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ucumcari, 뉴멕시코
3일 차 운전, 산파페-> 투쿰캐리, 360마일(576km), 5시간 40분
5일 차 목적지를 결정하는데 한 가지 조건이 더 추가되었다. 7일 차에 멤피스를 도착하기에 그전 6일 차엔 툴사(Tulsa)에서 1박을 하자고 석헌이 제안했기 때문이다. 툴사를 석헌과 Dr. 구가 몇 년 전 여행한 적이 있는데 거기서 기가 막힌 스테이크집을 갔었다며 멤피스 입성 전 스테이크에 버번위스키를 한잔 하자는 것이었다. 로드트립 중 대부분의 저녁식사가 맥주와 와인만을 곁들이기 때문에 스테이크를 근사하게 하는 곳이 있으면 언제든 버번위스키와 페어링 할 기회를 찾고 있던 터였다.
그렇게 내일이 먼저 정해져 역순서로 결정된 오늘의 목적지는 역시 처음 들어 본 도시인 뉴멕시코의 투쿰캐리(Tucumcari)였다.
명석한 Dr. 구는 일단 뉴멕시코의 상징인 산타페(Santa Fe)를 들려 점심을 먹고 구경한 후 당일 운전할 적절한 거리를 계산했다. 그리고 미국의 마더로드인 루트 66에 위치한 투쿰캐리에 있는 모텔을 예약했다. 3 Bed 호텔이 주위에 없음을 확인한 Dr. 구는 우리의 예산인 150불 정도에 퀸사이즈 베드 한 개와 트윈베드 하나, 방 두 개로 예약하는 치밀함을 보여줬다. 거기에 더해 이틀 간의 멕시코 요리에 좀 질려 있던 한국관광객들을 고려하여 호텔 바로 옆에 희귀한 중국식당이 있음도 알려줬다.
산타페를 경유할 때 Dr. 구는 그곳에서 예쁜 루프탑 카페도 추천했다. 산타페 전경이 한눈에 보이는 곳이며 SNS에 아주 인기 있는 곳이란 설명도 곁들여. 하지만 50대 중반의 한국 아저씨들에겐 예쁜 카페는 전혀 고려사항이 아니었다. 산타페 다운타운을 휘뚜루마뚜루 구경하고 사진 몇 장 찍고 샐러드로 점심 먹는 것으로 산타페 관광을 대체했다.
우리에게 오늘의 메인이벤트는 중국식당에서의 저녁식사였다. 이틀 연속 멕시칸으로 저녁을 하고 아침과 점심도 미국식으로 했기에 짭조름한 아시안 음식이 제법 당길 때였다. 중국식당 중 가끔 와인을 안 파는 곳도 있기에 석헌은 가는 길에 그 식당에 전화해 와인을 파는지 물어봤고, 식당에서 와인을 팔지는 않지만 사 와서 마시는 것은 괜찮다는 답변을 들었다.
모텔 Alama Inn에 체크인을 했다. 루트 66에 위치한 모텔이라 그런지 시설은 오래됐지만 이번 여행 중 가장 미국식 모텔다운 클래식한 곳이었다. 새로 지어진 깔끔한 호텔도 좋지만 무릇 미국 로드트립이라면 “알프레드 히치콕” <사이코>에 나오는 듯한 허름한 정통 모텔에서의 숙박도 좋은 경험임이 분명했다.
근처 편의점에서 와인과 맥주를 사서 즐거운 마음으로 중국식당을 향했다. 그런데 입장과 동시에 청천벽력 같은 소리를 듣게 되었다. 우리 술 봉다리를 본 할머니 주인장이 술은 반입이 안된다고 잘라 말하는 것이다. 아니 몇 시간 전에 된다는 걸 전화로 확인했다고 해도 막무가내로 자신들의 정책은 술은 안된다고 했다. 주인 할머니 옆에 딸로 추정되는 중년의 여인이 우리와 눈도 못 마주치고 쭈구리로 앉아 있었다. 그 모습을 보니 전화를 받은 이는 딸로서 아마 딸과 어머니인 주인 간의 식당운영 정책의 차이가 있는 듯했다.
대주주가 안된다는데 어쩔 도리가 없었다. 다른 곳으로 옮기고 싶은 생각도 들었고 어제 갤럽처럼 대안이 없는 것도 아니었다. 아, 하지만 이미 우리 몸은 지난 몇 시간 동안 중국음식을 받아들일 모든 준비가 되었고 모든 신체 장기가 그것만 기다리고 있는 상황이었다. 목마른 사슴이 우물을 찾듯 우리는 힘없는 목소리로 To Go는 되냐고 물었다. 중국 할머니는 의기양양한 미소를 띠며 Yes를 외쳤고 그렇게 우리의 저녁 식당은 포장음식과 함께 하는 모텔방으로 결정되었다.
소고기, 닭고기, 새우 요리에 볶음밥과 볶음면을 추가한 우리의 성대한 저녁식사는 혼자 방을 쓰게 된 석헌의 룸으로 정해졌다. 여행을 하다 보니 점점 긍정주의자가 되는 것인지 아니면 와인의 취기가 금방 올라서인지 이 또한 전화위복이 된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방에서 편한 복장으로 와인과 중국음식을 먹으며 듣고 싶은 음악을 맘껏 듣다 보니 마감시간과 주위 손님에 구애받을 필요 없이 먹는 것도 또 다른 즐거움이었다.
그리고 그동안 사용하지 않았던 로드트립용 비장의 무기를 그날 처음 꺼냈다. 그것은 바로 한국에서 공수해 온 컨디션 스틱이었다. 매일 몇 시간 이상 운전해야 했기에 숙취는 로드트립의 가장 큰 우려사항이었다. 그렇기에 실제 효과가 있던 아니면 플라시보든 숙취해소제의 도움은 꼭 필요한 것이었다. 평소 한국에서의 술자리에선 약물복용이 참음주인의 자세로선 정정당당하지 못하단 생각에 숙취해소제를 자주 복용하지 않았다. 하지만 50대 중반 몸뚱이로 하는 미국 로드트립에서는 그딴 명분이나 가오는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지난 이틀 간은 다음날 운전이 조심스럽기도 해서 술을 조절하며 마셨다면 이날은 방에서 오랜만에 중국음식과 함께 와인과 맥주를 양껏 마셨다. 컨디션의 효과 덕분이었을까? 다음날 우리 중 아무도 숙취를 느끼지 못했다. 충분한 음주 덕분에 모두들 숙면을 취한 것은 덤이었다.
낡은 모텔이고 관리인도 늘 상주하지 않아 조식은 없었다. 그런데 덕분에 로드트립 To do List 중의 하나인 허름한 미국식당에서 정통 아메리칸 브렉퍼스트 먹기를 달성할 수 있었다. 모텔 바로 옆 식당은 어젯밤 눈여겨봐 둔 곳으로 동네사람들도 아침식사를 많이 하는 식당이었다. 스크램블에그와 베이컨은 호텔조식에 늘 포함되어 있었지만 계란후라이와(Sunny side up) 특히 메이플시럽을 잔뜩 끼얹은 팬케익은 드디어 먹어보는 메뉴였다.
아침 해장술도 팔고 60세 이상 어른들에겐 할인까지 해 준다는 루트 66 길가 투쿰캐리의 허름한 동네식당에서의 아침식사는 로드트립 전체 일정에서도 손에 꼽을 만큼 별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