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하고도 평범한 장애
- 타인을 받아들이는 일에 대하여
모든 학교에서는 4월 20일 장애인의 날 즈음하여 장애인식 개선 관련 행사를 한다. 내가 근무하고 있는 학교에서도 ‘장애’를 주제로 짧은 에세이 쓰기를 공모하는 중이다. 사행시, 삼행시 짓기처럼 되도록 학생들이 가볍고 즐겁게 참여할 수 있는 행사를 준비하려다 방향을 틀었다. 중간고사가 이제 막 끝난 터라 아침에 전 교사에게 많은 학생이 참여할 수 있도록 한 번 더 협조를 요청하는 메시지를 보냈다.
대략 15년 전 나라 걱정에 몸살을 앓았던 적이 있었다. 10월의 어느 오후, 또래에 비해 유난히 몸집이 작은 지적장애 남학생 S와 같은 반이었던 회장 아이가 찾아왔다. 같은 반 남자애들이 S를 3월부터 괴롭혀 왔는데, 더 이상 두고 볼 수가 없었다고 했다. 생각지도 못했던 일이다. 당시 S가 속한 교실은 내가 있는 교무실과 교실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어 쉬는 시간마다 수시로 드나들던 곳이었으며, S를 괴롭혔던 애들은 늘 내게 상냥하게 인사하며 S와 잘 지낸다고 너스레를 떨었기 때문이다. 괴롭힘의 수위는 상상을 초월했다. S를 커튼으로 둘둘 말아 이리 밀고 저리 밀며 몸 여기저기를 멍들게 하는 건 기본, 화장실에 데려가 옷을 벗기고 성추행을 한 사실까지 밝혀졌다. 이런 괴롭힘이 3월부터 지속됐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S 어머니는 S가 몸 여기저기에 멍이 들어오는 걸 인지하고 있었다고 했다. 왜 진작 이야기하지 않았냐는 물음에, 문제를 제기하면 S가 더 이상 학교에 다니지 못할 것 같아 가만있었다고 했다. 같은 층에 있으면서도 S가 괴롭힘을 당한 걸 몰랐다는 사실, 심지어 아침마다 들어가기 싫어하는 아이를 교실에 밀어 넣은 당사자가 나였다는 사실에 자괴감과 죄책감이 교차했다.
개개인이 모여 집단을 이루면 ‘광기’를 발휘하기도 한다는 걸 체감했다. 괴롭힘에 가세한 아이들은 자신들이 한 짓의 심각성에 대해 정확한 인지는 없었지만, ‘잘못했구나.’ 정도는 파악하고 있었다. 혼날까 봐 겁을 집어먹은 개개 아이들의 흔들리는 눈빛을 보며 저 아이들이 S에게 가한 짓을 상상하기란 쉽지 않았다. 평범하고 나약해 보이는 아이들이 집단이 되면 ‘괴물’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에 소름이 돋았다. 가해자들도 한 명 한 명 그저 '어린 아이'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잘못했으면 교칙에 따라 벌을 받으면 되고, 다시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으면 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문제가 처리되는 방식은 내 예상을 완전히 빗나갔다. 가해자 부모들이 학교에 전화를 걸기 시작했다. 자기 아이는 특목고, 그러니까 과학고나 외고를 가야 하므로 처벌을 받으면 안 된다고 우기며 이상한 논리를 들이밀었다. “왜 우리 애가 괴롭히게 이런 애들(장애가 있는 아이들)이 이 학교에 다니죠?”와 같은. 세상일은 모르는 거라 지금도 그런 일이 가능할지는 모르겠지만 가해자 부모들은 당시 학교에 입김 꽤 부는 양반들이었던 것 같다. S를 괴롭혔던 아이들은 전부 잘못에 상응하는 처벌을 피해 갔다. 교감에게 찾아가 원칙대로 처리해 달라 얘기했지만, 교감은 묵살했다. 결국 민원을 넣었고, 학교는 후다닥 교칙대로 일을 처리했으며, 나의 부장님은 교장에게 불려가 꽤나 오래 싫은 소리를 들었다.
진심으로 나라가 걱정됐다. 어른들이 나서 공부 잘하는 애들에게 ‘약자는 괴롭혀도 된다.’고 가르치고 있었으며, 많은 교사가, 특히 교장감이 ‘장애를 가진 아이’가 왜 교실에 앉아 있는지 가장 이해하지 못했다. S를 괴롭힌 아이들이 그들 부모의 바람대로 성장했다면 소위 ‘사’자로 끝나는 직업군에 속해 있을 것이다. 사건 후 찾아온 시험 기간. 부친에게 골프채로 맞은 아이가 아파트에서 뛰어내렸다는 소식에 아연실색하며 대체 학교는, 어른은 아이들에게 무슨 짓을 하는 걸까 회의감이 밀려왔다.
