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처음 영화관에 간 날은 초등학교 4학년 때였다. 집에서 걸어서 10분 정도에 ‘현대극장’이 있었는데, 우리 동네 사람들이 잘 가던 영화관이다. 나는 현대극장에 처음 간 날을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한다.
무더운 여름날 한낮에 우리 집과 붙은 집에 살았던, 나를 귀여워했던 옆집 아줌마는 엄마에게 영화표 한 장을 주면서, “이거 현대극장 초대권이에요. 아는 사람에게 받은 건데, 얘한테 줘서 보고 오라고 하세요. ‘홍콩 영화’래요. 표 준 사람이 재밌다고 했어요.”라고 말했다. 엄마는 표를 건네받으면서 “얘가 혼자 가서 구경할 수 있을까? 극장에는 한 번도 간 적이 없는데. 너, 현대극장에 혼자 갈 수 있어?”라고 나를 쳐다보면서 물었다. 나는 엄마의 얘기를 듣는 순간 “나 혼자 갈 수 있어. 극장에서 우리 반 ‘민철’ 이도 일하고 있어.”라고 말하면서 엄마에게 걱정하지 말라고 당차게 말했다.
나는 옆집 아줌마가 준 표를 주머니에 넣고 곧바로 쏜살같이 ‘현대극장’으로 달려갔다. 나는 영화관에 도착해서 내 가진 표를 입장권과 바꾸기 위하여, 쥐구멍 같은 좁은 창구로 표를 내밀었다. 그런데 내가 표를 창구에 들이 넣자. “이 초대권으로는 안에 못 들어가요. 도로 가지고 가세요!”라고 싸늘하게 말하면서 표를 휙 내보냈는데, 내가 집기 전에 표는 바람에 날려 땅바닥에 떨어졌다. 당황한 나는 얼른 땅에서 주워 들고 아무런 말도 못 하고 울상이 되어 곧바로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엄마와 아줌마 앞에서 대성통곡하면서 울었다.
서럽게 우는 모습에 화가 난 엄마와 아줌마는 나를 달래면서 내 손을 잡고, 극장으로 갔다. 현대극장에 도착해서 좁은 구멍 안으로 초대권을 다시 들이밀면서 소리쳤다. “왜 이 표 안 받는 거예요? ‘아이’라고 무시하는 거예요?”라고 나와 같이 간 어른 두 사람이 따지고 들었다. 그 말에 작은 구멍 안에서는 “이 표는 할인권이에요. 그래서 5원 더 내야 하고, 날짜도 어제로 지났어요.”라고 말하는 것이 아닌가. 표을 받아서 다시 자세히 읽어 보니 큰 글씨로 초대권이라고 썼지만, 실제로는 초대권이 아니고 5원을 같이 내야만 들어갈 수 있는 할인권이었으며 마감일도 어제 날짜였다. 그 속에서 다시 말소리가 흘러나왔다. “날짜 지난 것은 우리가 봐줄게요. 그냥 5원만 내고 들어가세요.” 아줌마는 주머니에서 돈을 꺼내어 구멍에 넣었고, 영화표를 받아서 나를 극장 안으로 들어가게 했다.
나는 신이 나서 극장 안으로 들어갔다. 복도를 지나 영화를 상영하는 입구를 찾아 조심스럽게 출입문을 열고 있는데, 우리 반 ‘민철’이가 극장 복도를 서성이다 나를 보더니 “너, 혼자 온 거야?”라고 물었고, 나는 여유 있게 “어, 혼자 왔어.”라고 말하면서 어두운 상영관 내부로 들어갔다. 그런데 영화는 상영되지 않았고, 컴컴한 안에서는 사람들이 웅성웅성하는 소리만 들렸다. 잠시 후에 민철이가 좌석에 앉아있는 나에게 다가오더니 내 귀에 입을 가까이 대고 “전기가 나갔대. 근데 좀 기다리면 들어올 거래.”라고 말하는 게 아닌가. 민철이는 칠흑 같은 컴컴한 상영관 안에서 나를 어떻게 금방 찾았는지 궁금했다. 안에서는 사람들이 뜨문뜨문 앉아서 잡담하거나, 몇 사람은 뒤쪽에 있는 영사실을 쳐다보며 소리를 질러댔다. 이러기를 한참 지났는데, 민철이가 다시 나에게 와서 “곧 영화 다시 시작할 거래.”라고 속삭이면서 지나갔다. 그때서야 중단되었던 영화가 다시 상영되기 시작하였다. 스크린에 화면이 켜지자 사람들이 반가워서 손뼉을 치는 소리가 들렸다. 나도 따라서 신나게 박수를 쳤는데, 친구는 문 옆에 가만히 서 있었다.
민철이는 현대극장에서 껌도 팔고 잔심부름도 하면서 돈을 벌고 있었다. 아파서 누워있는 엄마와 둘이서 살면서 학교에서는 주눅이 들고 눈치를 보는 아이였지만, 극장에서는 어른처럼 보였다. 나는 아직도 극장에서 내 손에 껌 한 개를 슬쩍 건네주던 민철이를 생각하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