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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벼꽃농부 Dec 16. 2024

부산 출신 신병이 쌓인 눈을 보았을 때

아버지는 그의 아버지에게 혼났다.

# 먼저 이 글은 지금의 군대 병영문화와는 완전히 다른 세상의 이야기이니 입대를 앞둔 분들은 겁먹지 마시라.


시월에 입대하여 논산훈련소에서 감히 '집단김장전투'라 할 만큼 어마어마한 배추와 무를 버무린 후 땅을 파서 땅굴 같은 곳에 차곡히 쌓아 두면 겨우내 훈련병들의 식판 한 귀퉁이를 채우는 맛난 김치를 만드는 김장전투에 동원되었었다. 하지만 훈련소가 논산에 위치해서인지 겨울이었는데도 눈을 볼 수가 없었다.


따뜻한 남쪽나라(부산)에서 어린시절부터 쭉 입대 전까지 눈이란 걸 자주 보지 못한 나에게 잊을 수 없는 군대의 기억 아니 추억이 있었으니...


 얼마간의 신병교육을 마치고 장성에 위치한 포병학교에서 약 2개월의 후반기 주특기교육을 마치고 모두들 뿔뿔이 전국 각지로 흩어졌다. 115번 훈련병은 후방에 있는 좋은 부대로 가서 부럽기도 했고,  113번 훈련병은 집안 아는 사람의 한 다리 건넌 빽으로 또 좋은 곳으로 가서 부러웠다.

114번인 나는 별다른 대책이 없으나 앞뒤로 좋은 곳으로 갔으니 나도 운 좋게 끼워져 갈 수 있으려나 하는 요행심으로 운을 바랐다. 예상은 항상 좋지 않은 곳으로 귀결된다.


자대로 배치받은 곳은 파주에 있는 1 포병여단의 포대이다. 박스카를 타고 위병소를 통과하니 황량하기 그지없다. 부대는 산을 등지고 음지에 있어 이미 발끝이 오무라들 정도로 추위를 느끼게 했다.


대대장님에게 전입신고를 마친 후 인솔자인 선임을 따라 중대로 이동하였다.


한 손을 주머니에 넣고 앞서 걷던 선임이 묵직한 목소리를 낸다

"온다고 고생했다. 춥지 않냐?"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앞으로 잘 지내보자. 너와 동기야."

잠깐 어리둥절했다. 선임의 모자를 보니 노란색 하나가 분명하다. '이상하다 아까 봤을 때는 두 개였던 것 같은데..." 선임은 아니 동기는 부여받은 주특기가 없어 후반기교육을 받지 않고 바로 부대로 전입 왔다고 한다.


자주포를 운용하는 부대여서 군기가 셀 것이라 걱정을 많이 했는데 생각만큼 무섭거나 괴롭히는 고참은 없었다. 하지만 이런저런 낯선 환경과 군생활이라는 무게감과 두려움으로 잔뜩 긴장하고 있었는데 내무반에서의 첫날밤을 잊을 수 없고 상황을 아직도 기억한다.


야간점호 후 침상에 누웠으나 잠이 오질 않았다. 내무반 불침번을 서는 고참이 내게 가까이 와서 조용히 한마디 한다. "신병 눈감고 자라."

눈을 감지 않으면 혼날 것 같고, 자지 않으면 혼날 것 같아 얼른 눈을 감았다. 그래도 잠이 오지 않았다.


얼마가 지났을까! 누군가 이마를 툭툭 치는 게 아닌가. "야 조용히 따라 나와" 

놀란 가슴은 터질 듯 쿵쾅거리고 따라나가는 걸음은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처럼 후덜거렸다.

구름사이로 내민 달빛에 겨우 비치는 컴컴한 담벼락을 돌아 창고 같은 곳으로 따라 들어갔다.

달랑 얇은 내복에 깔깔이를 입은 게 전부인데 이곳 창고까지 오는 동안 이는 '드드드드' 소리를 내며 떨고 있었다. 심장도 쫄고 다리도 후덜 거리고... 툭 치면 자빠질 모양새였다.

창고 안은 넓었고, 좌우로 각진 나무가 쌓여있었다. 어디에 쓰는 나무인지 모르겠지만 두려움이 생겼다.


"야 신병 이거 빨리 먹어. 내가 네 아버지다."

"그리고 이건 우리 부대 전통이야. 신병 오면 애비가 아들에게 첫 라면 끓여 주는 거니까. 얼른 먹고 가서 자."

아버지? 이건 또 뭐지? 대답이고 질문이고 할 것 없이 건네준 부러뜨린 싸리나무 젓가락으로 반합에 끓여진 신라면을 허겁지겁 먹으며 아버지란 분을 보니 낮에 본 상병이었다.


창고를 나서니 그사이 눈이 내리고 있었고 뭔지 모를 따뜻함에 잠을 푹 잤다.


기상점호 후 식당으로 가는 길은 동기가 함께 가주었다. 동기는 전투화에 눈을 묻히지 않으려는지 앞사람 발자국을 따라 밟고 있었는데 나는 하얗게 쌓인 새눈을 밟을 때 나는 ‘뽀드득’ 소리가 너무 좋아 새길로만 갔다.

내 발에 찍힌 발자국을 보며 마냥 즐거워했다.


그날 저녁 아버지는 할아버지에게 혼났단다. 자식교육을 어떻게 했길래 신병이 새눈을 밟고 다니냐고

영문을 몰랐던 나에게 동기가 일러주었다.


"야 너 때문에 눈 치우는데 고생했잖아. 눈치가 없어"


추신: 신병이 오면 선임을 배정하여 멘토링을 해주는 것이다. 그것이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가 된 것이다. 나의 아버지는 막 진급한 상병이었고, 아버지의 아버지는 전역을 앞둔 말년 병장이였다. 그러니 아들의 모지람에 대해 할아버지가 아버지에게 혼을 냈던거다.


"자식 교육 잘 시켜라."


사진 빌려온 곳: Lovep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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