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mphis, 테네시
6일 차 운전 無, 도요타 군 하루 휴무일
멤피스 <채담민박>의 조식메뉴는 진라면이었다. 얼큰한 라면에 김치를 곁들인 조식은 역시 여행 중인 한국인들에게 최고의 해장이자 든든한 한 끼다. 소주 한 병을 페어링 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으나 오늘 일정을 고려해 자제했다.
이른 저녁부터 <채담민박>의 자랑인 풀사이드 BBQ 파티를 하기로 예정된 바, 오전일정은 이번 로드트립 중 처음이자 마지막 관광코스인 멤피스 시내투어를 하기로 했다. 멤피스는 큰 도시는 아니지만 블루스와 로큰롤의 도시이자 엘비스 프레슬리의 홈타운인 곳으로 <음악>이란 확실한 컬러가 있는 도시다.
일일가이드 채담이 소개한 첫 번째 방문지는 Bass Pro Shop. 전국에 체인점이 있는 아웃도어 전문 쇼핑몰인데 멤피스 지점이 가장 규모가 크다. 특히 거대 피라미드 디자인의 쇼핑몰로서 <멤피스 피라미드>로도 불리는 도시의 랜드마크이기도 하다.
아웃도어 액티비티와 관련한 모든 것이 어마어마한 규모로 전시되어 있었다. 아웃도어 패션부터 텐트, 요트, 카누, 낚시, 사냥 용품 등. 특히 엄청난 총기가 전시되어 있어 천조국의 위용을 과시했다. 후덜덜.
<나는 자연인이다>의 오랜 팬으로서 저 정도 장비만 갖추면 나도 계룡산으로 들어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톰소여의 모험>으로 기억되는 미시시피강을 잠시 구경하고 들른 곳은 오늘 관광의 하이라이트인 <Home of the Blues, Beale Street>였다.
어원이 궁금한 <난리블루스>와 나이트클럽에서의 <블루스 타임>만 알고 있는 한국인들에게 현대음악의 모태인 <진짜 블루스>를 보여주는 Beal Street는 작지만 멋진 곳이었다. 거리 곳곳에 라이브바와 뮤지엄, 기념품 샵이 즐비했다. 밤엔 사람이 훨씬 많고 볼거리도 풍부하다는데 정오에 방문한 우리에겐 오히려 사람이 많지 않아 더 좋았던 것 같다. 50대 아저씨 특성상 걸어가며 한 번 죽 훑어본 것으로 만족한 우리들은 메인 목적지인 <BB Kings Blues Club>에 갔다.
이번 로드트립의 특성상 관광이 거의 없다 보니 <운전>과 <식도락>에만 치우칠 수밖에 없었다. 물론 그것을 목적으로 간 것이다 보니 딱히 불만이 있는 건 아니고 오히려 만족스러웠다. 하지만 여행일정 한가운데에 <라이브 뮤직>을 들으며 식사를 겸하는 <체험형>이 하나 들어오다 보니 전체의 균형이 맞는 듯 한 느낌이 들었다.
폭립과 해산물 튀김을 주문하고 블루스 라이브 뮤직을 들으며 우리는 맥주를 마셨다. 토요일 낮 시간이라면 응당 신사역 근처나 양재역 부근에서 소주를 까고 있어야 할 우리 고등학교 동창들이 미국 멤피스에서 블루스 음악을 들으며 맥주를 마시고 있다는 것이 비현실적이었지만 그래서 그 순간이 더 행복했다.
다음으로 옮긴 곳은 채담의 회심의 추천코스 <Memphis Listening Lab>이었다. <음악감상연구소>로 직역되는 그곳은 음악의 도시인 멤피스에만 있는 곳이며 특히 한국에는 전혀 알려지지 않은 곳이라 채담이 특별히 선정한 곳이었다. 결과적으로 난 매운 만족 했다.
<Memphis Listening Lab>은 <Crosstown Concourse>라는 건물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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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 건물은 폐공장을 골조만 남기고 재건축한 곳으로 우리로 따지면 성수동이나 문래동 느낌의 젊은이들의 공간이었다. 여러 커뮤니티가 입주해 있으며 다양한 컨퍼런스나 공연들이 개최되고 스타트업 업무공간도 있고, 전형적인 MZ 디지털노마드들의 워케이션 느낌의 공간이었다. 직장생활 중 스타트업 코워킹 사무공간을 접할 기회가 많았던 나는 이런 스타일의 원조인 미국에서 그것을 체험한다는 것이 아주 신선한 경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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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mphis Listening Lab>도 <연구소>라는 이름에 걸맞게 장대한 LP, CD컬렉션을 갖춘 것은 물론 감상이나 믹싱도 할 수 있고 또 음악역사와 관련한 많은 신문, 도서 자료까지 보유하고 있었다. 단연 음악의 도시라는 자부심을 느낄 수 있는 공간이었다.
구경을 마치고 차로 가던 도중 야외에서 무슨 행사를 하는지 사람들이 몰려 있는 것을 봤다. 화창한 날씨에 맥주를 마시는 사람들을 보고 끌리듯 그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당일은 10/12일이었는데 그러고 보니 그곳은 <옥토버페스트> 행사를 하는 곳이었다.
