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리 슈슈의 모든 것
개요 드라마 일본 146분
개봉 2005년 06월 23일/ 2001년 일본개봉
감독 이와이 슌지 岩井俊二
1. 오프닝 Opening
중학생 정도로 보이는 앳된 소년이 초록색 들판에서 CD플레이어를 손에 들고 이어폰으로 노래를 듣고 있다. 그 들판은 마치 시간이 멈춘 공간처럼 조용하고 고요해서 소년의 존재는 마치 바람결에 스친 작은 음표 하나처럼 아련하게 다가온다. 눈부시게 초록인 풀잎 사이에서 홀로 있는 그의 모습은 세상과 조율되지 못한 한 소절의 멜로디처럼 흔들린다.
자막으로는 이 소년이 인터넷상으로 누군가와 채팅하는 듯한 대화 내용이 나온다. 검은 글자가 화면 위에 조용히 뜨고 사라질 때마다 마치 속삭이듯이 들려오는 타인의 목소리는 익명과 익명 사이를 떠도는 유령처럼 흐른다. 오직 화면 너머 존재하는 누군가와 나누는 이 텍스트의 파동은 그에게 현실보다 진실에 가까운 온기를 준다.
이 첫 장면은 마치 투명한 물 위에 던져진 조약돌처럼, 세 가지 파장을 남긴다. 첫 번째는 이 소년이 릴리라는 가수의 굉장한 팬이라는 것이고 두 번째는 이 소년의 의사소통은 현실 세계보다는 가상 세계에서 활발하다는 것이다. 이 소년은 가상공간에서 더 선명히 존재하며 현실에서는 그저 옅은 그림자처럼 스쳐가는 존재일 뿐이다. 소년이 들고 있던 CD플레이어에서 흘러나온 음악은 단순한 노래가 아니라 그의 세계를 정의하는 숨결이며 그는 현실이 아닌 가상에서만 또렷이 살아 있다. 마지막으로 세 번째는 곧 무슨 일을 이 소년이 저지를 것이라는 예고이다. 그건 예언이 아니라 잔잔한 공기 속에 숨은 파열음처럼 느껴지는 진동이며 곧 터질 비명 같은 침묵이다.
이와이 슌지의 네 번째 장편 <릴리 슈슈의 모든 것>은 몽환적 배경음악과 시적인 영상으로 관객의 감각을 부드럽게 마비시킨 뒤 그 틈을 타 잔인한 현실을 흘려보낸다. 감독은 마치 클래식 악장을 풀어놓듯 소년의 절도 장면과 릴리의 포스터를 품에 안고 자전거를 타는 그의 뒷모습을 나지막이 보여준다. 그가 바로 하스미 유이치. 이 영화의 주인공이다.
이 영화는 단지 '청춘'을 말하는 영화가 아니다. 감독은 한 인터뷰에서
내가 생각하는 진짜 제목은 <소년들의 모든 것>이다. 그렇게 이해해 달라. (출처: 2001.11.14. 김의찬 영화 평론가와의 인터뷰 /씨네 21)
라고 밝혔다. 이는 영화가 단순한 성장서사가 아닌 청춘이라는 이질적이고도 파괴적인 공기 자체를 포착하고자 한 시도임을 명확히 한다. 영화 내내 존재하는 건 질감과 체온과 무언가 금방이라도 부서질 듯 위태로운 공기뿐이다. 그것이 곧 ‘소년들의 모든 것’의 질감이다
그는 가수 릴리의 홈페이지-릴리피리아를 운영하는 관리자, 일명 피리아이다. 그의 엄마는 동네에서 미용실을 운영하고 엄마가 재혼하였는지 성이 다른 남동생과 살고 있다. 화면은 말하지 않지만 그 풍경엔 언제나 말해지지 않는 불완전한 가족 구조와 정서적 결핍이 스며든다. 마치 잘려나간 문장의 끝처럼. 아무도 읽지 않는 채 끝난 문장처럼 그 가족은 설명되지 않지만 분명히 부서져 있다. 그러니 유이치는 릴리라는 가상의 여신에게 자신만의 세계를 기대어 만든다.
2. 릴리의 새 앨범과 과거
그는 한 레코드점에서 릴리의 새 앨범을 훔치다 걸려 학교 담임선생님이 현장으로 오게 된다. 당연히 학교까지 알려져 엄마가 호출당한다. 알고 보니 엄마는 임신 중이었다. 이 사건은 그를 단숨에 현실로 끌어내린다. 더는 숨을 곳도 기대어 울 구석도 없다. 그는 가상과 현실 사이 누구에게도 손 내밀 수 없는 외로운 다리 위에 서 있게 된다. 유이치는 학교에 자신들의 행각을 일러바쳤다는 오해를 받고 일당들에게 몹쓸 짓을 당한다. 이것은 가상 세계와 현실 세계의 격차를 보여준다. 그는 가상 세계에서는 운영자로서 역할을 하지만 정작 현실 세계에서는 자기 생각과 마음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고 이리저리 끌려다니며 폭행당하고 괴롭힘 당하는 신세인 것이다. 그는 두 세계 사이에서 흔들리고 사라진다. 이름도 감정도 목소리도 부여받지 못한 채 그렇게 유령처럼 떠도는 존재로 남는다.
