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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피쿠로스 Nov 17. 2024

여행 7일 차, 교통경찰이 왜 모든 짐을 수색해?

Memphis, 테네시

맴피스에서 나 혼자 사는 행복한 50대 중년남을 만나다


5일 차 운전, 툴사-> 멤피스, 401마일(642km), 5시간 48분


드디어 우리 로드트립의 목적지인 멤피스를 향해 출발하는 날. 운전시간도 길지 않아 한결 편안한 마음으로 출발했다.


로드트립 5일 차에 접어들며 안정화된 것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바로 방에 하나밖에 없는 화장실을 사용하는 아침 패턴이었다. 배변과 샤워는 체크아웃 전 마땅히 완료되어야 할 과제인데 세 명의 생활습관을 서로 모르다 보니 여행 전 은근 걱정되는 부분이기도 했다. 특히 소음인인 나는 음주 다음 날 화장실 방문이 불규칙적이기도 했고 평소 아침을 안 먹는데 여행 중엔 모닝응가를 위해서라도 아침식사를 하다 보니 그것에 대한 걱정도 작지 않았다.


하지만 35년째 우정을 지키고 있는 우리는 한마디 협의 없이도 자연스럽게 아침 화장실 사용 패턴을 정착시켰다. 우리가 정한 규칙은 딱 하나였다. 아침 8시에 호텔조식을 먹으러 가고 10시에는 체크아웃 후 출발한다였다. 사흘째 정도 되었을까? 우리는 서로의 패턴이 정착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먼저 현암은 <식전응가> 형이었다. 이것은 그의 식습관이기보다는 여행 중 운전자인 나와 석헌을 배려한 선의에 가까웠다. 현암은 여행 전 몸에 상처가 생겨 연고를 바르고 있었는데 그러다 보니 우리 중 밤에 음주량은 가장 적을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인지 그는 제일 먼저 일어나 화장실 사용과 샤워를 마치고 8시에 우리가 일어나면, 또는 우리를 깨워 아침식사를 하러 갔다. 현암의 배려와 현명한 처사 덕에 나와 석헌은 비교적 편히 다음 화장실 사용을 할 수 있었다.


약간 과민성 대장인 나는 <수시응가> 형이었다. 아침식사 후 때릴 수 있으면 제일 좋은데 성공확률이 50%도 안되었다. 그러다 보니 짬이 날 때마다 심지어는 밤에 잠들기 직전에 시도를 할 때도 있었다. 원활한 장활동을 위해 아침식사 중 애플주스와 요구르트를 꼭 챙겨 먹었으나 장활동이 출발 후 한두 시간 지나 활발해지는 불상사도 여러 번 있었다.


나는 평소 집 밖에서는 큰일을 잘 못 보는 민감형이다. 그래서 회사 재직 중에도 웬만하면 회사화장실을 소변기 외엔 이용하지 않는다. 그런데 미국 한복판 차 안에서 신호가 오면 이건 답이 없다. 쌀 수는 없지 않나? 그러면 어쩔 수 없다. 너무너무 극혐이었지만 프랜차이즈 식당이나 심지어 주유소 화장실을 이용할 수밖에 없었다. 다 좋았던 이번 여행에서 유일하게 내게 안 좋았던 경험이 바로 그것이었다.


석헌은 <식후응가> 형이었다. 그것도 매우 규칙적인. 아침식사 후 1시간 정도 뒤면 신호가 왔는데 거의 변동이 없었다. 시간이 좀 오래 걸리는 때도 있었으나 한 번 들어가면 기필코 목표를 필달하고 나왔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까지는 끄떡없었다. 이처럼 정확한 패턴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세 명의 여행자가 한 방을 쓰는 상황에선 매우 좋은 습관이었다.


이렇게 로드트립 5일 차에 들어서자 우리는 아침의 부산함도 큰 무리 없이 정리를 해가며 여행을 이어 나갈 수 있었다.


멤피스 입성을 50분 정도 남기고 아칸소의 어느 고속도로를 달리고 있을 때였다. 석헌이 운전 중이었는데 ‘어라’ 뒤에서 경찰차가 경광등을 켜고 달려오는 것이 아닌가? 우리 뒤와 옆에 차가 없었기에 우리를 목적으로 하는 것이 분명했다. 추월선으로 달리고 있던 석헌은 <90마일이 넘지 않은 거 같은데 이상하다>라고 하며 차를 갓길에 주차했다.


흑인경찰관이 와서 석헌의 ID를 확인하고 렌터카 계약서를 들고 석헌을 경찰차에 데려갔다. 그리고 몇 분 후 경찰차 한 대가 더 왔는데 거기서 내린 좀 젊은 백인경찰관이 나와 현암이 있는 우리 차에 다가왔다. 그는 우리에게 어디 가는 길이냐고 물었고 우리는 한국에서 온 여행객인데 멤피스 친구를 보러 가는 길이라고 얘기했다. 그랬더니 그는 자기들은 멤피스 관할인데 멤피스에 가면 어디 어디 바를 가보라며 심지어 거기 물도 좋다고 친절히 설명해 주었다. 그의 태도를 보니 큰일이 아닐 수 도 있다는 안도감이 들었다.


