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d Faith Letter: 소제기 전 합의

1부. 뉴욕주 민사소송 Intake 단계에서 소제기 전까지

by 뇩변

‘소송의 나라’라 불리는 미국.

매년 수많은 소장이 법원에 접수되지만, 정작 재판까지 가는 사건은 극히 드물다.

미국 법무부 통계에 따르면, 전체 민사소송의 약 95~96%가 재판에 이르기 전에 합의로 종결된다고 한다. 즉, 실제로 최종적으로 재판 단계에 이르는 사건은 전체의 불과 4~5%에 지나지 않는다. 특히 개인상해 사건의 경우 그 비율은 더욱 높아, 일부 연구에서는 97~98%가 재판 없이 합의로 마무리된다고 한다.

결국, 미국에서 대부분의 사건은 법정이 아니라 협상 테이블 위에서 마무리되며, 언제 합의할 것인가가 관건이다.



소송으로 가는 사건

어느 날 문득 나는 사수였던 유태인 변호사에게 푸념을 늘어놓았다.
“왜 이렇게 제가 맡는 사건은 하나같이 문제가 많은 걸까요?”

그는 잠시 나를 바라보더니, 특유의 차분한 어조로 말했다.

“쉬운 클레임, 즉 일방의 과실이 명백한 사건은 일찍 합의로 끝나. 그렇지 않은 사건만이 소송으로 가는 거야.”

그러고는 잠시 생각하더니 한마디를 덧붙였다.

“문제가 없는 사건은 없어. 다만, 언제나 길은 있지. 그 길을 찾는 것이 바로 사건의 해결사인 우리 일이고 말이야”

그 말은 내게 단순한 위로가 아니라, 법조인으로서 사건에 대한 철학처럼 남았다.
이후로 뉴욕주 개인소송부터 복잡한 기업 소송까지 수많은 사건을 맡아오면서, 동료들이 “이건 방법이 없어”라고 말할 때마다 나는 그 말을 떠올린다.

방법은 있다. 길은 반드시 있다. 그리고 나는 그 길을 찾을 수 있는 법률적 해결사라는 사실을 상기하며, 지금도 여전히 그 길을 찾아가는 중이다.


그런데 드물게 ‘쉬운 클레임’을 만날 때가 있다.
예를 들어, 직진 중이던 차량이 앞차가 정지하자 따라서 멈췄는데 뒤차가 그대로 들이받은 경우. 명백히 100% 뒤차의 과실이며, 블랙박스 영상까지 있다면 조기 합의로 끝날 가능성이 높다.

내 의뢰인의 사건이 그랬다. 충돌이 심해 차량은 폐차되었고, 그녀는 사고로 인한 디스크 손상으로 수술을 받았다. 우리는 소제기 전 상대방 차량 보험사에 보험 한도 전액을 손해배상금으로 청구했다.


그러나 보험사의 대응은 기계적이었다. 명확한 근거도 없이 디스크 손상은 나이 때문이지, 사고와는 무관하다며 청구액의 4분의 1 수준만을 제시했다.

소송으로 가면 승소 가능성이 높아 보험사가 합의에 응할 것은 예측되었다. 그러나 결국 합의 시점까지 배상금 수령은 지연될 수밖에 없고, 청구인은 신속히 배상금을 받기 위해 더 낮은 금액으로 타협할 가능성도 있었다. 설령 보상 한도를 전액 지급해야 하는 경우라도, 보험사는 지급 시점을 소송 절차를 통해 고의로 지연시킬 수 있을 것이라는 계산을 읽을 수 있었다.

'그래도 정도가 있지.'

나는 보험사에 대해 강력한 압박을 가하기 위해 무기를 꺼내 들었다. 바로 Bad Faith Letter.


보험사를 움직이는 편지 - Bad Faith Letter

타인의 과실로 인해 부상을 입어 보험사에 클레임을 청구하면, 손해사정인(claim adjuster)과 협상을 진행하게 된다.

그들은 보험사의 이익을 대변한다. 그들은 청구를 거부할 수 있는 모든 논리를 탐색하고, 사고의 과실 여부를 판단하며, 지급 가능 금액을 평가한다. 그리고 그 결과를 토대로, 청구인이 최저 금액의 제안에 동의하도록 설득한다. 이러한 행위는 불법(illegal)이 아니다. 그러나 정당한 협상과 악의적(bad faith) 협상 사이에는 경계가 있다.


