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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을 향하는 두 마녀의 우정과 성장

뮤지컬 <위키드>

by 소영

지난 해 리메이크 영화 버전으로 큰 화제를 모았던 뮤지컬 <위키드>가 13년 만의 오리지널 내한 공연으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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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로 인하여, 달라졌어 내가


뮤지컬 <위키드>의 중심 플롯은 단연 ‘엘파바’와 ‘글린다’의 우정과 성장이다.


외모부터 성격까지 모든 것이 극과 극인 두 인물은 처음에는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고 갈등하지만, 점차 서로에게 가장 소중한 존재가 되어간다. 상처받고 방어적이지만 편견 없는 마음을 가진 엘파바와 대중의 시선에 갇혀 있던 글린다가 서로의 진정한 모습을 알아가는 과정은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보듬어주는 우정의 본질을 보여준다. 특히, 겉모습으로 사람을 판단하는 사회 속에서 이들의 우정은 진정한 연대의 가치를 관객에게 일깨워준다.


물론, 그들의 우정은 단순히 서로에게 힘이 되는 관계에서만 머무르지는 않는다. 'Defying Gravity’에서 엘파바와 글린다는 서로 다른 가치관과 신념을 인정하고, 함께할 수는 없지만 앞날을 늘 응원한다며 이별한다. 이후 마법사와 마담 모리블의 음모 속에서 엘파바와 글린다는 적이 되기도 하고, 피에로를 두고 갈등하며 서로에게 커다란 상처를 남기기도 한다. 그렇지만 서로를 미워하고 의지하고 인간적으로 사랑했던 그 모든 일련의 과정을 통해 둘은 비로소 성장할 수 있었다.


Who can say if I’ve been changed for the better
But because I knew you
I have been changed for good

- 'For Good', Musical <Wicked>


엘파바는 초록색 피부와 남다른 마법 능력으로 인해 끊임없는 차별과 외면 속에 살아온 인물이다. 극 초반 엘파바는 낮은 자존감과 방어적인 태도로 인해 늘 타인과의 관계에 서툴고, 스스로에 대한 확신을 가지지 못하며 자신의 마법 능력을 온전히 통제하지 못하는 불안정한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글린다와 우정을 쌓으며, 그리고 오즈의 마법사와 마담 모리블의 음모에 정면으로 맞서며 엘파바는 점차 자신의 신념을 굳건히 세워 나간다. 극 말미의 엘파바는 더 이상 세상의 편견에 움츠러 들지 않고, 강한 정의감과 타인에 대한 연민을 바탕으로 불의에 맞서 진실을 밝히고자 한다. 마지막 장면에서는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면서도 스스로 희생하여 외부의 시선에 굴하지 않고 스스로 가치있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지켜나간다.


글린다는 금발에 빼어난 미모, 쾌활함을 바탕으로 모두의 사랑을 독차지하는 인물이지만, 외적인 모습 뒤에는 타인의 시선과 대중의 환호에 갇혀 스스로의 진정한 모습을 보지 못하는 미숙함을 가지고 있었다. 특히 ‘선한’ 이미지를 유지하지만 때로는 이기적이고, 자신의 이익을 위해 타인을 이용하기도 하며, 책임보다는 권력과 화려함을 좇는 모습을 보인다.


그러나 엘파바와의 복잡한 우정 관계 속에서 글린다는 엘파바의 순수함과 강인함을 통해 그녀는 스스로의 행동과 책임에 대해 성찰하게 되고,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마법사와 마담 모리블의 음모에 동조했던 자신의 과거를 깨닫게 된다. 마지막 장면에서 글린다는 단순히 허영심이 아닌 오즈 시민들에 대한 봉사의 마음과 책임감을 바탕으로, 진정한 의미에서의 ’선한 글린다(Glinda the Good)’로서 자신의 영향력을 긍정적으로 활용하려는 진정한 리더로 성장했다.


이렇게 엘파바는 글린다로 인하여, 글린다는 엘파바로 인하여, 영영 달라졌다.

서로가 아니었다면 결코 알지 못했을 장면들을 경험하며 울고, 웃고, 상처받고, 성장했다.


그들이 아마도 남은 생 동안 다시는 만나지 못할 것이라는 점에서, 그리고 글린다가 엘파바의 진짜 결말을 영영 알 수 없을 것이라는 점에서 이들의 우정은 분명 새드엔딩이지만, 결국 서로에게 변화와 성장이라는 흔적을 남겼기에, 그들의 우정은 빛났다.



어지러운 세상 속 ‘진실’을 향해


‘엘파바’와 ‘글린다’의 아름다운 우정을 그리고 있지만, 뮤지컬 <위키드>는 비단 우정만에 대한 이야기는 아니다.


두 마녀의 우정 이면에는 진실을 향한 여정이 자리하고 있다. <위키드>는 차별과 프로파간다, 진실과 거짓이 뒤섞인 세상 속에서 진실을 찾고 부패한 권력에 맞서는 숭고하고 괴로운 싸움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초록색 피부를 가졌다는 이유만으로 끊임없이 외면당하고 비난받는 엘파바의 모습은 소수자, 혹은 주류와 다른 이들이 겪는 차별과 편견을 그대로 보여준다. 절대 권력을 가진 마법사와 그 조력자 마담 모리블은 시민들을 선동해 엘파바를 ‘사악한 마녀’로 낙인찍고, 오즈의 시민들은 그녀의 행동을 오해하며 비난한다. 그저 꿈 많은 소녀였던 엘파바가 ‘사악한 마녀(The Wicked Witch)’로 변하는 과정은 특정 집단에 대한 혐오와 차별이 어떻게 형성되고 확산되는지를 극명하게 드러내며, 우리가 무심코 행하는 배제와 비난이 누군가에게 얼마나 큰 상처가 될 수 있는지를 되돌아보게 한다.


특히, 이 과정에서 오즈의 마법사와 마담 모리블은 대중을 통제하기 위해 교묘하게 정보를 조작하고 거짓을 진실처럼 포장한다. 이들은 엘파바의 능력과 선의를 왜곡하여 대중에게 공포심을 심어주고, 이를 통해 자신들의 권력을 유지하려 한다. 그 결과 오즈 시민들은 엘파바가 ‘물에 녹는다’는 해괴한 소문마저 그대로 믿는 지경에 이른다. 이는 오늘날 미디어와 정보의 홍수 속에서 우리가 어떻게 사실을 걸러내고 진실을 판단해야 하는지에 대한 중요한 질문을 던진다. 눈앞의 현상만을 좇지 않고 본질을 꿰뚫어보는 비판적 사고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대목이다.


궁극적으로 이 모든 서사는 '진실'을 향한 여정으로 귀결된다. 엘파바가 사악한 마녀가 아니라 오즈의 부패한 권력에 맞서 진실을 밝히려 했던 정의로운 인물이었다는 사실, 그리고 글린다가 대중의 환호 속에서 진정한 자아를 찾아가는 과정은 관객들에게 겉으로 드러나는 현상 뒤에 숨겨진 진실을 파헤치고, 편견을 벗어던지고 세상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려는 노력이 얼마나 중요한지 역설한다.



[아트인사이트 기고글 원문] https://www.artinsight.co.kr/news/view.php?no=773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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