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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미향 Mar 06. 2024

추상화가의 추상적 웅얼거림

빡따쥐 갤러리 이야기 1


여행 짐을 싸면서 생각하니 이런 개념의 여행은 처음이구나 싶다. 프랑스에 있는 쥬아니 시의 작은 내 집으로 가는 여행. 아직 사진으로만 보았고 파리에서 떼제베로 한 시간 십 분, 프랑스의 중북부에 위치한 도시. 그 이상의 정보는 내게 없다. 그래도 내 집이다.     

이 희귀한 일은 내가 속한 대구현대미술가협회에서 시작되었다. 지난 2월 아이디어와 실행력이 뛰어난 전임회장이 전화를 했다. “선생님, 저희들 몇 명 모여서 프랑스에 집을 사면 어떨까요? 거기에 화랑과 레지던시를 열고 우리 구성원들이 새로운 환경에서 작업하고 전시하고 나아가 유럽의 한복판에서 페어도 나가고, 어떻게 생각하세요?” 너무 놀랍고 새로운 이야기라 좀더 상세한 설명을 듣고 또, 오래 보아온 그의 사람됨과 실행력을 믿기에 나도 동참하기로 했다. 오 년간 운용하기로 했는데 그간의 갤러리와 숙소 사용, 새로운 경험치를 생각하면 가성비가 아주 좋은 아이디어였다. 물론 기간이 끝나면 집을 팔고 나누어 가지면 되니 초기금액은 그대로 있다는 계산이다.

  잔금을 치르고 작가 두 명이 현지로 가서 동네의 백 년 간 동네 술집이던, 삼백 년 전 건물을 화랑으로 직접 개조공사를 했다. 12세기의 성벽이 그대로 있고 오백 년 된 성당들이 여전히 미사를 보는 도시, 중세마을의 분위기를 그대로 유지해야 하는 시의 엄격한 건축법 속에서 외국 작가들이 가서 직접 개조공사를 한 것이다. 물론 이유는 어머어마한 공사비를 절약하기 위해서였다. 공사 과정에 경찰이 세 명이나 쫒아왔는데 하세월인 프랑스의 행정을 기다릴 수는 없었던 우리는 곧 한국에서 작가들이 오니 어쩔 수 없다고 해명하였다. 다행히 건물의 외벽 색을 원래의 색으로 칠하는 것이어서 무마되었다. 쥬아니 시에서는 이 도시의 건물에 칠해야 하는 색채를 '청색 000번' 하는 식의 엄격한 리스트를 가지고 있었다. 옛 모습을 지킨다는 우리의 마음과 원칙이 전달되었다고 생각한다.


 ‘갤러리 빡따쥐’로 간판을 달자마자 전시는 바로 시작되어서 지금까지 비는 날 없이 진행되고 있으며 해마다  10월에는 현지 작가들과 함께 회원전을 치르게 된다. 한불 두 나라의 작가들은 이 교류전을 통해서 서로의 경험과 기회를 공유하고 양자 모두에게 발전적인 관계가 되도록 만들어가려고 한다.  나는 2024년 6월 한달 개인전을 하고 그 마을 한가운데에서 체류하게 된다.  


지구 위의 어떤 곳을 ‘나의 세상’으로 만들어가는 것은 그날 그곳에서 내가 얼마나 의미있는 행위를 했느냐에 달린 것 같다. 아무리 좋은 호텔이라도 어느 호텔에서나 하는 비슷한 일을 하고 나왔다면 그 호텔은 나의 세상이 아닐 것이다. 2023년 5월부터 시작된 우리 작가들의 ‘나의 세상 만들기’ 작업은 너무나 독창적이었다. 40분을 매일 강가를 걸어가 동네 수영장에서 평생 해온 수영을 한 달 하다 온 작가, 렌트한 자전거로 빡따쥐 갤러리를 교두보로 해서 유럽 각지로 자전거 여행을 하신 퇴직 교수님, 문화재 보존지구인 쥬아니 시 관광청에서 우리 갤러리를 투어리즘 코스에 넣게 하고 현지 작가들과의 만남을 돈독히 하고 온 작가, 현지 택시기사를 우리 회원들의 전용기사로 계약해 놓고 오기도 했다. 모두 ‘나의 세상’으로 만들어 가는 과정이다. 모든 작가의 경험은 누적되어 공유할 것이기에 몇 년 지나면 우리는 그 동네 주민이 될 것 같다. 돌아가야 할 곳, 그것이 나의 세상이 아닐까 한다.

 

사실 동네 주민들의 호응도 대단하다고 들었다. 근처 유럽 사람들의 별장지역인 작은 마을이라 주민들이 다들 서로 얼굴 알고 사는 곳인데 서점 주인은 갤러리 들어선 것을 너무 기뻐하고 자기 가게에 전시 홍보포스터를 붙여주고, 주민들에게 알려주고, 산책길에 들르고, 더러 주민들이 소품이나마 작품을 사기도 한다. 동양인이 없는 곳이라서 우리 작가들의 행보는 그대로 쥬아니 시의 주민들에게 이야깃거리가 되는 것 같았다.      


이제, 이번 2023년 가을 여행에서 쥬아니에서의 ‘나의 세상’ 만들기는 어떻게 될까? 먼저 다 잊어버린 프랑스어 단어를 기억해 내야 하고, 동네 운동장에서 하던 맨발걷기를 계속해야겠다. 내 발이 그 땅의 질감을 또렷이 기억할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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