책을 보다 국회미래연구원의 최근 연구에 따르면 “미래는 지금보다 더 좋아질까?”라는 물음에 10대는 6.5퍼센트, 30대는 10펴센트만 동의했다는 내용을 마주했다. 미래를 낙관하지 못하는 삶은 불안을 담보하게 마련이며 행복할 리 없다. 인간의 다양성이 존중받지 못하고 획일적인 잣대로 인간을 줄 세우는 사회에서 선두를 달린들, 그 삶은 행복할까. 나라 걱정에 몸살을 앓던 15년 전 경험이 떠올랐다.
“교사들은 반에 장애가 있는 아이들이 있으면 막 대변하면서 보호해 주고 싶고 하잖아요.”
얼마 전, 같은 학교에서 근무하는 국어 교사가 점심을 먹다 건넨 말을 들으며 당시 뭐라 설명할 수 없는 위화감이 느껴졌다. 옛날 생각과 더불어 그간 거쳤던 불편했던 장면들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고백하자면, 교사라고 다 장애가 있는 아이들을 대변하며 보호해 주려 노력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분명한 건, 그래도 학교의 다양한 구성원 사이에서 장애 역시 인간의 다양한 측면의 하나로 받아들이려는 움직임이 간간이 눈에 띄는 건, 역시 좋은 선생님과 타인의 고통을 외면하지 못하는 아이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15년 전 해코지 당할까 무서워 더 빨리 말하지 못했다고 눈물을 흘리며 S가 괴롭힘을 당하고 있다고 용기 내 말해준 그 회장과 같은 아이들. 나는 그들 덕에 그래도 사회가 어떻게든 온기를 유지하며 발전한다고 생각한다.
“선생님, 저는 애들이 영어 단어 하나 더 외우는 것보다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마음을 갖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선생님, 창체(창의적 체험활동) 시간에 학급 전체가 에세이 쓰기 시간 갖도록 하겠습니다.”
해마다 장애인식 개선 교육의 취지와 중요성에 공감하며 답신을 보내는 선생님들이 꼭 있다. 15년 전 사건과 비슷한 종류의 일을 겪으며 늘 이직을 꿈꿨다. 사람들이 ‘장애’에 대해 갖는 편견에 수없이 무너졌고 때론 나의 역량에 비해 너무 버거운 아이들도 만났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무례한 민원에 몇 날 며칠 분한 마음에 잠을 설치기도 했다. 하지만, 사람은 사람 때문에 상처받고, 사람 때문에 다시 일어서기도 한다.
좋은 선생님과 정의로운 아이들, 그리고 세상이 싫을 때 나를 일으켜 준 ‘우리’ 아이들. 내가 만약 ‘장애’가 있는 아이들을 만나지 못했다면 이 세상엔 헤아릴 수 없이 다양한 형태의 삶이 공존하며, 저마다 모두 가치가 있다는 것을 배우지 못해 불행했을 거다. 능력주의를 맹신하며 능력이 미치지 못하는 나를 끊임없이 남과 비교하며 나와 나의 삶을 존중하는 게 훨씬 더 어려웠을 거다. 인간을 선입견 없이 바라보는 순수함을 나는 소위 ‘장애’가 없는 사람들로부터 느껴본 적이 거의 없다. 이른 아침, 내 이름을 부르며 짓는 미소 속 청량감에 나 역시 말간 웃음을 짓게 만드는 아이들. 가끔 그 아이들 내면의 빛나는 진가가 선입견과 오해에 가려져 안타깝다.
세상엔 이런 사람 저런 사람 다 있듯, 장애가 있는 아이들도 큰 범주에서 보면 그저 보편적이며 개별적인 평범한 인간일 뿐이다. 누구나 그렇듯 장애인 역시 적재적소에 필요한 지원이 제공되면 제 나름의 역할을 하며 주어진 삶을 꾸역꾸역 살아간다. 그저 나처럼. 가끔 그런 생각을 한다. 사람들이 겉모습만 보고 사람을 가르는 풍토만 사라져도, 장애인은 나와 다르기도 또 나와 같기도 한 평범한 사람이라는 걸 인식하는 사람들이 지금보다 조금만 더 늘어도 우리는 어쩌면 미래를 낙관하는 젊은이들을 더 많이 만나볼 수도 있지 않을까. 아이들의 머리는 어른과 달리 말랑말랑하다. 아이들이 에세이를 쓰며 나와는 다른 존재에 대해 골똘히 생각하며 다양한 사람들이 다양한 모습으로 저마다의 삶을 잘 살아가고 있다는 걸 알기 바란다. 선입견 없이 타인을 받아들이는 건, 결국 나를 더욱 힘차게 끌어안는 것이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