잠시 후 석헌을 데리고 간 흑인경찰관이 우리에게 다가와서 다 내리라고 했다. 그러더니 차 트렁크를 열고 우리 짐을 확인하기 시작했다. 그냥 허투루 하는 것이 아닌 모든 짐을 열어 샅샅이 뒤지는 것이었다. 아니 우리를 세운 것은 아마도 스피드 때문일 것인데 짐검사를 전부 한다는 것은 좀 이해되지 않는 일이었다 하지만 권총을 두 개씩 차고 있는 미국 경찰관 아저씨들 앞에서 50대 한국 아저씨들은 쫄 수밖에 없었고 시키는 대로 협조했다.


진지한 흑인경찰관에 비해 젊은 백인 경찰관은 시종 유쾌한 미소를 띠며 우리와 잡담을 나눴다. 분명 이 또한 좋은 추억거리가 될 거라 생각한 나는 현암과 대화 중인 백인 경찰관에게 사진을 찍어도 되냐고 물어봤고 테네시 명예관광대사인 듯한 그는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사진촬영에 응했다.


짐 검사를 마저 마친 경찰관이 최종적으로 우리에게 건넨 딱지엔 <Improper Passing: 부적절한 추월>, <Following too close: 차 간 간격 밀접>의 ‘죄명’이 체크되어 있었다. 그리고 단지 <경고>라며 별도 벌금 등의 부과는 없었다. 우리가 추월 차선으로 주행을 하고 있었던 것은 맞지만 제한속도를 크게 넘은 것도 아닌데 위의 <죄명>을 고려하니 더욱 이해되지 않았다. 특히 전원 짐검사를 한 것은 더더욱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었다.

멤피스로 향하는 길에 우리끼리 분석을 해보았다. 듣기에 멤피스 범죄율이 매우 높고 마약도 최근 큰 문제가 된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아마 그 경찰관은 마약검사를 랜덤으로 한 게 아닐까 생각되었다. 그 때문에 시간이 한 시간 정도 지연되긴 했지만 결과적으로 <경고>에 그쳤고 또 하나의 좋은 추억을 남기게 되었다.


드디어 멤피스에서 채담을 만났다. 30년 가까이 한 직장을 다닌 그는 올해 7월 지인의 소개로 미시시피에 있는 한국회사가 인수한 공장의 CFO로 자리를 옮겼다. 그는 한국에서도 10년 가까이 기러기 생활을 했다. 미국주재원을 오래 한 그는 버지니아에 집도 있으며 장성한 아들딸은 이미 취업을 했고 와이프는 아직 버지니아에서 일하고 있다. 그래서 10년 기러기 생활에 이어 멤피스에서도 기러기 아닌 기러기 생활을 하고 있는 중이었다.


언젠가는 멤피스에 가서 한 번 만나겠지 했는데 그때가 이렇게 빨리 올지 몰랐다. 멤피스 생활 4개월 차에 접어든 채담은 이미 현지인 패치가 완료된 상태였다. 오랜 기러기 생활 때문인지 아니면 그의 성향 때문인지 그는 어쩌면 외로울 수도 있는 타국에서 중년독거남의 생활을 너무 잘 해내고 있어 보였다.


도착하자마자 채담의 집에 짐을 푼 우리는 근처 그의 단골식당을 찾았다. 그는 이미 그 식당에서 많은 친구를 사귀었다고 했다. 그런데 그가 얘기한 친구들은 대부분 60대 이상의 할아버지나 노부부들이었다. 백인들의 도시인 멤피스에 50대 아시안이 와서 혼자 술 마시며 저녁을 먹는 모습은 꽤나 신기했을 것이다. 바에서 혼자 저녁을 먹던 그는 평소 성격답게 자연스럽게 그들과 친해졌으며 이미 그 식당에서 꽤 존재감 있는 손님이 되어 있어 보였다.


맛있는 테네시 음식과 맥주를 겸한 저녁을 마치고 채담의 집으로 왔다. 캘리포니아 절반 정도의 렌트비에 그보다 3배는 넓은 그의 집은 이번 로드트립 숙소 중 최고였다. 심지어 숙박비 무료이고 화장실이 두 개나 있어 너무 좋았다. 10여 년의 한국에서의 기러기 생활을 묵묵히 견뎌낸 그가 이제야 그 간의 보상을 받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혼자 그것도 외국에서 생활하기 최적화된 그의 성격상, 50대 중반에 미국중부 도시에서 보내는 <나 혼자 산다>의 삶은 채담이었기에 더 행복해 보였다.


채담은 본인 특기이자 취미인 칵테일 제조를 우리에게 자랑하기 위해 만반의 준비를 해 놓았다. 위스키, 리큐르 등 여러 병의 술을 준비한 것은 기본이고 칵테일 리스트까지 패드에 준비해 놓고 우리의 주문을 받았다. 그의 추천으로 여러 잔의 칵테일을 마셨다. 그리고 한국에 있는 친구들과 돌아가며 통화를 했다.


채담이 한국 슈퍼에서 사서 먹다 남은 떡볶이를 전자레인지에 덥히고 비비고 만두를 구워 해장 겸 마무리 술을 마시며 멤피스에서의 행복한 첫날을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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