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독서를 싫어해요. ”
독서 모임에 한 여자의 첫 마디였다. 강의실 안에 이십 명이 넘는 사람들이 차례대로 자기소개와 왜 독서 모임을 신청했는지를 말하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그 여자의 그 말을 듣고 나서 몇몇 사람들은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독서를 하기 싫으면서 왜 독서 모임에 오셨어요?” 모임장은 웃으며 물었다.
“저는 그냥 들으려고 왔어요. 솔직히 말하면, 책 읽는 사람의 얘기를 들으려고 왔어요.” 그 여자는 살짝 얼굴을 붉히며 대답했다.
“잘 오셨어요. 부담을 갖지 말고 책을 읽지 않아도 그냥 오세요. ” 모임장은 격려하듯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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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이런 상황은 일반적인 상식으로는 다소 당황스러울 것이다. 하지만, 이것이 우리 독서 모임의 실상이다. 왜냐하면 이 독서 모임은 다른 독서 모임과 다르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설명하자면, 외국 여성들이 모여서 함께 한국어책을 읽고 토론하는 독서모임이다. 그런데, 이 사람들의 상황은 어쩌면 자기 나라의 책도 읽지 않았을 수 있다. 그러니 어떻게 한국어로 된 책을 읽을 마음이 쉽게 들겠나, 어쩌면 그 여자가 그렇게 말한 것은 당연할 수도 있다.
그러한 상황에도 사람들은 이 독서 모임에 참가해, 한 달 한 권씩 책을 읽어 나가야 한다. 처음부터 끝까지 책을 완독한 사람은 몇 명도 안 되고, 대부분 사람은 그냥 강의를 듣듯이 참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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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모임에는 30세 중반부터 60대 초반까지 다양한 연령과 나라의 다문화 여성들이 있었다. 비록 한국에서 10년, 20년, 30년 살더라도 그들은 늘 자기가 한국인이 아니라는 것을 마음에 품고 살았다. 그래서 한국어를 잘하는 분도 막상 한국인 독서 모임에 들어가는 것이 마음에 꺼려졌다. 자기의 사투리와 같은 한국어 발음 때문에 독서 모임을 향한 발걸음이 주저되었다. 독서 멤버 중에 대부분은 한국어로 일상 대화는 가능하지만, 한국어책은 교과서 같아서 펼칠 때마다 머리가 아프거나 졸음이 올 사람들이다. 독서 자체가 공부라고 생각하니까, 마음속에 수없이 거부감이 우러나왔을 것이다.
그런데도 그들은 왜 굳이 황금 같은 토요일 오후 시간을 기꺼이 독서 모임에 받칠까? 이유는 간단하다. 한국에 살면서 가족 말고는 마음이 통한 친구가 없기 때문이다. 다문화 여성이라는 공동체에 들어와 책보다 사람과 어울리고 싶고, 더불어 위로와 공감을 찾으러 왔다. 이 모음은 한 달에 한 번 만나기 때문에 시작할 때 항상 각자 한 달 동안 어떻게 지냈는지 소개하는 시간을 가진다. 한 사람당 3분이라는 시간을 몇 번이나 강조해도 때론 말문이 열리기만 하면 10분 동안이나 멈추지 못하는 사람도 생겨났다. 평소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귀를 기울여 들을 만한 사람을 찾기 어려워서, 독서 모임에 와 자기의 생각과 감정을 마음껏 표현했던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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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시간의 독서 모임은 결국 반 이상의 시간을 각자의 일상생활을 말하느라 다 썼다. 그렇게, 마음의 갈증을 채우려는 역할을 하는 독서 모임이다. 그래서 어린아이를 안고 참석하는 멤버와 초등학생 자녀를 데리고 오는 멤버도 있다. 그들은 어린아이를 키우느라 자기를 위한 시간이 없이 자기 존재를 잊으며 살았다. 그러다가 여기 와서 사람들을 만나고 마음을 나누면서 비록 유창하지 않은 한국어로 말하더라도 들어 주는 사람이 있어서 자신에 존재감을 비로써 확인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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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이 지났다. 한국어책을 읽기 시작하는 멤버도 한 두 명이 있지만, 대부분은 여전히 책을 읽지 않고 독서모임에 나온다. 그들을 기다리기로 했다. 한국어책을 꼭 읽어야 하는 강요 대신에…
책을 읽는 사람과 점점 가까워지면 언젠가 그들도 손에 책을 펼치게 될 것을 믿는다. 때론 비록 책을 읽지 못했더라도 이미 독서한 사람이 한 사람씩 늘다 보면 그것에 또 본을 받아서 한 줄이나 한 페이지라도 시작할 날이 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