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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웨 May 02. 2024

때로는 나라의 무게를 개인이 감당할 때가 있다


처음 과외를 시작할 때였다. 초등학생 3학년과 5학년 형제를 대상으로 하는 첫 수업이었다. 학생들의 관심을 끌기 위해 중국 문화와 역사에 대한 퀴즈 여러 개를 준비했다. ‘중국에는 세상에서 무엇이 제일 많을까요’라거나, ‘중국인은 무슨 색깔을 좋아해요?’라거나 ‘중국인은 어떤 숫자를 좋아해요?’ 등, 이런 질문들이었다. 학생들은 여러 퀴즈를 맞히다 보니 어느새 서먹서먹한 분위기가 편안함으로 바꿨다. 학생들과 점점 친근해질 무렵, 3학년 동생이 갑자기 난데없이 나에게 질문을 던졌다. 


“선생님, 옛날에 중국이 우리나라의 땅을 빼서 갔죠? ”


이 말을 듣고 내 머리가 순식간 하얘져서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난감했다. 눈치 빠른 형이 얼른 동생을 째려보면서 낮은 목소리를 꾸짖었다. 


“선생님한테 그런 말을 왜 꺼내. 그만해.”


예상지 못한 상황을 만나니 다소 당황하지만, 나는 동생에게 내 마음을 솔직하게 표현했다. 


“옛날에 그런 일도 있었구나. 이웃 나라인 한국과 중국이 앞으로 사이좋게 지내기를 바래요.” 



© thepaintedsquarejessica, 출처 Unsplash



나에게 위로해주고 싶어서인지 미안해서인지를 잘 모르지만, 동생의 입에서 한 마디가 더 튀어나왔다. 


“선생님, 일본은 더 나빠요. 나는 일본을 정말 싫어해요.” 


수업은 잘 마무리되었지만, 그날은 내가 나라의 무게를 최초로 느낄 때였다. 



© CoolPubilcDomains, 출처 OGQ



몇 년 후 중국어 수업을 홍보하기 위해 어느 도서관에 갔다. 나보다 나이가 10세 더 많은 관장님은 개방적인 마인드여서 아이부터 성인까지 중국어 수업 여러 개를 개설해보자고 흔쾌하게 허락했다. 의외로 좋은 결과가 나오니 나는 관장님께 여러 번 감사를 표현했다. 우리는 또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관장님은 느닷없이 중국인들은 한국에 와서 돈만 벌려고 봉사를 안 한다고 나에게 말했다. 또다시 나라의 무게를 느낀 순간이었다. 그래서 다른 선생님은 돈을 받고 수업하지만, 나는 무료로 수업하겠다고 관장님께 확언했다. 나로부터 중국인에 대한 이미지를 바꾸자는 마음이었다. 


이렇게 관장님과 인연이 돼서 그 후에도 여러모로 관장님께 도움을 받는 것을 그때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어떻게 보면 나로 인해 관장님은 중국 사람에 대한 이미지를 좀 바꾸게 되지 않을까 생각했다. 혹은 어떤 나라 사람인지를 떠나 나를 오직 개인으로 인정했을지도 모르겠다.


© cleipelt, 출처 Unsplash



나는 운동선수는 아니지만, 외국에 살면서 국가대표가 되는 느낌이 들 때도 수없이 있다. 나의 개인적인 행동 하나를 돋보기로 확대해서 한 나라 국민의 정체성으로 생각할까 봐, 항상 조심스럽게 살아야 한다. 웬만하면 공공장소에서 한국어만 사용하기, 밖에서도 최대한 한국 사람인 척 생활하기 등등. 다른 사람의 눈에 띄지 않으려고 항상 노력한다. 




이렇게 20년 동안 살다가, 지난달 한 유튜브 영상의 댓글을 보고 눈물이 날 뻔한 적이 있었다. 중국 여행을 소개하는 한국인이 찍은 영상 아래서 한국인들은 이런 댓글을 썼다. 


“우리는 국가나 민족을 떠나서 인간입니다. 어려움에 처한 이웃을 모른 척 지나치지 않은 인류애를 가진 인간입니다. 서로 이해하고 존중하면 손해 될 것도 없고 싸울 일이 없습니다. ” 


“나는 중국인의 반한감정과 역사문제로 중국에 대해 좋지 않은 감정이 있었는데, 이 영상을 보고 참 순수하고 좋은 사람도 있구나를 느꼈네요. 어쩌면 우리는 언론과 영상매체에서 자극적인 것들로 편견을 갖고 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지금 이렇게 여러 나라를 다니면서 진실한 그 나라의 모습을 보여주는 유튜브 크리에이터에게 감사한 마음을 전하고 싶다. 사실 나도 한국 사람마다 개인의 입장으로 만나니까 서로 존중하고 이해하며 한국에서 살고 있다. 전혀 한 사람의 행동을 통해 대한민국을 정의하지 않는다. 



© krakenimages, 출처 Unsplash



또 마찬가지로 다문화 가족인 우리도 국가 대표라는 무게를 짊어지지 않고 한 개인으로 한국에서 살기를 바란다. 각각 길이가 다른 다섯 손가락으로 된 손처럼 우리도 서로 존중하고 도와주면 무한한 일을 할 수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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