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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과학자를 넘어선 ‘인간 마리’의 이야기

스스로 빛나는 별 - 뮤지컬 <마리퀴리>

by 소영

폴로늄과 라듐을 발견한 방사능 연구의 선구자이자, 역사상 가장 위대한 과학자 중 한 명으로 꼽히는 마리 퀴리. 그녀의 이름 앞에는 늘 ‘최초의 여성 노벨상 수상자’, ‘두 개 분야에서의 노벨상을 수상한 최초의 수상자’라는 화려한 수식어가 따라붙는다.


뮤지컬 <마리 퀴리>는 이런 찬란한 업적 너머에 존재하는, 한 인간으로서의 마리 퀴리를 무대 위에 펼쳐 보인다. 단순히 그의 업적을 나열하는 데에 그치지 않고, 위대한 과학적 발견의 빛과 어둠, 옳고 그름의 경계에서 고뇌했던 한 인간의 내면을 진솔하게 그려낸다. 새로운 물질을 발견한 과학자의 영광만이 아니라 그로 인해 감당해야 했던 책임, 그리고 결코 꺾이지 않았던 숭고한 의지를 생생하게 그려내는 이 작품은, 관객에게 감동을 넘어 한 인물에 대한 깊은 존경심을 불러일으킨다.


2025 마리퀴리 메인포스터, 제공 라이브(주).jpg


마리 퀴리는 폴로늄과 라듐이라는 새로운 원소를 발견하며 여성 최초로 노벨상을 수상하는 쾌거를 이루지만, 뿌리깊은 성차별이 자리한 프랑스 과학계에서 폴란드 출신 이민자 여성으로서 늘 사회적 차별을 견뎌야 했다.


노벨상을 수상할 때마저도 온전히 주인공이 될 수 없었던 마리에게 '라듐'은 스스로를 증명해주는 자신의 ‘또 다른 이름’이었다.

홀로 작은 유성처럼
떠다니는 짙고 푸른 너
제 몸에 상처를 내어
폭발하는 독하고 모난 나

나의 또 다른 이름
나의 또 다른 이름

너 라듐 바로 너
그래 바로 나
라듐
그건 나

- ‘또 다른 이름’, 뮤지컬 <마리 퀴리>


그러나 라듐의 유해성이 밝혀지며 이를 둘러싼 인물들의 갈등과 대립, 내면적 고뇌가 본격화된다.

스스로 빛을 내는 라듐은 암 치료의 가능성을 연 경이로운 물질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생명을 앗아가는 독이기도 했다. 마리 개인에게도 라듐은 노벨상의 영예를 안겨준 빛인 동시에, 방사능 피폭으로 스스로의 목숨을 옭아맨 그림자였다.


03. 마리퀴리_캐릭터포스터_마리_박혜나.jpg

뮤지컬 <마리 퀴리>의 가장 큰 의의는 역사적 인물을 교과서에 박제된 위인이 아닌 한 명의 입체적인 ‘인간’으로 그려낸다는 점에 있다. 무대 위의 마리는 신물질을 발견한 위대한 과학자이자, 사랑하는 남편의 동료이자 동반자, 한 아이의 어머니, 그리고 누군가의 친구로서, 다양한 역할 속에서 끊임없이 갈등하고 성장한다.


예상치 못한 삶의 고통 앞에서도, 마리는 이를 회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돌파해 나간다.

라듐으로 죽어간 노동자들을 위해 투쟁하는 안느에게 모든 것을 바로잡기로 약속한 마리는 남편 피에르의 갑작스러운 사망 이후 피에르의 시신을 부검해 직접 라듐의 위험성을 알리기로 선택한다. 끝없는 고뇌 속에서 결국 결단을 내리고 자신이 옳다고 믿는 일을 향해 흔들림 없이 나아가는 그녀의 모습은 진정한 ‘고결함’과 ‘숭고함’이란 무엇인지 관객으로 하여금 생각하게 한다.




뮤지컬 <마리 퀴리>는 위대한 업적만큼 거대한 무게를 감당해야 했던 여성 과학자 마리 퀴리의 삶을 통해 우리에게 중요한 질문을 던진다.


스스로의 신념과 성취가 예상치 못한 비극을 낳았을 때,
우리는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과학자로서, 혹은 한 인간으로서 어떤 선택과 책임을 따라야 옳은 것인가?


<마리 퀴리>는 그 답을 직접 제시하는 대신, 그 고통과 고뇌 속에서도 자신의 굳은 심지를 잃지 않고 보다 나은 길을 향해 자신만의 걸음을 이어 나갔던 한 인간, 마리 스크워도프스카 퀴리의 뒷모습을 보여준다. 그리고 관객들은 그 숭고한 여정 앞에서, 각자의 가장 위대한 존경과 경의를 표하게 된다.


마리는 스스로를 빛나는 라듐과 동일시했지만, 그녀는 라듐이 아닌 ‘마리 스크워도프스카’ 자체로 빛나는 사람이었다. 극중 안느의 말처럼, 스스로 빛나는 폴란드의 별이었다.



[아트인사이트 기고글 원문] https://www.artinsight.co.kr/news/view.php?no=76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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