봄과 가을이면 서울에서도 웬만하면 <야장>에서 한잔 하는 것을 선호하는 우리들이 그곳을 그냥 지나 칠 수는 없었다. 우연히 발견한 곳이라 당연히 관광객들은 하나도 없었고 지역주민들만 가득한 행사였다. 을지로 3가 만선호프의 야장을 한국의 옥토버페스트라고 자부했던 것이 민망하게도 이곳은 순도 100%의 서양식 야장맥주 공간이었다. 아직 반팔을 입어도 되는 따뜻한 날씨에 맑은 공기 속에서 마시는 맥주 한잔은 더없이 ‘쨍’했다.
이제 풀사이드 BBQ를 위한 마지막 코스인 마트 방문을 했다. 여행을 가서 바비큐용 고기를 사기 위한 <장보기>는 언제나 즐겁다. 아니 어쩌면 가장 설레는 순간이라고도 할 수 있다. 품질 좋은 미국 Ribeye를 넉넉히 샀다. 바비큐에 진심인 채담은 같이 구울 야채도 정성스레 이것저것 골랐다.
출국 전 줌미팅에서 채담은 한국 팩소주 좀 사달라고 요청했는데 미국 시민인 석헌은 미국에도 많은데 그걸 왜 무겁게 들고 오냐고 단칼에 잘랐다. 덕분에 여행짐이 좀 가볍긴 했는데 그래도 채담의 요청이었기에 미국서 한국소주를 그의 선물로 사기로 했다. 마지막으로 근처 리커샵에 들러 700밀리짜리 진로를 넉넉히 사고 그날 마실 와인과 맥주도 바라바리 사서 즐거운 마음으로 채담의 집으로 향했다.
7월에 이곳으로 이사 온 채담도 풀사이드 BBQ는 처음이라고 했다. 그도 그럴 것이 혼자서 BBQ를 하진 못하고 지금까지 온 손님도 미국에 사는 그의 친동생 밖에 없었기 때문이었다.
만반의 준비를 한 풀사이드 BBQ 파티는 오후 5시경 시작됐다. 생각보다 넓은 수영장과 그 주변 부대시설에 비해 <BBQ 그릴>은 단 한 대 밖에 없었다. 그 그릴을 채담이 미리 관리실에 예약했기에 그 말인즉슨, 달밤에 수영하는 입주민만 없다면 그날 풀사이드 파티는 우리가 독점하는 것이었다.
출국 전 줌미팅에서 채담은 멤피스가 10월 중순까지 수영이 가능하니 수영복을 가져오라 했다. 하지만 정작 가져온 것은 나뿐이었다. 수영을 좋아하진 않지만 10월 미국수영장에 몸을 담그는 것은 색다른 경험이다. 살짝 추운 감이 있었지만 노을 지는 태양을 뒤로하고 미국 수영장에 나 혼자 들어가 있는 사진 한 장을 남기는 것은 평생 기억에 남을만한 일이 분명했다.
살이 좀 붙어서인지 그날따라 테네시 중국부호 느낌이 나는 채담은 오랜 주재원 생활로 익힌 녹슬지 않은 바비큐 솜씨를 선보였고 우리는 맛있게 먹어줬다.
10월 중순의 날씨에 서울에 있었다면 하늘이 나뭇잎으로 뒤덮인 <청계산장> 야장에서 등심을 굽거나 <서울대공원 야외포차>에서 삼겹살을 구웠을 것이다. 하지만 같은 시간 태평양 건너 미국에서 단독 전세를 낸 듯한 풀사이드에서의 BBQ 파티는 평생 몇 손가락에 들어갈 정도의 멋진 술자리였다.
고기로 배를 채운 후 2차는 바로 옆 풀사이드 소파로 옮겼다. 남은 고기와 야채와 간단한 마른안주와 맥주, 와인을 마셨다. 요즘 휴대용 스피커들의 출력이 좋아 주위가 너무 시끄럽지 않게, 하지만 우리들 공간은 꽉 채워주는 음악들을 선곡해서 들었다. 이런 밤 야외에선 전혀 다른 형태의 back to the 80’s인 음악이 제격이다.
그것은 바로 <Kenny G>의 색소폰 곡들. 오랜만에 듣는 감미로운 색소폰 음색에 우리는 와인과 함께 점점 취해갔다. 이어서 <Stan Getz>를 들었고 <Chet Baker>를 들었으며 <Duke Jordan>으로 마무리했다.
아까 한국마트 가는 길에 꼭 사야 할 것은 바로 <짜파게티>와 <파김치>였다. 내가 어제 술 마시던 중 오늘 BBQ 후 집에 와서 마무리 겸 해장으로 짜파게티와 파김치 조합을 해준다고 했기 때문이다. 석헌은 미국인이 된 지 오래라 라면과 김치는 안 먹은 지 꽤 됐고 현암도 한국에서 속세를 떠난 수행생활 중 그 같은 향신채 많은 음식은 멀리 했었다. 채담은 미국 온 지 얼마 안 되었지만 <짜파게티와 파김치 콜라보>의 위력을 잘 알지 못했다.
아쉽게도 멤피스 한국마트에선 파김치를 팔지 않았다. 대신 부추김치를 샀다. 이미 와인과 맥주로 흥건히 취한 상태였지만 난 열심히 짜파게티를 끓였다. 그리고 우리는 거실에서 와인과 소주를 그리고 짜파게티와 부추김치를 마시고 먹었다.
독점 풀사이드 BBQ 파티를 하고 최고의 한국식 해장으로 마무리한 멤피스에서의 둘째 날이 그렇게 저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