악의적이란 불공정하거나 부정직한 행위를 의미한다. 만약 손해사정인이 지속적으로 청구인의 서류 제출 요청을 무시하거나, 정당한 근거 없이 협상을 지연·방해하는 등의 태도를 보인다면, 보험사에 이러한 행위에 대한 경고 서한인 ‘Bad Faith Letter’를 발송해야 한다. 물론, 이 방법은 협상을 원만히 이끌기 위해 자주 쓰는 수단은 아니다. 나는 보험사를 압박하기 위해 극단적인 상황에서 전략적으로 활용한다. 동일한 손해사정인을 다른 사건에서 다시 마주칠 수도 있는데, 이러한 일로 관계가 틀어지면, 이후의 협상은 불필요하게 어려워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서신에는 이러한 내용을 담는다.

"당신의 피보험자(insured)가 명백한 과실을 저질렀고, 내 의뢰인의 중상 정도를 고려할 때 보험 한도 전액이 합리적인 합의금이라는 점, 이를 거부한다면 재판을 통해 보험 한도를 초과하는 손해를 입증할 예정인 점, 그 결과 피보험자의 개인 자산이 압류될 수 있다."

또한 보험사가 이 사실을 즉시 피보험자에게 통지해야 할 의무를 상기시키며, 보험사가 전액 지급을 거부할 경우 신의성실의 원칙을 위반(bad faith)하는 것으로 간주될 수 있음을 명시하고, 피보험자가 별도의 변호사를 선임할 것을 권고한다.


뉴욕의 판례는 분명하다.
보험사가 피보험자의 이익보다 보험사 이익을 우선시해 합리적 합의를 거부한 경우, 법원은 보험 한도를 넘어서는 금액까지 보험사에 전액 배상 책임을 인정할 수 있다.


합의의 순간

피보험자의 개인 자산 및 임금이 압류 위험에 노출될 수 있을 뿐 아니라, 보험사가 신의칙을 위반하여 판결금 전액을 부담해야 할 수 있다는 리스크는 보험사 손해사정인에게 큰 압박으로 다가온다. 물론 클레임을 거부하거나 낮은 금액을 제시할 근거가 충분하다면 그들의 입장을 유지하겠지만 말이다.


Bad Faith Letter를 발송한 지 며칠 후, 보험사 손해사정인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그는 내가 Bad Faith 클레임을 얼마나 진지하게 고려하고 있는지 그 ‘진정성’을 파악하려는 듯했다.

나는 담담하게, 그러나 단호하게 대응했다.

나는 내 의뢰인이 타고 있던 완전히 폐차된 차량의 사진을 바로 이메일로 발송하며 말했다.
“이 사건이 배심재판으로 가게 된다면, 그리고 배심원들이 이 사진을 본다면, 그들은 당신의 고객(피고)에게 분노할 것입니다. 그 결과는 보험 한도를 훨씬 초과하는 평결일 것이고, 우리는 거기서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

내 목소리에서 망설임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는지, 그는 잠시 뜸을 들이더니 천천히 답했다.

“보험 한도 전액을 지급하겠습니다. 공식 레터는 이메일로 발송하겠습니다."


그렇게 사건은 합의로 마무리되었다.

소송으로 가기 전, 깔끔하게 — 그리고 많은 사건이 그렇듯, 이 사건 역시 법원이 아닌 협상 테이블 위에서 끝났다.


실무 팁

보험사가 신의성실의 원칙을 위반했다고 판단되는 경우, Bad Faith Letter 발송을 검토할 수 있다. 다만 서신 작성 시 처음부터 소송을 언급하며 위협적인 어조로 시작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협상 과정에서는 언제나 합리적인 당사자로 보이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향후 소송으로 이어질 가능성을 대비해, 보험사와의 문제 해결을 위해 충분히 합리적인 노력을 기울였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이를 무시했다는 사실을 입증할 수 있어야 한다.

Bad Faith Letter에는 다음 사항을 명확히 포함시키는 것이 좋다. 우선, 본 사건의 손해액이 보험금 한도를 초과할 것으로 예상됨을 강조하고, 그로 인해 배심원 평결에서 초과 판결이 내려질 경우 피보험자의 개인 자산 및 임금이 압류될 위험이 있음을 명시한다. 또한 보험사에는 피보험자의 최선의 이익을 보호할 의무가 있음을 상기시키며, 합리적 근거 없이 손해배상금 지급을 거부할 경우 이는 악의적 행위(bad faith)로 간주될 수 있음을 통보한다. 아울러 보험사는 피보험자에게 초과 배상 리스크를 설명하고, 이해상충(conflict of interest) 가능성을 고려하여 별도의 변호사 선임 필요성을 안내해야 한다는 점을 명확히 밝혀야 한다.

Bad Faith Letter는 강력한 협상 수단이 될 수 있지만, 동시에 협상의 판을 깨뜨릴 수도 있다. 따라서 협상에 미칠 영향을 고려하여 사용 여부 및 발송 시점을 신중히 판단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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