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얼 뱅크시(REAL BANKSY: Banksy is NOWHERE)>
예술계의 반항아, 자칭 “예술계의 테러리스트”.
영국의 그래피티 아티스트 뱅크시를 이르는 수많은 별명들 중 하나이다. 25년 간 익명으로 활동하며 끊임없는 저항 정신과 신랄한 사회비판 작업을 이어간 뱅크시는 오늘날에도 변함없이 예술계, 그리고 나아가 우리의 일상에까지 신선한 충격을 선사하고 있다.
그라운드 서울에서 10월 20일까지 개최되는 <리얼 뱅크시(REAL BANKSY: Banksy is NOWHERE)>전은 특유의 풍자와 사회적인 메시지로 관객의 행동 변화를 촉구하는 뱅크시의 주요 작업들을 소개한다. 국내 최대 규모의 뱅크시 전시로 알려진 이번 기획은 크게 네 개의 섹션으로 나뉘어, 전쟁 반대와 자본주의 비판을 비롯해 뱅크시가 다루는 굵직한 주제를 따라가고 있다.
첫 번째 섹션은 뱅크시의 작업 연혁과 개괄을 시작으로, 약 25년 동안 예술을 통해 폭력과 차별, 권위주의에 지속적으로 저항해온 그의 행보와 그가 동시대 예술계에 미치고 있는 영향을 집중적으로 조명한다. 특히, 팔레스타인 장벽에서의 활동과 더불어 우크라이나 전쟁과 난민 문제, 자본주의의 모순을 꼬집는 ’디즈멀랜드‘ 작업에서 사회적 분쟁에 대한 그의 지속적인 관심과 비폭력, 반전의 메시지를 엿볼 수 있다.
거리예술인 그래피티를 공공예술의 영역으로 끌어올렸다고 평가받는 뱅크시는 위치와 시기 등을 면밀히 고려해 그래피티 작업을 이어왔다. 공공의 영역 혹은 사유지를 무단 침범해 메시지를 남기는 그래피티 장르의 형식은 그의 사회비판적, 저항적인 메시지와 결합되어 더욱 강력한 파급력을 지닌 예술로 자리잡았다.
익명 활동만을 고수하는 뱅크시는 스스로를 ‘스텐실을 통해 존재하는 (Existencilism)’ 사람이라고 설명한다. 그는 예술계의 인정을 받거나 명예와 권위를 가진 어떤 작품의 작가가 아니라, 사회적 메시지를 전달하는 ‘스텐실’로서 존재하며 현대 사회의 모순을 고발한다. 실체가 없는 익명의 뱅크시는 그의 예술 작업을 통해 메시지로 존재한다.
뱅크시는 그의 작업들을 통해 예술의 본질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한다. 특히, 자본 시장과 예술의 관계에 대한 사유를 바탕으로, 금전적인 가치를 떠나 예술이 궁극적으로 어떤 일을 해낼 수 있는지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한다.
두 번째 섹션의 제목이기도 한 ‘풍선과 소녀(Girl with Balloon)’은 이러한 뱅크시의 예술에 대한 가치관을 단적으로 보여주었던 작업이다. 2019년 소더비 경매 낙찰 직후 액자 속 숨겨진 파쇄기가 작동되는 퍼포먼스는 비단 예술계뿐만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큰 파장을 몰고 온 바 있다. 약 14억원에 달하는 금액에 낙찰된 직후 주저 없이 갈려나가 버리는 작품의 모습은 이를 지켜보던 모두에게 큰 충격을 주었고, 이로써 뱅크시는 작품 외적인 요소에서 또 한번 효과적으로 자신의 메시지를 전달해 냈다.
“예술은 불안한 자들을 편안하게 하고, 편안한 자들을 불안하게 해야 한다.”
- 뱅크시(BANKSY)
이 섹션에서는 ’풍선과 소녀‘처럼 예술과 우리 삶 전체가 자본화되어 가는 실정을 경계하며 이러한 현실을 고발하고 자본주의의 모순을 통렬하게 비판하는 뱅크시의 작업들을 만나볼 수 있다. 매우 도전적이고 한편으로는 급진적이기까지 한 여러 가지 시도를 통해, 그는 마치 종교가 되어버린 듯한 소비문화와 이를 부추기는 대기업의 캠페인을 비롯해, 이미 익숙해져 일상에서 당연시되고 있는 자본주의 사회의 구조적인 모순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운다.
뱅크시는 권위와 통제에 저항하며 우리 삶에 대한 진실한 성찰을 촉구한다. 우리가 믿고 의지하는 사회 지도층, 종교, 가지고 싶어 안달 내는 명품 가방. 과연 그것이 정말 우리가 원하는 것인가, 타인의 욕망을 모방하는 것인가, 혹은 그저 사회적인 관습을 따르는 것인가?
세 번째 섹션에서는 엘리자베스 여왕과 윈스턴 처칠을 비롯한 주요 사회 지도층의 모습을 원숭이나 락커로 변형해 표현하는 작업부터, 성모 마리아의 이미지를 독극물과 결합한 작업, 등 공권력과 저명한 사회 지도자의 권위와 통제를 위트 있게 풍자한 작품들을 만나볼 수 있다.
이렇듯 파격적이고 실험적인 시도를 통해 뱅크시는 우리의 사고의 틀을 전복시키고, 관객이 진정한 사유와 성찰을 통해 스스로의 권위를 회복할
수동적인 대중의 역할을 거부하고 주체적으로 행위하라는 메시지를 전하며 대중을 설득하는 노력을 통해 그는 ‘예술가’와 ‘전문가’ 위주의 예술계에서 ‘관객’의 자리를 만들어내고자 한다.
마지막 섹션에서는 지치지 않고 폭력, 자본화, 전쟁, 권위와 통제에 대한 저항의 메시지를 끊임없이 설파하는 뱅크시의 메시지를 함축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이 섹션의 하이라이트는 바로 소더비 경매에서 파쇄된 ‘풍선과 소녀(Girl with Balloon)’이다. 파쇄된 이후 ‘사랑은 쓰레기통에 (Love is in the Bin)’이라는 새로운 제목이 붙은 이 작품은 3년 뒤 다시 경매에 나와 기존 낙찰가의 20배가 넘는 301억 원에 낙찰되었다. 스스로 예술계의 관습을 깨고 변혁의 성공을 증명한 뱅크시는 이제, 그의 메시지를 전달받은 관객에게 턴을 넘긴다.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nowhere) 베일에 싸인 뱅크시가 바로 여기에 나타나(now here) 외친다. 주체적인 관객으로서 행동하라고, 지금보다 나아지도록.
이번 전시는 예술의 영향력을 통해 우리 삶과 사회를 변혁하고자 했던 뱅크시의 메시지와 작품세계로의 가교를 마련하였다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이로써 관객들은 그의 본명이나 나이, 국적에 대한 질문보다는 그가 예술을 통해 전파하는 메시지로 시선을 돌려, 뱅크시의 비전에 공감하며 “진짜 뱅크시”를 알아갈 수 있을 것이다.
[아트인사이트 기고글 원문] https://www.artinsight.co.kr/news/view.php?no=7106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