시간은 다시 과거로 돌아간다. 평범한 중학교의 입학식. 그중 뛰어난 성적으로 답사를 읽는 학생. 아까 일당 중 리더로 보였던 소년 호시노 슈스케이다. 그 이후 소년들의 일상이 물 흐르듯 자연스레 나온다. 여기서 이와이 슌지의 특기가 유감없이 발휘된다. 특유의 깊은 감성으로 일상적 장면을 섬세하게 묘사하며 특히 뛰어난 자연광의 활용으로 서정적인 분위기를 연출해 낸다. 핸드헬드를 적극적으로 이용하여 중학생들 특유의 밝고 힘찬 에너지뿐 아니라 내면의 어둡고 혼란스러운 면까지 과장된 부분 없이 정갈하게 담아내었다. 그의 카메라는 언제나 빛과 그림자 사이에 있다. 투명한 햇살 아래 드러나는 어깨선 하나에도 말할 수 없는 감정이 녹아 있다. 이 영화는 들뜬 것도 눌린 것도 아닌 그 사이의 미세한 떨림을 잡아낸다.
유이치는 리더인 호시노 슈스케와 처음엔 집에 초대받을 만큼 친하게 지냈던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그가 유이치에게 릴리를 처음 소개해주었다. (중요한 복선)
그리고 오키나와에서의 꿈같은 한때!
마치 다큐멘터리나 홈 비디오를 보는 듯한 흔들리는 화면과 대상과 밀착된 카메라는 현장성을 높이고 이 영화의 허구성을 지우는 데 일조한다. 흔들림은 곧 진실이다. 그들이 담긴 화면은 연출이 아닌 추억처럼 스며들고 관객은 어느새 그들과 함께 웃고 숨 쉬게 된다. 여기까지 영화는 기승전결의 큰 이야기 줄기보다는 인물을 소개하고 그들 주변의 공기를 담아내는 데 집중한다. 허나 그 와중에 중요한 메시지는 잊지 않는다. 오키나와에서 우연히 만난 남자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에게는 자연의 낙원일지 모르지만, 거기에 사는 생물에게는 지옥일지도 모르지. 그치만 자연이란 그런 거야.
이 말을 ‘자연’ 대신 ‘청춘’으로 바꿔보자. 감정은 증폭되고, 의미는 명료해진다. 이와이 슌지 감독은 NHK 다큐멘터리 인터뷰(2001)에서 이렇게 말했다.
청춘은 내게 가장 찬란하지만, 동시에 가장 잔혹한 시간이었다.
이 영화는 그 잔혹함을 미화하지 않는다. 다만, 그것을 잊지 않으려 한다. 청춘은 찬란하게 빛나 보이지만 그 속은 고통과 분열 질투와 불안으로 가득하다. 이와이 슌지는 청춘을 자연처럼 묘사한다. 절대적으로 아름답지만 때로는 살을 에는 고통을 동반하는 풍경으로서. 그 풍경은 기억처럼 남고 잊으려 할수록 더 선명해진다. 그래서 우리는 청춘을 사랑하면서도 두려워한다.
오키나와의 꿈결 같은 순간은 한 사건으로 급격하게 분위기가 바뀌고 호시노는 그 여행 이후 무언가 내면의 나사가 풀린 듯 폭력성이 폭발한다. 이유는 나중에 단 한 컷의 장면으로 설명되는데 아버지의 공장이 부도가 났으며 가정이 파탄 났기 때문이다. 물리적 붕괴는 곧 정서적 붕괴로 이어지며 그 공간은 십 대들의 폭력과 불안이 가장 짙게 발화되는 장소가 된다.
3. 비행
조건만남, 자해, 괴롭힘, 그리고 한 줌의 고백. 십 대들의 삶은 마치 살아있는 생태계처럼 팽팽한 긴장 속에서 순환된다. 이와이 슌지는 선형적 시간 배열을 거부하고, 의식의 조각들처럼 파편화된 내면의 흐름을 따라간다. 관객은 이야기 속을 걷는 것이 아니라 한 소년의 혼란스러운 정신 속을 헤매는 기분에 휩싸인다. 그의 영화는 항상 정제된 감각이 아니라 날것의 심리에 더 가깝다. 그래서 아프지만 진실하다.
4. 엔딩과 교훈
이 영화를 청춘영화라 불러야 할까? 이 영화에는 암울한 현실을 뒤집는 드라마틱한 반전도 주인공의 성장도 없다. 누군가는 뛰어내렸고 누군가는 칼에 찔려 죽었다. 오직 가상공간에서만 활발한 토론이 이어지고 현실은 차가운 교실과 시험 성적만이 남는다.
