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 Louis, 미주리
7일 차 운전, 멤피스-> 세이트루이스, 283마일(453km), 4시간 13분
멤피스 3일째 날은 일요일이었다. 채담의 아들이 주말을 맞아 멤피스에 오기로 했고 둘이서 오전 일찍 골프를 치기로 약속된 날이다. 여행객 셋은 오전에 채담민박에서 좀 더 쉬다가 아침을 먹고 출발하기로 했다. 이른 골프를 위해 떠나는 민박집 주인장 채담과 비몽사몽 간에 일어난 건방진 여행객들은 굿바이 인사를 했다. 앞으로 멤피스에서 모두가 다시 만나는 날이 한 번 더 있을 수 있을까? 멤피스에서 최고의 풀사이드 BBQ 추억을 선사한 채담은 우리와 그렇게 헤어졌다.
라면 브런치를 마친 우리는 하루 휴무를 가져 좀 더 생생해 보이는 도요타 군과 다시 길을 나섰다. 이틀간 휴무를 가진 Dr. 구도 다시 우리 여행에 동참했다.
원래 멤피스 이후 일정은 <내쉬빌>을 가는 것이었다. 테네시주의 주도이자 최대 도시기도 하고 멤피스와 함께 미국음악의 원투펀치인 <컨트리뮤직의 도시>로도 널리 알려진 곳이다. 하지만 우리는 <내쉬빌>이 다음 여행지로 두 가지 문제가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첫째는 멤피스 이후엔 샌프란으로 다시 서쪽으로 돌아가야 하는데 내쉬빌은 동쪽으로 세 시간 이상 더 가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최적동선이 가장 중요한 로드트립 특성상 상당한 핸디캡이고 좌뇌형이자 공대생 출신인 Dr. 구도 탐탁지 않아 하는 이유였다.
두 번째는 이미 멤피스에서 <음악의 도시> 맛을 충분히 본터라 내쉬빌이 크게 변별력이 있을까 하는 것이다. 각 주마다 엄청난 다양성이 있는 미국에서 같은 주에 위치한 유사한 느낌의 도시를 또 간다는 것은 알토란 같은 2주 일정에서 상당한 손실임이 분명했다.
그런 연유로 Dr. 구에게 새로이 추천받은 곳이 바로 미주리주의 세인트루이스다. 11번 월드시리즈 우승에 빛나고 오승환, 김광현이 잠시 뛴 적 있는 야구로 유명한 도시라는 정보밖에 없는 곳이었다. 하지만 북쪽으로 4시간 운전해서 동선에는 큰 지장이 없고 또 미주리라는 미지의 동네를 방문한다는 기대감에 다음 목적지로 최종 확정했다.
세인트루이스에 도착해 다운타운에 있는 카디널스 구장을 구경하고 근처에 있는 도시의 랜드마크인 <아치>를 봤다. 50대 아저씨들은 두 군데 모두 차에서 내리지 않고 <드라이브 스루> 관광을 즐겼다. 저녁만찬을 위한 차 안에서 노쇠한 몸의 충전은 드라이브 스루 관광의 충분한 명분이 되었다.
오늘의 숙소는 Residence Inn Marriot. 전체 일정 중 숙박시설이 가장 좋았고 특히 아침식사가 훌륭하다는 평이 많아 그것도 좀 기대되는 곳이었다.
저녁을 먹기 전에 Drug store를 찾았다. 여행 전 어머니가 사달라는 영양제가 있었는데 몇 군데 방문한 약국에서 그 브랜드를 찾지 못하던 차, 세인트루이스에 있다는 것을 검색을 통해 발견했다. 하지만 어렵게 방문한 그곳에서도 그 브랜드를 찾지 못했다.
호텔에서 이미 꽤 나왔기에 다시 돌아가서 식당을 찾기에도 애매했다. 무엇보다 그동안의 여행에서 <음식 to do list>는 어느 정도 미션달성을 한 상황이고 특히 멤피스에서의 진수성찬을 막 마친 터라 우리 셋 다 뭔가 새로운 메뉴에 대해 크게 땡기는게 없는 상황이라는 것이 더 정확했다.
