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ulsa, 오클라호마
4일 차 운전, 투쿰캐리-> 툴사, 475마일(760km), 7시간
전 날 와인과 컨디션 조합을 처음 시도한 우리는 <숙면>과 <숙취 없음>이라는 확실한 임상실험 결과를 얻었고 덕분에 상쾌한 기분으로 Tulsa를 향해 출발할 수 있었다.
앞선 글에서 로드트립 중 차 안에서의 즐거움은 동승자들과의 대화와 음악감상이 전부라고 얘기했는데 이번 여행에선 차 안에서의 음악감상도 만끽할 수 있었다. 로드트립 첫날 렌터카인 도요타의 내비게이션 설치를 하지 못했다. 네비를 연결하기 위해 도요타 앱을 깔고 등록을 해야 하는데 전화번호 연결 등 인증절차가 너무 까다로웠다. 결국 내 아이폰을 USB로 연결해 애플 카플레이를 통해 구글맵 내비게이션을 설치할 수 있었다.
데이터 사용량을 관리해야 했기에 유튜브 뮤직 등 스트리밍으로 음악은 듣지 못하고 내 아이폰에 내장된 음악을 들었다. 30여 년 전 DJ 지망생이었던 고등학교 동창으로부터 저녁을 한번 사고 나서야 받을 수 있었던 80년대 말 나이트 뮤직 컬렉션. 그 당시 블루스 타임 후 오프닝 음악으로 자주 사용되던 Kon Kan의 I beg your pardon이 플레이되는 순간 도요타 안은 환호로 뒤덮였다. 그 이후 이어지는 추억의 명곡들.
<Pump up the Jam>. <Need you tonight>. <Bizzare love Triangle>. 그리고 이어지는 쿠와타 밴드의 <Blue>, 튜브의 <Season in the sun>까지. 80년대 말의 나이트 음악은 우리를 2024년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1988년 강남역으로 시공간을 이동시켜 주기에 충분했다.
문제는 우리의 운전시간이 긴 것에 비해 플레이리스트의 곡은 50곡을 채 넘지 못했다는 것이었다. 컬렉션이 두 바퀴를 돌아 세 바퀴로 넘어가는 순간 더 이상의 감동과 환호는 사라졌고 네 바퀴째로 들어가는 순간 좀 지겹다는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로드트립 이틀째 벌써 비장의 무기가 소진되다 보니 난감한 상황이 되었다.
둘째 날, 내가 운전하게 되었을 때 크루즈를 맞추기 위해 계기판을 보다가 라디오를 틀었다. 두 개 채널정도 써치 했을까? 갑자기 낯익은 80년대 팝이 나오기 시작했다. 일단 다들 좋아하는 노래라 채널 고정을 했다. 이어서 나오는 노래도 80년대 명곡이었다. 채널명을 보니 <80’s on 8>이었다.
우연히 찾게 된 그 채널은 말 그대로 노다지였다. 알고 보니 미국 위성라디오 서비스인 시리우스 XM(Sirius XM)에서 운영하는 채널 중 하나로 80년대 명곡만 틀어주는 채널이었다. 그것도 위성라디오인 관계로 전국 어디를 가나 끊김 없이 들을 수 있었고 진행자 없이 음악만 틀어주는 시스템이라 음악감상엔 최적의 플랫폼이었다.
마이클 잭슨, 마돈나, 프린스, 휘트니 휴스턴은 물론 신디로퍼, 폴리스, 릭 에슬리, 왬, 듀란듀란, 컬처클럽 등등 80년대 우리와 함께 했던 많은 팝스타들의 노래를 여행 내내 즐길 수 있었다. 발매 당시 빌보드 싱글차트 1위를 했으나 국내에선 금지곡이라 잘 듣지 못했던 프린스의 <Let’s go Crazy>, 마돈나의 희귀한 발라드이자 역시 빌보드 1위 곡인 <Crazy for you> 같은 노래는 한국에선 들을 기회가 별로 없었는데 오랜만에 미국 현지에서 들을 수 있어 더 반가웠다. <80’s on 8>은 미국 로드트립을 계획하시는 분들 중 80년대 팝을 사랑하시는 분들이라면 강추할만한 채널이다.
툴사의 호텔 La Quinta Inn에 체크인을 했다. 그리고 몇 년 전 석헌이 갔던 스테이크집을 찾아 다운타운으로 향했다. 그런데 작은 다운타운거리를 몇 번을 돌았는데 그 스테이크집을 찾지 못했다. 그러다 발견한 스테이크집. 전반적인 분위기가 바를 겸하며 스테이크도 팔고 있어 우리가 찾던 곳과 부합했다.
위스키 리스트를 보다 K음주인 답게 호기롭게 버번위스키 한 병을 주문했다. 그런데 웨이터는 난색을 표하며 병으로 주문은 안되고 잔으로만 주문을 받는다고 했다. 잔술 문화에 익숙하지 않은 한국 아저씨들은 잠시 작전 회의 끝에 병으로 주문이 되는 레드와인으로 급선회했다. 역시 술은 따라 주는 게 맛이란 K 주도에 익숙한 50대 아저씨들의 선택이었다.
스테이크와 해산물 튀김에 레드와인을 곁들인 툴사의 만찬은 즐거웠다. 와인이 두 병째를 향해 달려가던 그때 화제가 전환됐다. 각자 좋아하는 시인과 시를 하나씩 얘기하기로 한 것이다. 아마도 토크의 주제가 바닥나기도 했고 여행의 전반전이 끝나가는 시점에서의 안도감 때문에 모두가 감성적이 되었기 때문인 것 같았다.
