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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실배 Jan 19. 2023

어디 청개구리띠는 없나요?

띠가 가진 무서운 선입견

"실배야, 너는 나중에 절대 잔나비띠 여자랑 만나면 안 된다. 상극이야. 그것만 피해야 해. 꼭 명심해"


어릴 때 귀에 딱지가 붙을 정도로 어머니는 나에게 세뇌를 시켰다. 그때는 그저 알겠다고 답하면서도 잔나비가 무언지 궁금했다. 혹시 나비의 일종인가. 나는 뱀띠인데 나비랑 뭐가 안 좋다는 거지. 생각할수록 의문만 증폭되었다. 그러다 조금 커서 확인해 보니 잔나비띠는 정확한 용어로 원숭이띠였다.


솔직히 오랜 기간 잔나비띠에 관한 부정적인 마음이 내 안 어딘가에 차곡차곡 쌓였던 것이 사실이다. 누가 잔나비띠라고 하면 은근히 색안경을 끼고 바라보았다. 하지만 어머니가 간과했던 건 내 안에 흐르는 청개구리기질이었다. 말 잘 듣는 범생이 탈을 쓰고 뒤로는 하지 말라는 일을 골라서 했다. 물론 드러나지 않게 은밀하게 말이다. 사실 지금 가장 좋아하는 가수도 잔나비이다.


몇 차례 풋사랑을 거쳐 이제 슬슬 결혼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 때쯤 한 여성을 만났다. 그녀는 대학원 후배의 절친이었다. 도서관 앞에서 노란색 하늘하늘한 원피스를 입고 나에게 방그레 웃는데 그 순간 세상엔 그녀 하나만 보이는 신기한 경험을 했다. 그렇게 후배와 셋이서 자주 어울려 다니다 그녀와 같은 동네에 살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운명이었다. 그리고 한 해 뒤 그녀는 대학원에 입학했고, 정식으로 여자친구가 되었다.


우리의 관계는 깊어졌고, 결혼 이야기까지 나올 즈음 집에 놀러 온 적이 있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어머니가 그녀에게 띠를 물었다.


"미영아 너는 띠가 뭐니?"

"아. 저는 원숭이띠에요."


나는 보고야 말았다. 순간 정적과 어머니의 얼굴 속에 드리운 검은 그림자를. 애써 웃음을 지어 보였지만 누가 보아도 어색했다. 그녀도 이상함을 감지했지만 내색하지는 않았다. 그녀를 바래다주던 길에 참고 있던 궁금증을 꺼냈다.


"아까, 내가 띠를 이야기했더니 어머니가 조금 이상하지 않았어?"

"아.... 그게 말이야. 사실 어머니는 뱀띠인 내가 원숭이띠랑 잘 맞지 않는다고 믿고 있어."

"진짜? 오빠도 그렇게 생각해?"

"당연히 아니지. 띠가 뭐라고. 난 상관 안 해."


느낌 탓인지. 어머니가 그녀를 대하는 태도가 전과는 달라 보였다. 물론 띠뿐 아니라 독실한 불교신자였던 어머니와 독실한 기독교 집안이었던 그녀 사이에 커다란 벽도 있었다. 하지만 아까도 언급했듯이 내 안에는 청개구리 기질이 다분했다. 그럴수록 그녀에 대한 마음이 더욱 커져만 갔다.


어디 자식 이기는 부모가 있더냐. 우리는 무사히 결혼까지 골인을 했고, 벌써 16년 차 부부가 되었다. 그렇다면 어머니의 말씀처럼 우리는 상극일까. 100% 센트 맞는다면 거짓말일 테지만 그래도 지금까지 아들하나, 딸하나 낳고 지지고 볶고 살고 있는 것을 보면 그 말에 부인할 수밖에 없다.


나름 잘 살고 있는 모습에 어머니도 우리 앞에서 더는 띠에 관한 언급을 하지 않는다. 띠가 문제가 아니라 서로가 어떻게 배려하고 사는 것이 더욱 중요하지 않을까


이쯤에서 한번 찾아보았다. 과연 뱀띠와 원숭이띠는 어떤 특징이 있고, 정말 상극인 것인지.


먼저 뱀띠의 특징은

냉정하고 용의주도한, 포부가 있는, 현실적 이상주의자, 본심을 숨김, 집착력이 강한, 야심가, 논리적, 프라이드가 높음, 차가운 사람으로 보이는 경우가 많음

 

원숭이띠의 특징은

활동적이며 사교적인, 재주가 많고 영리한, 언변이 뛰어나 어려운 상황도 잘 극복함, 변덕이 심하여 변화가 심함, 회사나 친구관계에서 밝게 보이는 경우가 많음


원숭이띠와 뱀띠의 궁합은

원숭이띠 남자 뱀띠 여자 궁합은 좋은 궁합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그러나 결혼 후 부부생활을 이어나갈 때 백년해로 할 수 있다. 하지만 처음 느꼈던 사랑의 뜨거운 감정은 식고 사고하게 다투는 일이 잦다. 뱀띠 남자 원숭이띠 여자 궁합은 서로 이해하려는 노력과 상대방에 대한 존중과 배려 등을 통해 가정을 평화롭게 유지해 나갈 수 있다.

 

인터넷에 찾아본 결과이니 얼마나 신뢰로 울지 모르겠다. 다만 각 띠의 특징은 우리가 그 동물에 관해서 가지고 있는 형질에 기인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나 같은 경우는 오히려 뱀띠의 특징과는 반대되는 점이 많았다. 아내는 대체로 맞기는 하지만 모든 원숭이띠가 저렇다고 단언할 수 없다.


특히 두 띠간의 궁합은 어머니의 말씀처럼 썩 좋지는 못했다. 아마도 뱀띠가 가진 냉정한 특징과 원숭이띠가 가진 밝은 특징이 잘 맞지 않는다고 본 것 같다. 다만 서로 배려하고 존중하면 평화롭게 유지하다는 이야기가 많았다. 그건 비단 뱀띠와 원숭이띠뿐만 아니라 모든 띠에 해당되는 것은 아닐까. 결혼 생활을 하면서 서로를 이해하려는 노력이 무엇보다 중요함을 깨닫게 된다. 물론 실천은 늘 어렵지만.


나는 우리 아이들이 띠 안에 갇히지 않길 바란다. 아이들에게 무슨 띠라는 정도만 알려주었지, 그 밖에 어떤 말도 하지 않았다. 혹여나 가질 선입견이 얼마나 단단한지 몸소 경험했기에 잘 알고 있다. 앞으로 살아가면서 무수히 만날 틀 안에서 띠 하나를 더하고 싶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나는 뱀띠라기보다는 청개구리띠가 아닐까. 이것도 청개구리에 관해서 갖고 있는 선입견일지 모르겠지만. 앞으로 누가 물어보면 청개구리 띠라고 말해볼까나.



PS : 순전히 개인적인 생각이기에 혹여나 전문적으로 공부한 분이 보기에 불편한 내용이 있다면 너그러이 양해부탁드립니다.






보글보글 매거진 1월 3주 주제 '띠'입니다.


https://brunch.co.kr/@psa0508/7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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