그래서 그 약국 근처 맛집을 구글맵을 통해 검색했다. 세인트루이스 다운타운에서 좀 떨어진 주택가 인근이었는데 몇 군데 추천 식당이 떴다. 그중 특이한 소개가 있는 식당이 있었다.
<종업원으로 유명한 스포츠바 체인을 산장처럼 꾸민 공간에서 미국 가정식을 선보입니다>
1996년 <유니텔 식도락 동호회>의 창립멤버로서 여러 식당들을 검색을 통해 찾았던 오랜 경험에 비춰볼 때 <종업원으로 유명한 식당>이란 마케팅 문구는 처음 보는 것이었다. 음식이 아니라 종업원으로 유명한 식당이라고? 언뜻 떠오른 것은 Hooters였다. 한국에도 2000년대 후반 프랜차이즈로 들어왔다가 몇 년 만에 소리 없이 사라진 그곳. 그런데 Hooters 느낌이라고 하기엔 주변은 너무 주택가였고 유동인구가 많지 않은 곳이었다.
그런데 추가적인 키워드 <산장처럼 꾸민 공간>과 <미국식 가정식>, 이 두 가지가 또 킥이었다. <욕쟁이 할머니>가 주인장으로 있으면 어울릴 듯한 <가정식 식사>인데 종업원이 유명하다? 결국 이 세 가지 헤쉬태그#의 궁금증을 해결하기 위해 우리는 <Twin Peaks>로 향했다.
결론적으로 얘기하면 그 마케팅 문구는 조금의 과장도 없는 정직한 홍보문장이었다. 먼저 <종업원으로 유명할 만> 했다. Hooters 정도는 아니지만 젊고 매력적인 백인여성들이 서빙하며 단골인 듯한 손님들과 가벼운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스포츠바이기에 남성 혼자서 혹은 여럿이서 풋볼경기를 보며 한잔 하기에 적합한 곳이었다.
그리고 인테리어도 <산장> 분위기를 최대한 내고 있었다. 규모는 컸지만 마치 오두막 안에 있는 듯한 우드 스타일의 인테리어였다. 그리고 음식. 우리는 맥주와 함께 살사칩과 윙, 그리고 Mom’s pot Roast를 주문했다.
한국음식에 <백반>이나 <가정식>이 들어가면 뭔가 <집밥>이나 <노포>의 느낌이 난다. 미국음식에선 <Mom>이 그 역할을 하는 것 같다. 지금까지 간 식당에서 <미국식:American style>이라는 표현은 많이 봤지만 Mom은 처음이었다. 그런데 그 맛은? 미국인이 아닌지라 <엄마의 손맛>이나 <고향의 맛> 같은 느낌을 받지는 못했다. 하지만 미국인들은 이런 음식에서 <엄마>를 느끼는구나라는 것을 간접경험 할 수 있었다.
<종업원으로 유명한 곳> 이란걸 눈으로만 확인했지 메뉴에 관한 대화 말곤 <종업원>에게 달리 말을 걸지 않았다. 중년의 나이에 들어가며 젊은 여자종업원들에게 치근덕거려 보이는 말과 행동은 국내든 해외든 추한 짓이라는 걸 우린 알고 있었다. 해외에 나가면 모두 국가대표란 생각을 하며 오히려 미쉐린 심사위원처럼 음식에만 집중했던 것 같다.
편한 소파와 충분한 공간 등 숙박시설이 좋은 곳에선 호텔에서의 2차가 메인이 되기도 한다. 이 날이 그랬다. 호텔로 돌아오는 길에 1.5리터짜리 Woodbridge 와인 한 병과 맥주 여러 캔을 샀다. 우리에겐 든든한 <컨디션 스틱>이 있기에 부담 없이 와인을 마셨다. 아직 연고를 바르는 현암은 와인은 한잔만 마시고 나머지는 맥주를 마셨기에 나와 석헌이 1.5리터를 한 병 다 비웠다. 와인 한 병이 750밀리기에 각 1병씩을 마신 것이다.
