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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영경 Mar 11. 2023

거절 속에 담긴 연결

보글보글 글놀이 [거절하는 용기]


우리나라 사람들은 한 번만에 말을 안 듣는다. 적어도 세 번은 말해야 한다.

가위바위보도 삼세판 정도는 해야 결과를 받아들이는 습관이 있어 그런 걸까?

선물을 받을 때도 한 세 번쯤 괜찮다고 사양을 하고는 못 이기는 척 받기도 한다.

누군가의 칭찬에 화들짝 놀라서 아니라고 두어 번 부정하다가 더한 칭찬이 나오면 어쩔 수 없이 결국 인정하기도 한다.


그래서 그런지 거절할 때도 단번에 표현을 못한다. 애매한 표현을 사용하는 경우에는 부탁하는 사람도 알아듣지 못해서 곤란한 부탁을 또 받게 될 때 처음에 가볍고 확실하게 거절할 걸 하고 후회할 때도 있다.




우리가 No 표현을 "괜찮습니다"라고 말하는 때가 많은 것처럼 서양문화권 외국인들이 한국어를 배울 때 알쏭 달쏭한 부분이 꽤 있을 것이다.

일본어도 마찬가지다. 사양할 때, 괜찮습니다 "大丈夫です"(다이죠부데스)라고 거절의사를 밝힌다.

그래서 한번 더 권하면 일본어로 하는 거절의 대답은 한번 더 헷갈리게 만든다.

No라는 의사표현을 "いいです"(이이데스)"좋습니다" 라며 반대로 말하는 것이다.

싫다고 해야 할 대답에 좋다고 말하며 거절한다. 언어는 단어 자체 표면적 뜻보다 그 언어를 쓰는 문화에 의해서 반대의 상황에서 사용되기도 한다.

이정도로 거절 그 자체를 언어로 표현하는 것도 꺼려하기에 제대로 거절하기 위해서는 '용기'라는 단어까지 필요해진 것이다.



Cat fight or flight?

상대를 위한 배려에 너무 신경 쓰느라 거절이 힘들었던 때가 많았다. 또 내가 원하는 것을 표현하는 것에 서툴러 거절하는 것이 힘들었던 때 내 마음 깊숙한 곳을 들여다보면 공통적으로 '두려움'이 있었던 것 같다.

두려움의 상태에서 뇌의 편도체의 반응은 싸우거나 도망치기 (fight or flight 투쟁도피반응)의 상태가 된다. 거절하기 두려워 도망치고 비겁한 사람이 되거나, 좋은 사람이 되고자 상대를 과도하게 배려하느라 자신에게 무리가 되는 부탁에도 거절을 못해 사면초과가 상태가 된다. 거절 못하는 사람은 어느 날은 천사짐을 무겁게 지고 살거나 또 다른 날은 도망자로 살아간다.

또 상대를 공감하기보다 내 욕구에만 신경을 쓰느라 거절하는 경우는 그것이 '거절하는 용기'가 있어 보이기보다는 어딘가에 두려움을 숨긴 상태로 거절을 하는 모습이었을 것이다. 모두 나의 모습이었고 이런 나에게 '거절'은 어려운 단어였다.


상대와의 연결감이 적은 상태로 서투르게 거절하거나 혹은 너무 단호하게 거절하는 경우는 부탁한 사람에게 상처를 줄 수도 있다. 그래서 특히 거절은 어려울 수밖에 없다.

이렇게 어려운 거절하기에 대한 두려움을 이겨낼 방법은 없을까?




인도의 명상가 오쇼는 <즐겨라 위험하게 사는 즐거움>이라는 책에서 두려움을 이겨내기 위해서는 싸우기와 회피하기 두 가지를 다 해보라고 권한다. 그런데 마음과 정반대로 해보라고 한다. 도망치고 싶을 때는 굳건하게 자리를 지키고, 겁쟁이로 살아왔다면 용맹하게 제대로 싸워보라고 한다. 정반대로 한 달 동안 행동하다 보면 싸우거나 도망치기를 모두 떨쳐버릴 방법을 이해하게 된다고 한다.

그런 후, 용맹함도 비겁함도 두 가지 모두 다 버리라고 한다. 그때 모든 두려움이 저절로 사라진다고 그는 말한다.


용기에 관한 그의 책을 읽으며 거절하는 상황에서는 물론이거니와 부탁하는 일에도 두려움이 많아 혼자 하거나 힘들어하는 내 모습을 그때마다 알아채고 반대로 행동해 보기로 했다. 동굴 속에 혼자 있고 싶을 때 사람들을 만나고, 입을 닫고 싶을 때 일부러 싸우기도 했다. 그러면서 그 두 가지 다 두려움 속에서 한 행동이었음을 깨달았고 그 행동을 모두 내려놓는 연습을 하는 중이다. 살면서 두려움의 감정은 없앨 수 없으니 균형 잡는 연습은 아마 계속될 것 같다.

 

거절의 연습은 쉽다가도 힘들다. 하지만 거절하는 순간 상대방 자체를 거절하는 것이 아닌 그의 부탁에 먼저 공감하고 경청한 후 거절하는 것임을 잊지 않는다. 비록 그 시간은 거절하는 순간이더라도 사랑과 연민을 전할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 되어 줄 것이다. 그때 내 곁의 두려움도 점점 누그러지는 것을 느끼게 될 것이다.



+)

내 안의 용기는 간직해야 한다.

하지만 밖의 용기는 버려야 한다.

특히 찬장  안 쓰는 플라스틱 용기는  버리자.

('용기'에 대한 말놀이가 재밌다는 5학년 딸이 한 말, 두 달째 야금야금 버리는 중인 엄마의 마음에도 드는 딸의 말)


*사진 출처:픽사베이


*매거진의 이전 글, 늘봄유정 작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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