석헌과 현암은 공통으로 <미당 서정주>를 꼽았다. 그리고 현암은 고등학교 국어교과서에도 있던 <국화옆에서>를 최애시라고 했다. 석헌은 자기도 <국화옆에서>를 좋아한다며 시를 암송하기 시작했다. 이젠 미국시민이 된 그가 80% 가까이 그 시를 기억하고 있다는 것이 놀라웠다.
특히 <내 누님 같이 생긴 꽃이여> 부분에선 암송 중 감정이 북 받히는지 울컥하기도 했다. 2대 독자이자 여동생만 둘이 있는 석헌이 왜 그 부분에서 울컥했는지 이해 가지는 않았지만 그 모습을 본 50대 남성갱년기인 나와 현암도 뭉클해진 감정을 숨길 수 없었다.
그리고 석헌은 미당의 다른 시 하나도 좋아한다며 암송했다. 제목은 <겨울 어느 날의 늙은 아내와 나>였다.
"오랜 가난에 시달려 온 늙은 아내가/겨울 청명한 날/유리창에 어리는 관악산을 보다가/소리내어 웃으며/'허어 오늘은 관악산이 다아 웃는군'한다/그래 나는/'시인은 당신이 나보다 더 시인이군!/나는 그저 그런 당신의 대서(代書)쟁이구…'하며/덩달아 웃는다."
석헌은 이 시를 100% 암송하진 못했지만 마지막 문장을 ‘나는 당신의 대필쟁이고”라고 말했다. 확실히 원본보다는 <대필쟁이>가 훨씬 시의 감정을 잘 전달하는 듯했다.
내 최애시인이 누구냐는 질문을 받고 잠시 고민했다. 좋아하는 시인을 생각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다 문득 떠오른 이는 백석과 박인환이었다. 그들의 시를 좋아한다기보다는 한국문단에서 그 둘의 독특한 캐릭터 때문에 매력을 느꼈었다.
백석과 박인환은 우열을 가리기 힘들 정도의 한국 시인계의 꽃미남이다. 겉모습에 크게 신경 쓰지 않은 이들이 대부분인 시인 사회에서 1930년대와 1950년대 그런 외모와 스타일을 선보였다는 건 놀라운 일이다.
백석은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에서 <소주를 마시며 생각한다/ 나타샤와 나는/ 눈이 푹푹 쌓이는 밤 흰 당나귀 타고/ 산골로 가자 /출출이 우는 깊은 산골로 가/ 마가리에 살자>고 한다
박인환은 <목마와 숙녀>에서 <한잔의 술을 마시고/ 우리는 버지니아 울프의 생애와/ 목마를 타고 떠난 숙녀의 옷자락을 얘기한다>고 말한다.
두 꽃미남 시인은 공통적으로 술을 마시고 외국여인의 이름을 되뇌며 낭만적인 풍경을 묘사한다. 그것이 당시엔 겉멋으로 보여 많은 동료시인들에게 지탄을 받기도 했지만 오히려 21세기 지금 시점에선 전혀 촌스럽지 않은 멋진 모습으로 보인다.
그런데 내가 툴사에서 얘기한 최애시는 그 두 명의 작품이 아니었다. 석헌의 울컥한 모습을 보니 나도 감동적인 시를 얘기하고 싶었다. 당시는 누구 시인지 기억이 안 났지만 나중에 보니 안도현 시인이었다. 원제는 <스며드는 것>이었으나 내가 기억하는 제목은 <간장게장>이었다. 나는 그 시의 앞부분을 거의 기억하지 못했다. 상황묘사만 했을 뿐이다.
<엄마게가 간장게장이 되기 위해 간장에 담겼다. 알들을 보호하려 했지만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마지막으로 엄마게가 알들에게 얘기한다> 뭐 대충 이렇게 상황만 묘사했다. 그리고 이 시의 강력한 마지막 문장을 암
송했다.
<저녁이야 불 끄고 잘 시간이야>
와인 각 1병씩을 마신 우리들의 감정에 마지막 한 문장이 쏟아지는 순간 50대 중반의 두 친구들은 오클라호마 툴사에서 다시금 감정이 북 받혀 올랐다. 신사동 뒷골목에서 그렇게 먹었던 수많은 간장게장들에게 미안해했고 희생된 어미게와 알들에게 애도를 표했다.
그렇게 툴사 어느 레스토랑에서 문학의 밤이 마무리되었다.
툴사 다운타운은 편의점도 별로 없고 그나마 8시에 문을 닫아 와인을 살 수 없었다. 호텔로 돌아온 우리는 직원에게 근처 편의점을 물었다. 이미 이런 일에 익숙했던지 직원은 친절히 약도까지 그리며 안내해 주었다. 근처 편의점으로 달려간 우리는 1.5리터 와인 한 병과 간단한 안주를 사서 하루의 마지막 의식을 시작했다.
감동적인 문학의 밤을 보내고 왔지만 1.5리터 와인이 반 병을 넘어갈 때즘엔 너무도 자연스럽게 대학 시절의 여자친구들로 화제가 옮겨져 있었다. 백석과 박인환이 그랬던 것처럼 우리들도 청춘시절의 여자친구들을 얘기하며 한 잔의 술을 마셨고 밤늦게까지 우리들의 나타샤와 버지니아울프를 떠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