세인트루이스에서 Woodbridge 1.5리터를 시작한 이래 나머지 여정에선 편의점에서 팔기만 하면 1.5리터 와인 한 병씩을 산 것 같다. 브랜드는 거의 Woodbridge 또는 Yellow tale. 사실 우리는 Yellow tale을 좀 더 선호했다.
2005년 한국은 물론 전 세계를 강타한 베스트셀러 <블루오션 전략>. 한국인 교수 김위찬이 메인 저자이기에 한국에서 더 인기를 끌었고 아마 그 해 10대 키워드로 선정될 정도로 화제의 책이었다. 그리고 이 책의 사례로 등장해 유명해진 것이 두 개 가 있는데 그중 하나가 <태양의 서커스>고 다른 하나가 <Yellow tale 와인>이다.
이 책은 <Yellow tale 와인>의 성공전략으로 ‘와인의 어려운 라벨을 쉽게 포도품종으로만 명기한 것’으로 꼽았다. 그 외에 코르크 마개가 아닌 <트위스트>로 열 수 있게 한 와인뚜껑과 결정적으로 <저렴한 가격>을 얘기한다.
나와 현암은 와인을 좋아하긴 하나 한국에 있다 보니 소주와 맥주를 접할 기회가 훨씬 많다. 그에 비해 미국시민인 석헌은 와인과 맥주 애호가이며 특히 <한국소주>는 거의 마시지 않는다. 정확히 <한국 희석식 소주>에 대해 석헌은 맛이 좋고 나쁘고의 문제가 아니라 <맛 자체가 없음; 無味>에 대해 극혐 했다.
어쨌든 한국소주는 미국 편의점에서 구할 수도 없기에 우리는 자연스레 와인을 2차로 많이 마셨는데 선택기준은 <가격>이었다. 그렇기에 10불 정도의 저렴한 가격의 미국 와인인 Woodbridge와 호주와인인 Yellow Tale은 우리의 주 선택지였다. 두 와인은 일정 수준 이상의 맛과 품질도 갖추고 있기에 2차로 호텔에서 <수면용 와인>으론 최적이었다.
이번 여행 중 우리 세명의 호흡이 좋았던 것 중 또 하나는 <실리 위주>라는 공통적인 소비습관이었다. X세대 중 1세대인 우리는 어릴 때부터 <절약이 미덕>이라는 교육을 받으며 자랐다. 그러다 보니 허투루 돈을 쓰는 것에 대해선 경계하는 것이 습관화가 되어있다.
예전에 석헌과 이와 관련한 에피소드를 얘기한 적이 있다. 내가 국민학교 시절 절약교육 사례 중 독일인에 대해 배운 것을 얘기했다. 독일인들은 담배 피울 때 사람들이 여러 명 모여야 성냥개비 하나를 켠다며 우리도 그 같은 절약정신을 배워야 한다고 교육받은 것을 얘기했다. 국민학교를 일본에서 졸업한 석헌은 일본에서도 비슷한 교육을 받았다는 것이다. 연필을 깎을 때 심지를 뾰족하게 하면 그만큼 심지를 버리게 되는 것이니 연필심지를 뭉툭하게 깎으라고 교육받았다는 것이다.
이렇게 유년시절부터 <절약>에 대해 교육을 받은 우리는 <비싼 달러>를 쓰는 미국여행에서도 교육의 효과를 톡톡히 발휘했다. 그 대표적인 것이 10불짜리 와인으로만 달린 이번 로드트립이었다. 좋은 스테이크에 버번위스키를 곁들인 식사도 필요하지만 굳이 그럴 필요 없을 때는 최대한 절약을 하는 것 또한 이번 여행의 컨셉이었고 결과적으로 좋은 추억이 되었다.
오늘은 편의점에서 Yellow tale Shiraz 한 병을 사서 마셔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