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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희 Mar 05. 2024

있다,

서로를 잇는 다정함

 점심시간. 고등학교 입학 이틀 째. 낯선 환경에서 녀석들이 밥은 잘 먹나 살피러 식당에 갔다. 식판을 들고 빈자리로 성큼성큼 걸어가 앉는 아이 한 명을 제외하고 대부분 배회하다 무리와 조금 떨어져 혼자 급식을 먹는다. 특수학급 9년이면 학교식당에서 밥 정도 먹는 일이야 무심해질 수도 있으련만, 무리에 끼지 못하는 아이들의 얼굴은 늘 쓸쓸해 보인다.

 

 “너 장애인이냐?”

네댓 정도 모인 남자 애들이 서로를 밀치며 농을 하다 눈이 마주치자 머쓱해한다.

 누구야?, 누가 아직도 그런 말을 쓰냐.”

 얘가 다리를 다쳐서요. 죄송합니다.”

     

 고등학교에서 흔히 보는 풍경이다. 애 어른 가릴 것 없이 장애가 있는 아이들을 대놓고 특공대(특별히 공부도 못하면서 대가리만 큰 것들)라 부르던 십 수 년 전에 비하면, 애자, 장애인이라고 장난치다 들켰다고 죄송하다 말하는 아이는 양반이다. 그런데, 무리에 들어가지 못하고 혼자 앉아 밥을 먹던 아이가 그 소리를 같이 들었다. 애들이 장애인이라 부르던 바로 그 아이. 코가 식판에 닿을 듯 고개를 푹 숙인 아이는 말이 없다. 학창시절 내내 맞닥뜨렸을 그런 장면은 아무리 마주해도 무뎌지기 힘들 터.

     

 기다려도 안 보이는 녀석들이 있어 교실로 찾아갔더니 기훈(가명)이가 앞자리에 우두커니 앉아있다.

 기훈아, 밥 먹었어?”

 아니요. 안 먹을래요.”

 왜 안 먹어? 한 숟가락이라도 먹자. 빨리 나와.”

 식당으로 데려가니 녀석이 식판 가득 밥을 푼다. 작년에 가르쳤던 아이의 동생이라 이 녀석이 얼마나 먹성이 좋은지 익히 알고 있다. 덩치가 이렇게 큰 게 혹시 때 넘긴 소나기밥을 자주 먹어 선가, 혼자 생각하다 지민(가명)이가 떠올랐다.

 지민이는 밥 먹었니?”

 아니요.”

     

 부랴부랴 전화를 거니 지민이도 밥을 안 먹겠다고 한다. 조금이라도 먹어야 한다며 으름장을 놓자 못이긴 척 터덜터덜 식당으로 걸어오던 지민이. 상냥하고 착한 녀석인데 얘도 혼자 밥 먹는 게 힘든가보구나. 가라앉는 마음을 추스르며 또 밥 못 먹는 친구는 없나 눈을 들어 고개를 들었다. 순간.

     

 있다. 서로를 잇는 다정한 풍경.

통통. 식판을 들고 가볍게 걷는 정호(가명)와 함께 자리를 찾는 남학생들. 정호가 자리에 먼저 앉게 기다린 후 옆에 앞에 함께 앉는 아이들. 다른 아이들을 챙기고 다시 정호가 있던 자리로 눈이 갔다. 정호를 챙기는 녀석들의 어색한 표정에 다정함이 묻어난다. 어둡던 마음에 빛이 든다.

     

 입학 이틀 째. 처음 만난 아이들이 많아 서로가 서로에게 낯선 고등학교. 주눅 들어 밥도 못 먹는 아이들을 보며 세상 참 안 변하네, 차가워지려는 찰나. 어색한 표정을 지으면서도 삼삼오오 옆에 앉은 정호를 챙기는 아이들의 마음이 따스하게 스민다.

     

 저 동아리 밴드부 들고 싶어요. ”

 뭐 할 건데?”

 기타요. 일렉기타 5년 배웠어요. 중학교 땐 3차 면접에서 떨어졌어요.”

 누가 우리 지민이를 떨어뜨린 거야?”

     

 밥도 혼자 못 먹을 정도로 여린 녀석은 말 안 해도 느낀다. ‘장애라는 옷은 그 아이의 상냥함과 다정함, 때론 실력을 발휘할 기회마저 차단해 버린다는 걸.

     

 정호 옆에 있었으니 지민이가 지원할 밴드부에도 있길 마음 모아 바라본다. 지민이가 입은 장애라는 옷에 아랑곳 않고 지민이의 참모습을 볼 수 있는 속 깊은 친구. 낯설고 어색해도 다정하게 손 내밀 줄 아는 선배. 지민이의 주눅 든 마음을 다정히 토닥여주며 지민이가 무대에서 빛나게 힘을 주는 단 한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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