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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랭이 Mar 20. 2024

선택할 수 있는 것



결혼하고 1년이 다 되어가는 시기였다. 그동안 나는 마음이 분주했다. 아이를 빨리 낳아야 한다는 생각에 결혼과 동시에 산부인과를 다니고 있었다. 남편은 유난히 조카들을 예뻐했고 그 모습을 보며 어서 그에게 자신을 닮은 작고 소중한 존재를 안겨주고 싶었다.   

   

결혼을 하면 아이를 낳는다는 것에 의문을 품지 않았다. 다른 생물도 그러하듯 인간에게 종족 번식은 DNA에 새겨진 프로그래밍과 같은 것이었다. 적어도 그날까지는.... 그래서였다. 당연하고 당연하다면 여유 따위 부릴 시간이 없었다.    

  

우리가 자녀 계획에 대해 얼마나 솔직하지 못했는지 그렇게 1년이 지나오는 동안 눈치채지 못했다. 그날 저녁 식사가 끝나갈 때쯤 남편이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다들 낳으니까라는 말이 튀어나올 뻔했지만 말을 잊지 못했다. 다들 낳으니까 라니...  이게 이유가 되나 싶었다. 남편은 모르겠지만 나는 꽤 큰 충격이었다. 내가 아이를 낳으려는 이유가 도무지 생각나지 않았다.     






남편은 그동안 나의 생각을 지지해 주고 싶어서 나의 뜻대로 따랐던 것이었다. 물론 아이를 낳아 기르며 사는 삶도 좋을지 모른다는 생각을 갖기도 했다고 했다. 그러다 일찍 결혼해서 자녀가 이미 중고생이 된 친구들의 모습은 가정에서 묘하게 소외되기 시작했고 돈을 많이 벌던 적게 벌던 가정적이든 아니든 늘 더 많은 희생을 해야 한다는 무언의 압박을 보았다고 했다.      


남편은 몹시 가난한 가정에서 자랐다. 다정했지만 생활력이 없는 아버지는 늘 집에만 계셨다. 나이 차가 많이 나는 큰 형이었던 남편이 성인이 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신용불량자가 되어야 했다. 생활비는 늘 그렇게 충당됐다. 다행히도 남편은 아버지를 닮지 않아 아니 그런 환경이 얼마나 고달픈지를 알고 있어서였는지 생활력이 매우 강했고, 젊은 시절을 자신의 명의로 된 가족의 빚을 갚으며 보냈다.      





나의 엄마는 시아버님과는 정반대로 엄청나게 치열하게 살아오신 분이었는데 그 이야기는 나중에 하겠다. 그런 엄마를 보며 성장해 온 내게 떠오르는 엄마라는 무게는 과연 내가 감당할 수 있는 크기의 것인지 갑자기 숨이 막혀왔다.


아무리 시대가 달라졌다 한들 한 생명을 오롯이 성인으로 성장시킨다는 것은 일생 중 가장 큰 숙제이며 난관이고 행복이며 보람일 것이다. 행복하지 않은 유년을 보낸 사람은 그 반대의 사람만큼 많을 것이고 누구도 부모를 선택할 수 없었다.      





그렇게 우리는 의식적으로 본능에 반 하는 선택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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