 있었다. 나는 망설임 없이 받아들이고 얼른 짐을 옮겼다.






나의 코 골음 소리나 잠꼬대가 옆방으로 전달되어서 였을까? 여하튼 집 주인아주머니는 남편분과 사별하신 후, 이 큰 방을 혼자 사용하고 싶지 않아 비워두고 있었는데, 이제는 내가 사용하는 게 좋겠다고 하셨다. 방 창문은 절제된 연필 선의 스케치처럼 그려져 있었고, 그 창밖으로 펼쳐진 풍경은 마치 화가의 손을 거친 한 폭의 수채화 같았다. 밑그림은 거의 비슷하였지만 색감은 항상 다르게 느껴졌다. 이 방은 나의 새로운 삶을 안전하게 지켜주면서 동시에 세계 문학 속 한 장면처럼 나를 이끌어주었다.






이 마스터룸에는 프라이빗 욕실이 있었다. 샤워 부스를 오랜 기간 사용하지 않아 낡은 흔적이 많이 남아 있었다. 미국은 상당히 높은 인건비로 인해 주로 주민들이 셀프 시공을 선호하지만, 배수관부터 전체를 수리하는 것은 우리에게는 불가능했다.


내 기억에 따르면 당시에 약 $7000를 지불하였다. 또한 음식물 분쇄기를 수리하는 데에만 약 $400가 들었다. 물론 모두 아주머니가 부담했지만, 이는 미국 전문가들의 높은 인건비를 실감하게 해주는 경험이었다.



이전에 언급했던 유리창에 부딪히는 새를 기억한다. 나는 바로 이 창문에서 아기 새와 눈을 마주쳤다. 하늘인 줄 알고 전력 질주하다가 빙그르르르. 다행히 아기 새의 목숨에는 지장이 없었다.



아주머니의 남편분은 살아계실 때 요리를 즐겨 하셨던 분이었다고 하셨다. 그분이 돌아가시기 전까지 아주머니가 요리를 해본 적이 없다고 고백하셨다. 그동안 룸메이트들은 모두 요리 박사였어서 굶을 일이 없었지만, 이제부터 앞이 캄캄해졌다. 어떻게 요리에 소질이 전혀 없는 둘이 함께 살게 된 것인지, 정말 맙소사라는 생각이 들었다.


포도와 빵 말고 다른 것은 없나요? 참고로 홈스테이 금액에 식비는 포함되어 있지 않아서 상당히 저렴한 편이었다.




스터디 그룹을 진행하면서 많은 음식을 준비해야 할 것 같았지만, 의외로 그렇지 않았다. 값비싼 음료를 준비할 필요도 없었다. 참석한 손님들은 민폐를 끼치지 않으려는 정신으로 각자 개인 텀블러에 음료를 담아오기도 했었다. 한국식으로 생각하면서 정이 없다고 여기다가, 점차 생각이 바뀌게 되었다. 그들의 방문이 잦았기 때문에 오히려 더 서로를 존중할 수 있고 편리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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