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생 지인이 로또 2등에 두 번이나 당첨되었다고 해 동생이 물어봤다고 한다.
어떻게 당첨됐냐고. 그랬더니 생뚱맞게도 영감이 오는 번호를 평소 적어두었다 조합해서 구매한다고 했단다.
아침에 동생이 카카오톡을 보냈다. 요즘 아르바이트 하는 사람 구하는 게 쉽지 않다며 내 친구 좀 소개시켜 달라고. 친구는 이미 다른 일을 하고 있는 상태. 야간이라면 내가 하고 싶었지만 아쉬운 마음을 뒤로 하고 말을 삼켰다.
기 승 전, 로또 사자.
요즘 대화패턴이다. 친구든 직장동료든 가족이든 실컷 대화하다 결론은 로또사자.
‘(회사 사장) 신 씨 일가’ 먹여 살리다 늙어죽겠다고 하소연하던 동생은 이런저런 얘기 끝에 이번 주에 로또를 사자고 했다. 자기도 영감이 오는 번호 적어뒀다고. 순간 마시던 물을 뿜었다. 그 영감 오는 번호 나도 좀 알려달라니 미리 알려주면 부정 타 안 된다던 동생은 자기가 살 때 알려준다고 했다.
코로나와 동시에 사업을 시작한 남편은 아직 고전을 면치 못해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최근 오년 새 십년은 늙은 것 같다. 머리숱도 주는 데 흰머리까지 수북이 내려앉아 이제 오십대 초반이건만, 할아버지 소리가 절로 나온다. 여하튼, 남편의 어려움이 남편만의 어려움일리 없다. 제 정신 아닌 사춘기 딸에 가계 빚을 불리며 이어가는 남편의 사업까지. 소위 정상궤도에서 한참 탈선한 우리 가족의 행로가 어디로 이어질지. 이젠 나조차 모르겠다. 늘 남편 책상 위에 놓여있는 복권처럼, 삶이라는 건 애초에 그저 뽑기와 운으로 이루어진 건지도 모르겠다.
그런 느낌. 그러니까 내 삶이 내 통제 밖에 있다는 느낌이 들면서 이 세상에서 내가 원하는 대로 조정 가능한 건 내 마음밖에 없다 생각했다. 하지만 바닥인줄 알았더니 지하도 있더란 어느 선배의 말처럼, 삶은 미처 생각 못한 수렁을 끝도 없이 드러내며 내 마음도 내 마음대로 할 수 없다는 걸 일깨워줬다. 그러자 내뱉는 말과 글, 머릿속에 떠오르는 모든 생각과 의견에 자신이 없어졌다.
산 날보다 살날이 훨씬 적다. 영감 오는 번호는 못 만날지언정, 이 후텁지근하고 무거운 공기에 질식해버릴 것 같은 여름. 가벼워지는 법을 배웠으면 좋겠다. <타인의 고통에 응답하는 공부>에서 저자 김승섭은 ‘이야기 할 수 있다면 슬픔은 견뎌질 수 있다’ 고 했다. 너무 무거운 마음은 표현될 수 없다. 표현에는 용기가 필요하며, 그 용기는 어느 정도 정돈되고 가벼워진 마음에서 나온다.
선선한 가을이 오면 제법 가벼워져 내 이야기가 술술 풀어져, 누군가의 이야기, 누군가의 마음과 진동했으면 좋겠다. 이제, 좀 다르게 바라보자. 그럴 시기가 왔다. 영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