냉정하고 조용하며 너무나 익숙한 절망의 얼굴. 하스미는 릴리슈슈의 콘서트장에 간다. 그리고 거기서 가장 믿었던 이름 아오네코가 사실은 호시노였음을 알아차린다. 순간 자신에게 향했던 칼끝은 조용히 방향을 틀고 복잡한 감정 속에서 치명적인 선택으로 이어진다. 그 칼은 누군가의 몸을 꿰뚫고 소년의 내면을 찢어놓는다. 그러나 이 모든 절망의 파도 속에도 작은 불씨는 존재한다. 쿠노! 모든 폭력을 견딘 후 머리를 삭발하고 다시 교실로 들어온 아이. 그녀는 호시노의 짝사랑이었고 동시에 그의 폭력의 대상이기도 했다. 그녀를 향한 폭력에는 소유와 질투 그리고 무력감이 섞여 있다. 그러나 끝내 그녀는 무너지지 않는다. 절망 위에서도 꺾이지 않고 돌아온 존재. 감독이 유일하게 희망의 불씨를 숨겨 놓았다면 바로 그녀의 존재 안에 있을 것이다.
어릴 때 왜 이 영화에 그렇게 흥분하고 열광했을까? 이제는 어쩜 먹고사는 일에 바빠져 10대들의 고민 따위는 철없는 헛짓거리라 여긴 건 아닐까? 시대가 바뀌고 기술이 달라져도 십 대들의 어둠과 혼란은 여전히 같은 자리에서 고개를 든다. 오늘도 그렇게 10대들의 어둠과 혼란스러움은 어쩜 어른들의 한숨과 무지 속에 커가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청춘을 지나왔음에도 청춘을 너무 모른다. 마치 자연 속에 태어났음에도 자연을 이해 못 하는 것처럼.
5. Style 스타일
이와이 슌지의 영화는 언제나 빛에서 시작된다. 오프닝에선 거대한 사건보다 빛이 공기 속에 스며드는 작은 찰나들이 먼저 다가온다. 창 너머 햇살, 비 내린 뒤 아스팔트의 반짝임, 현실의 풍경과 감정의 떨림을 겹쳐 보여주며 풍경은 주인공 내면의 거울이 된다. 이렇듯 영화 속 오프닝은 이야기의 도입이 아니라 인물의 내면을 감각적으로 드러내는 장치가 된다.
이와이 슌지는 최근 인터뷰에서도
촬영은 언제나 빛과 대화하는 시간이라 생각합니다. 현장에 도착하면 어떻게 찍을지 모두와 대화를 계속하며 결국은 장면에 공기와 감정이 얼마나 자연스럽게 녹아드느냐가 중요하죠.(출처: 마리끌레르 코리아, 2023.11. “키리에의 노래 이와이 슌지 감독 인터뷰”)
라고 말했다.
또한 그의 영화 속 음악은 과거와 현재, 현실과 환상을 잇는 다리이다. <릴리 슈슈의 모든 것>처럼 음악은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인물과 관객을 동시에 과거의 감정으로 이끈다. 이와이 슌지는 꾸준히 자신이 음악 작업에 직접 참여하며
소설을 쓰거나 영화를 만들 때 관객을 강하게 의식한다면, 음악을 만들 땐 훨씬 더 추상적이고 자유롭게 제 속 감정을 표현하려 합니다. 음악 쪽에서는 타협 없이 심연의 감정을 그대로 녹이죠.(출처: 한국경제, 2024.9.15. “말보다 영화로 보여주는 것이 더 많은, 이와이 슌지 감독”)
라고 말하기도 했다.
비행 장면 역시 이와이 특유의 미학을 드러낸다. <피크닉>의 옥상 소녀들처럼, 그의 인물들은 현실을 벗어나려는 충동과 고독 속에서 이상을 꿈꾼다. 하지만 언제나 이 비행은 완전한 해방이 아니라, 불안과 아픔을 안은 날갯짓이다. 카메라는 이 충돌을 공중에서 담아내 청춘의 무모함과 아름다움을 시각화한다.
그리고 엔딩에서 이와이 슌지 감독은 답을 주기보다 여운을 남긴다. <러브 레터>의 설원에서처럼 결말은 열린 질문이 되고 교훈은 직접적으로 주어지지 않는다. 그는 청춘의 아픔과 성장의 진실이 결국 침묵과 여백 속에서 더욱 깊이 전달된다고 믿는다.
결국 이와이 슌지의 스타일은 감정과 기억의 기록이다. 빛의 오프닝, 음악과 과거의 교차, 날갯짓, 결말의 여백. 모두 그가 사랑하는 청춘 서사의 얼굴들이다. 그는 말보다 감정의 공기, 음악, 침묵을 빌려 관객을 건드리며 그의 영화는 흐릿하지만 결국 꺼지지 않는 잔향으로 청춘의 한 조각이 되어 남는다.
봄처럼 여름처럼 영화처럼 다섯 번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