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기로운 정신병원생활 season 2 - 4화
정신병원에 입원한 지 한 달 정도 지났을 무렵이었다. 대부분의 사람은 나의 존재를 알게 되었고, 가끔은 나와 언쟁을 벌이는 사람도 있었지만 대부분의 사람은 나를 좋아했다. (아마 그랬을 것이다.)
하루는 알코올중독자 G와 K가 다투는 소리가 들렸다. 평소에 G를 잘 따르던, 한참 어린 K가 불같이 화를 내는 모습을 보고 관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자초지종을 들어보니 G가 K에게 소액의 돈을 빌렸고, G가 갚기로 한 날짜에 돈을 갚을 수 없다고 하자 K가 화가 난 것이다. G는 기초생활수급자였기 때문에 한 달에 한 번 일정금액을 지급받았지만, 지원금을 도박에 탕진했기 때문에 그에겐 한 푼도 남아있지 않았다. 나를 잘 챙기던 G가 곤란해하는 모습을 보니 안쓰러운 마음이 들었다. 나는 K에게 대신 갚을 테니 더 이상 G에게 독촉하지 말라고 부탁했다. 그리고 K에게 돈을 입금하고 사건은 마무리되었다. (하지만 그때 G를 도와준 것은 나의 크나 큰 실수였다.)
훈남이었던 L은 흔히 말하는 '반달'이었다. (나도 정확한 뜻은 모르지만 반+건달 정도의 의미로 알고 있다.) 정확하게는 L 본인이 반달(?)은 아니었고 주변사람들 중 조직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했다. 어느 날 L은 나에게 G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정중히 모셔야 한다고 얘기했다. 이유를 들어보니 G가 과거에 어떤 조직의 유명한 간부였다고 했다. 허풍쟁이가 널린 정신병원에서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지 않았다. 하지만 L은 주변사람에게 들은 확실한 정보라며 호들갑을 떨었다. 어둠의 세계에서 이름만 대는 아는 그런 사람이라며 내가 함부로 대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고 했다. 나는 G에게 사실이지 물었고 그는 부정하지 않았다. 과거에 그는 유명한 조직의 간부였고, 미디어에서나 봤을 법한 일들을 많이 저질렀다고 했다.(나는 그때 '담근다' 표현이 사람을 처리한다는 표현이라는 것을 처음 알았다.) 하지만 그는 과거를 청산하고 신학대학교에 들어갔다며 지금은 완전히 다른 사람이라고 말했다. 신학생이라는 것은 의심하지 않았다. 그는 성경에 대한 지식이 매우 많았고, 매일 새벽에 혼자 기도하는 그럼 사람이었다. (하지만 알코올중독자 신학생이라니 여간 신기할 수 없다.)
종교망상에 빠져있던 나는 사회적으로 소외받는 사람들이 일반적인 교회에 다니지 못하는 것에 불만이 있었다. 성소수자, 각종 중독자, 범죄자 등 사회에서 외면받는 그들에게는 진실로 예수님의 사랑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성경을 통독한 이후엔 생각이 좀 바뀌긴 했다.) G는 나의 생각에 격하게 공감했다. 그리고 우리는 매일 새벽마다 함께 사회적으로 외면받는 이들을 수용할 수 있는 교회를 만들어 달라고 기도하기로 약속했다. G는 항상 독한 약에 취해 잠들어 있던 나를 깨워 성경구절을 들려주고 함께 기도했다. (사실 나는 기도하는 내내 졸았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약에 취해 잠들어 있었는데 누군가 몸을 더듬는 더러운 느낌에 잠에서 깼다. 눈을 떴을 땐 G의 얼굴이 코 앞에 있었고 한 손으로 나의 허리를 주무르고 있었다. 화들짝 놀란 나는 뭐 하는 짓이냐 역정을 냈다. 그러자 그는 내가 아무리 깨워도 일어나지 않아서 주물러 주고 있었다고 했다. 나는 다시는 그러지 말라고 경고한 뒤 다시 침대에 누워 잠들었다. 그게 시작이었다.
나는 매일 건물 옥상에 올라갔다. 탁 트여있는 옥상에 올라가면 신의 목소리가 뚜렷하게 느껴지는 듯했다. 의자에 조용히 앉아 있으면 머릿속으로 삼위일체인 신의 목소리가 들렸다. 근엄하고 권위적인 성부과 인자하고 자비로운 성령과 다혈질, 욕쟁이인 성자. 난 그들과 가족이었다. 한참을 옥상에서 그들과 대화를 하고 내려와 사람들에게 '오늘은 신과 이런 대화를 나눴어'라고 말했다. 그들 중 일부는 나를 '성녀'라고 불렀다.
어느 날 나는 점심식사를 마치고 낮잠을 자고 있었다. 1인실을 쓰고 있었기에 아무런 방해 없이 잠들 수 있었다. 깊게 잠이 들려고 하는 찰나에 인기척을 느꼈고, 눈을 뚠 순간 나는 소리를 질렀다. 알코올중독자이며 나를 따르던, 친히 천사장인 '미카엘'이라 이름 지어주었던 G가 내게 입을 맞추고 있었다.
"무슨 짓이야? 미쳤어?"
분노로 인해 떨리는 목소리로 그에게 물었다. 그는 무릎을 꿇으며 다시는 그러지 않겠다며 빌었다. 이전에 느꼈던 불쾌한 예감이 결코 틀리지 않았다. 그는 나를 동경의 대상이 아닌 이성으로 생각해 왔던 것이다. 10살 이상 차이가 나는 그가 나에게 그러한 감정을 갖고 있다는 것을 느끼자 소름이 끼쳤다.
하지만 당장 그를 내칠 순 없었다. 친분이 있던 사람들 중 대부분은 나보다 G와 더 가까웠기 때문에 당장 그와의 관계가 틀어지면 나 또한 잃을 것이 많은 상황이었다. 마음은 내키지 않았지만 나는 그의 사과를 받아주었다. 그렇게 끝이었다면 좋았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