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많은 우주 속 '나만의 우주'를 사랑하는 법 - 뮤지컬 <이프덴>
"Life is a C(Choice) between B(Birth) and D(Death)."
인생은 B(Birth, 탄생)과 D(Death, 죽음) 사이의 C(Choice, 선택)이다.
- 장 폴 사르트르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다.
누구와 여행을 떠날지, 아르바이트로 어떤 일을 할지, 오늘 점심으로 무엇을 먹을지까지 우리의 삶은 선택으로 가득 차 있다. 심지어는 선택하지 않는 것조차 하나의 선택이다.
뮤지컬 <이프덴>은 주인공 엘리자베스가 내리는 선택에 따라 펼쳐지는 ‘리즈’와 ‘베스’ 두 삶의 여정을 그린다. 이혼 후 10년 만에 뉴욕으로 돌아온 엘리자베스는 실수로 케이트, 루카스와의 약속을 동시에 잡게 되고, 둘 중 누구와 하루를 보낼 것인지 선택하게 된다. 언뜻 작고 사소해보이는 이 선택을 시작으로, 엘리자베스가 삶의 갈림길에서 내리는 수많은 선택들은 ‘리즈’와 ‘베스’의 삶을 나누는 분기점이 되어, 그녀를 서로 다른 두 가지 삶으로 이끈다.
선택한 순간 되돌릴 수 없어
날아올라도 추락해도
너의 선택은 하나뿐이야
- ‘What If?’, 뮤지컬 <이프덴> 중
대학교 강사로 일하는 리즈는 군의관 조쉬를 만나 두 번째 결혼을 하고 아이도 가지지만, 조쉬가 세 번째 파병에서 죽음을 맞이하며 다시 혼자가 된다. 베스는 도시계획국에서 일하며 도시계획가로서 성공한 커리어를 얻게 되지만, 어긋난 선택으로 인해 대학원 동창 루카스, 스티븐과의 관계는 소원해지고 만다.
리즈의 삶도, 베스의 삶도 결코 완벽하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사람이 무결하고 완벽한 결정만을 내리며 살 수 없다는 것은 모두가 동의할 당연한 사실이다.
그렇지만 한 번 내린 선택은 번복할 수 없다.
로버스트 프로스트가 시 <가지 않은 길>에서 담담히 이야기하듯, 우리는 결코 한 가지 길밖에는 선택할 수 없고, 한 번 선택한 길은 걸어 가야만 한다. 그렇기에 우리는 필연적으로 가지 않은 길에 대한 회한을 안고 살아간다. 미래를 향해서 주체적으로 자기 삶을 살아가는 누구나라면 받아들여야만 하는, 스스로의 선택에 따른 결과이다.
어쩌면 우리는,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기에 얽매일 수밖에 없다.
사르트르에 따르면,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 즉, 인간이 먼저 세계 속에 실존하고, 어떠한 존재로 정의되는 것은 나중의 일이다. 달리 말해 인간은 스스로의 존재 의미를 만들어나가는, 주체적이고 실존적인 존재이다.
엘리자베스가 그랬듯, 모든 인간은 끊임없이 이어지는 선택에서 벗어날 수 없다. 그 결과가 불행이든 환희이든 간에 삶은 멈추지 않고 흘러간다.
단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이 땅에 발 딛고 서 있는 오늘의 ‘나’는 과거의 내가 내린 모든 선택의 결과이며, 우리가 살아가는 지금은 오롯이 스스로의 주체적인 결정으로 만들어진 유일한 우주라는 것이다. 그 이면에는 지금의 나를 만들어낸 수많은 삶의 갈림길이 있고, 새로운 챕터로 나아갈 때마다 그 길을 포기하지 않고 걸어간 수많은 과거의 내가 있다.
내 모든 순간은 이 순간에
1분 1초 모두 이곳에
지금의 날 만든 선택들
다가올 사건과 사고들
그 모든 것이 내 안에 있어
내 마음 속에 나의 생각 속에
…
내 사랑 끝이 났지만 삶은 끝나지 않았어
나는 걸어 이 길을 또 걸어갈래
- ‘Always Starting Over’, 뮤지컬 <이프덴> 중
자신의 선택을 후회하지 않고 눈앞에 펼쳐진 삶의 길을 계속해서 당차게 걸어가겠다는 엘리자베스의 다짐은, 이미 내린 선택이 옳은지 의심하고 앞으로 다가올 선택은 어떻게 해야할지 고민하는 우리에게 모순덩어리인 삶을 사랑할 용기를 준다.
어쩌면 스스로의 선택이라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우리의 삶은 충분한 존재의 의미를 지닌다.
‘내’가 ‘나’로서 내린 모든 선택들은 삶을 충실히 살아낸 흔적이자, 나를 지금 이 장면으로 데려다 놓기 위한 복선이다.
네 눈앞에 펼쳐진 삶에
망설이지 마 뛰어들어
너의 기회는 한 번 뿐이야
너의 선택 하나 뿐이야
- ‘What If? (Reprise)’, 뮤지컬 <이프덴> 중
우리는 리즈도, 베스도, 혹은 수많은 우주 속 그 어떤 엘리자베스도 될 수 있다. 우리 앞에는 수만 갈래의 길이 기다리고 있다. 중요한 것은 삶의 모든 장면을 섬세하게 음미하고 나다운 선택을 멈추지 않는 것이다.
어찌 됐든 삶은 계속된다.
결국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수많은 가능 세계 속 우리가 직접 선택한 오늘을, 작은 행복과 사랑으로 가득한 지금을 충분히 만끽하고 사랑하는 것, 그리고 다가올 삶을 충실히 걸어가며 인생이 주는 모든 단맛과 쓴맛을 아낌없이 맛보는 것이다.
그렇게 세상 모든 엘리자베스가 자신만의 존재 의미를 만들어나갈 수 있기를, 조용히 소망한다.
[아트인사이트 기고글 원문] https://www.artinsight.co.kr/news/view.php?no=735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