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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이 Mar 15. 2024

조울증 7년 차 (12)

두 번째 늪에 빠지다

퇴원하고 2개월간의 병가를 마치고 회사에 복귀했다. 컨디션은 썩 나쁘지 않았다. 오랜만에 사무실에 들어가 오랜만에 책상에 앉아 PC를 켰다. 다시 일할 수 있게 되어서 좋았다. 쉬는 동안 새로운 직원들도 들어왔고 나의 복귀로 사무실 분위기는 화기애애해졌다. 팀장은 내 컨디션을 고려해 원래 하던 업무 대신에 비교적 쉬운 업무를 배정했다. (그녀는 나를 항상 응원했고, 나도 그녀를 잘 따랐다.) 새로 맡은 업무도 별다른 인수인계 없이 수행할 수 있을 정도로 컨디션 상태가 좋았다. 병가에 들어가기 전 팀 내에서 유일한 흡연자였는데, 신입들도 흡연을 해 외롭게 흡연장에 가지 않아도 됐다. 팀 내 모든 사람들은 나의 복귀를 환영했다.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구나.'


그때까지도 나는 정상인이었다. 아침에 일어나 출근 준비를 하고 커피 한 잔을 마시며 일과를 준비했다. 모두와 반갑게 인사하고 일하는 시간에 집중해서 업무에 임했다. 쉬는 시간에 남자 직원들과 함께 담배를 태우고 점심시간에 친한 동료들과 함께 즐겁게 점심을 먹었다. 퇴근시간이 되면 정시에 퇴근해 집에 돌아와 남자친구와 맛있는 저녁을 먹었다. 소소하지만 평화로운 일상이었다. 하지만 그 평화는 오래가지 않았다.



복귀하고 한 달쯤 지났을까. 아침에 일어나는 것이 힘들었다. 항상 샤워를 하고 출근했지만 늦게 일어나는 탓에 세수와 양치만 하고 출근하는 날이 많아졌다. 화장하기도 귀찮아 눈썹과 입술화장만 하고 출근을 했다. 일하는 동안 집중이 잘 되지 않아 흡연하는 시간이 많아졌다. 그 때문에 대표에게 이석이 너무 잦다며 한소리를 듣기도 했다. 점심시간에 점심 대신 자리에 앉아 낮잠을 택할 만큼 피곤했다. 나의 환경은 전혀 바뀐 것이 없었다. 업무량도 적당했고 무리한 운동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육체적으로 피로감을 느낄만한 요소는 없었다. 업무에 큰 지장은 없었기 때문에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러던 중 급여와 보너스가 지급되었는데 전혀 기쁘거나 설레지 않았다. 감정이 메말라 있었다. 몸은 점점 무거워지고 앉아있는 것조차 버거워졌다. 퇴근하면 저녁을 먹고 하루종일 누워있었고 수면시간은 점점 길어어 졌다. 끊었던 조울증 커뮤니티를 다시 찾기 시작했다. 그리고 생각했다. 


'올 것이 왔구나'


우울증이 왔다는 것을 자각하고 난 뒤는 이미 늦어있었다. 진작에 주치의에서 말해 약을 조율했어야 했었다. 하루는 팀장이 내게 괜찮냐고 물었다. 그 당시에는 괜찮다고 대답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면담 후 재택근무에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재택근무를 한다고 해서 상황이 나아지진 않았다. 출근 보고 시간인 10시가 되기 5분 전 일어나 사내메신저를 로그인하고 다시 잠들었다. 점심시간 이후 일어나 배정된 업무를 마치고 퇴근보고를 하기 5분 전까지 또 침대에 누워있었다. 퇴근을 해도 마찬가지였다. 남자친구가 퇴근하기 전까지 누워있다가 저녁을 먹을 때 잠깐 일어나 식사를 마치고 다시 누웠다. 남자친구는 도와줄 수 있는 게 없다며 마음 아파했다. (그때 당시 옆에서 수발 들어주던 전 남자친구에게 아직도 고마운 감정이 있다.) 매일 씻지도 않고 누워서 이 고통이 언제 끝나나 기다리기만 했다. 유일하게 외출할 때는 복권을 사러 갈 때와 친구와 통화하며 산책하는 것이 고작이었다. 첫 번째 우울증 만큼은 아니었지만 충분히 고통스러운 시간이었다. 결국 재택근무도 하지 못할 지경이 되어 다시 병가를 쓰게 되었다. 병가 기간 동안 팀장은 내게 전화해 안부를 묻고 언제쯤 복귀가 가능한지 물었다. 최대한 빨리 회복하겠다는 말 밖에 할 수 없었다. 하지만 첫 번째 우울증도 지나갔으니 두 번째도 지나갈 것이라는 믿음은 있었다. 끝나지 않은 것 같다는 두려움은 없었다. 다만 빨리 일상을 되찾고 싶었다. 그리고 처음으로 우울증에서 벗어나기 위해 약물치료 외 다른 노력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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