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글보글 글놀이 1월 3주 주제 "띠"
얼마 전 옷장을 대대적으로 정리하던 남편은 서랍장 하나를 다 비워낸 후 그 서랍장마저도 방에서 내보내버렸다. 만족감이 점점 커진 남편은 에너지가 더 솟아오르면서 거실가구와 아이방의 가구도 이동시키려는 계획에 돌입했다. 사실 남편은 잘 몰랐지만 그날 나는 정신적, 육체적으로도 상당히 피곤한 날이었다. 그래서 그가 일을 크게 만드는 것 같아 제발 어떻게든 말리고 싶었다. 매일의 고양이 털과 아이들 잡동사니 청소만으로도 바쁜데, 다음에 아주~ 많이~ 여유 있을 때 정리하자고 미루는 나의 처진 눈빛(혹은 가자미 눈?)을 남편은 읽은 것 같았다. 하지만 자신의 개운함을 어떻게든 나와 함께 나누고 싶은지 힘을 내어 혼자라도 열심히 정리를 하는 것이었다. 할 수 없었다. 나도 움직일 수밖에.. 그리고 결과는 예상대로 너무나 개운했다.
연말과 새해를 맞아 사람들은 새해 계획을 세우며 2023년의 버킷리스트를 작성하는 사람이 많다. 그러나 계획 이전에 해야 할 것은 정리부터다. 원하는 새로운 것을 들이기 위해서는 그것이 들어올 공간이 필요하다. 물리적 공간이든 마음의 공간이든 나에게서 이제 쓸모를 다한 것들이나 의미가 없는 것들을 내 보내는 작업이 먼저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나에게는 고민이 있다. 좋아하는 것들을 조금씩 모으고 수집하다 보니 다 쓰지도 못하는 것들이 집에 쌓여있다는 것이다. 누군가 필요한 사람에게 드려야지 하고 잘 담아두고는 적절한 때에 드리지 못해서 시기가 넘어 처분한 것도 있고, 선물 받은 소중한 것을 아껴두고 잘 ~ 아주 잘~ 보관했는데 그것을 잊고 결국 유통기한이 지나서야 발견해 아까워하기도 했던 물건들도 있었다. 정리를 한다고 적절한 장소에 잘 보관해 두는 것도 좋지만 어떤 것은 나보다 다른 이에게 전해지는 것이 더 나은 것도 있다.
얼마 전 너무 귀여운 원피스를 동네책방 <너의 작업실> 탱님으로부터 받았다. 그녀는 그 옷을 입었던 날 왠지 잘 안 어울린다고 계속 느꼈던지 나에게 선물해 주었는데, 원피스 러버인 나로서는 새 옷보다 그녀의 옷을 입고 날아갈 듯 기분이 좋았다. 자신에게는 의미나 쓸모가 다했지만 다른 사람에게 전해졌을 때는 그것이 그저 단순한 선물보다 더한 기쁨과 의미가 전달되기도 한다. 그 옷을 입으면 마치 탱님이 된 듯 상상이 되어 책방주인이 되어있는 상상을 하곤 했다.(승무원 유니폼처럼 책방사장용 옷 같은 것은.... 없지만 ㅎ)
쓰임이 다한 물건이 전해져 다른 곳에 사용되는 리싸이클- 재활용.
우리가 흔히 보는 이 마크, 이 아이콘은 뫼비우스의 띠에서 나온 디자인이다.
뫼비우스의 띠는 안과 밖이 같다. 긴 종이 끝을 동그랗게 붙일 때 안과 밖을 돌려 붙여 안에서 시작하지만 밖으로 연결된다. 무한의 의미도 있지만 연결, 순환의 의미로서 재활용 디자인의 화살표와 이어진다.
나의 집 안에서 쓰임을 다한 것이 나가서 다른 이에게나 다른 장소에서 또 사용되며 우리는 연결된다.
안에서 밖으로 연결되는 그 연결을 작은 쓰레기 분리수거의 의미로만 보기보다 조금 더 확장해 본다.
띠는 연결이다.
분리보다 연결을 원하는 인간의 본성은 이 띠의 모양처럼 서로에게 화살표처럼 다가간다. 그리고 그 띠는 결국 나에게로 돌아온다.
내가 가진 작은 재활용품, 혹은 옷, 선물이나 관심, 사랑이 타인에게로 흘러 흘러 멀리 전해지고 지구를 돌아 다시 나에게로 돌아오는 에너지와 파동의 모습이 사실은 저 디자인 마크 하나에 들어있는 것이다.
우리가 소유한 물건들과 마음에 담은 생각들, 버려야 할 오래된 물건들과 이제 그만 놓아야 할 마음속 집착들을 2023년 새해를 맞아 잘 보내주려 한다.
2월에 책방에서 시작한다는 매일 버리기 습관 챌린지에 도전할 예정이다. 나는 언제나 함께 하는 에너지에 힘이 난다. 함께 버리며 서로에게 전해지기도 하는 무용함이 유용함으로 변신하는 사랑의 에너지에 감사하게 될 시간이 기대된다. 나눔도 재활용도 뫼비우스의 띠와 같기에 나와 내 주변이 연결되어 함께 잘 정리되는 시작을 준비하고 있다.
(남편 곡 홍보?같아 보이지만 음원 수익 전액 기부입니다 ^^)
작사, 작곡 정지찬
노래 양요섭, 산들, 정승환2018.10.09 (MBC radio 환경콘서트)
뿌리에서 줄기로, 줄기에서 잎으로
잎 끝에서 거미줄, 거미줄에 이슬이
이슬이 내 손끝에 닿아
땅에서 다시 뿌리로
너의 눈에 이슬이, 이슬이 내 손끝에
손끝에서 가슴에, 가슴에서 눈으로
너의 눈에 눈물이 나면
내 손끝에서 눈물이 난다
우린 연결되어 있으니까 멀리 있는 것 같아도
우린 연결되어 있으니까 떨어져 있는 것 같아도
멀리 있어도 떨어져 있어도
같은 하늘 같은 숨으로 우린
우린 마치 섬처럼 바다로 갈라져서
떨어진 것 같았지 외로웠던 이유는
모르기 때문이었음을
깊은 바다 밑으로 항상
우린 연결되어 있으니까 멀리 있는 것 같아도
우린 연결되어 있으니까 떨어져 있는 것 같아도
멀리 있어도 떨어져 있어도
같은 하늘 같은 숨으로 우린
*매거진의 이전 글, 실배 작가님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