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해먹겠으니 퇴사하고 유학 가겠습니다
자기 전공을 좋아했던 학생
돌이켜 생각해 보면 나는 학부생 때부터 심리학을 정말 좋아했다. 사실 처음부터 심리학에 뜻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우리나라의 수험생들이 으레 그렇듯 그저 모의고사 성적이 나왔고, 모의고사 성적과 내신, 그리고 다양한 입학 전형들을 확인하여 갈 수 있는 학교와 학과들의 목록이 어느 정도 정하고 그중에서 흥미로워 보이는 과를 선택하여 입학했을 뿐이다.
운이 좋게도 나는 심리학과 꽤 잘 맞았다. 심리학을 공부할수록 예전에는 "왜 저래..."라고 생각했던 사람들의 행동도 이해하며 나 자신도 성숙해질 수 있었고, 사람들이 무리 지어 살아가는 그룹에서 일어나는 조직 생리를 이해하는 것도 너무 재미있었다. 남들이 모두 하는 복수전공도 하지 않았고 졸업까지의 학점이 차고 넘쳤음에도 4학년 2학기까지 들을 수 있는 최대 학점까지 심리학 수업에 모조리 투자했던 것을 보면 얼마나 심리학을 좋아했는지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으리라.
학부를 심리학에 대한 열정을 안고 자대 석사 과정에 입학하였고 무난하게 졸업할 수 있었다. 그리고 나는 정말 운이 좋게도 졸업한 지 3개월도 지나지 않아 한국에서 내로라하는 기업에 합격하여 일할 수 있었다.
회사에서 성공해야지!
회사에 입사 후 정말 정신없는 회사 생활을 보냈다. 신입에게도 업무적으로 자비가 없는 곳이었기 때문에 부서 배치받은 지 두 달이 지나기도 전에 8시에 출근해서 9시에 퇴근하기 바빴다. 드라이클리닝을 맡길 옷들이 쌓여갔지만, 집 근처 세탁소가 밤 9시까지만 운영하는 바람에 평일에는 갈 엄두조차 내질 못했다. 내가 할 업무를 맡았던 선배는 공유 폴더 확인하면 다 나와있다며 1시간 정도 구두로 인수인계를 해주고 장기 어학 교육에 들어가 버렸다. 사수는 메일에 작성된 문장의 주술 관계가 이상하다면서 메일을 6번이나 다시 보내게 했고 메일의 수신인을 직급/연차 순서에 맞춰 보내지 않으면 선배들에게 개념이 없다며 된통 혼이 났다. 나름 글로벌 기업이라는 회사의 보고서에는 2020년대라는 말이 무색하게 온갖 한자가 난무했고 사람들은 아직도 보고서의 행/자간을 맞추는데 열을 올리고 있었다.
이런 분위기와 업무 강도가 힘들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부서 특유의 수직적인 분위기를 모르고 입사한 것도 아니었고 업무적으로 힘든 느낀 부분은 '내가 모자라기 때문에'로 치부할 수 있었으니 괜찮았다. '내가 신입이니깐 원래 있었던 선배님들 마음에 안 들겠지. 지금보다 더 야근하고 더 열심히 하면 빨리 나아질 수 있을 거야.'라는 마인드로 버틸 수 있었다. 사실 맡았던 업무도 꽤 재미있었고 남들이 다 오고 싶어 하는 잘 나가는 회사에서 일한다는 자부심도 들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이 모든 것을 뒤로하고 퇴사를 본격적으로 마음먹게 되었다.
회식, 회식, 회식, 저 진짜 못하겠어요.
회사에 와서 가장 크게 느꼈던 점은 이 회사 조직은 술과 회식을 정말 끔찍하게 사랑한다는 것이었다. 입사 3개월 동안의 회식 빈도는 주 2.5회 이상이었다. 심지어 이태원 참사 추모 기간이라 회사 차원에서 자중하라는 공지가 내려왔음에도 술 먹으러 가자고 선배들에게서 연락이 왔다. 이전 직장에서 친하게 진해던 선배들과 동료들은 무슨 회식을 그렇게 많이 하냐며 놀라워했다. 그렇다고 회식이 일찍 끝나냐면 딱히 그것도 아니었다. 회식하고 9시에 끝나면 감사할 지경이었고 보통은 오후 11시 즈음에 끝났으며 늦게 끝날 때는 새벽 2~3시 즈음에 끝이 났다. 회식자리에서는 딱히 건설적인 이야기를 하는 것도 아니고 주로 리더급의 자기 자랑과 그들을 향한 선배들의 사회생활이 대화의 주를 이루었다. 분명 회사는 역대급 다운턴이라고 직원들 성과급도 못주고 연봉 인상도 거의 못한 걸로 알고 있는데 도대체 어디서 이렇게 회식할 돈이 쏟아져 나오는지 의문이 들었다.
문제는 내가 위장이 약해 술을 잘 마시지 못한다는 점이었다. 술을 마시면 배가 너무 아파 그다음 날 업무는 고사하고 하루종일 화장실 변기 위에서 살아야 했으며, 가끔씩 무리한 날은 피가 섞여 나오기도 했다. 처음에는 무리해서라도 회식에 다 참여하고 술을 많이 마셨는데, 회식 이후 한 번은 집에서 토할 때 피가 섞여 나오는 것을 보고 술을 마시지 않기로 결심했다. 그러나 내가 술을 먹지 못하는 이유에 대해 입이 마르고 닳도록 설명해도 그 누구도 내 말을 믿어주지 않았고 어느 순간 나는 선배들에게 '회식 자리에서 술 빼는 재미없는 신입'이 되어있었다.
퇴사하고 유학가겠습니다.
회사 자체가 술 문화 중심으로 돌아가다 보니 여기에 계속 있다가는 과로나 성인병 둘 중에 하나로 건강을 해칠 것만 같았다. 건강도 건강이지만 이 회사에서 일하면서 있는 10년 후의 나의 모습이 도저히 희망적으로 그려지지 않았다. 일을 잘하는 선배들은 모두 워라밸 없이 엄청난 양의 업무량으로 '갈려나가'고 있었고 리더급은 늘 회식에 불려 다니기 바빴다. 회사 내에서 도저히 닮고 싶은 선배를 찾을 수 없었다. 와중에 머리는 굳어가서 매일 멍청해지는 기분도 들었다.
어느 날 문득 이렇게 사는 게 전혀 행복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따박따박 통장에 꽂히는 월급이 주는 안정감은 대단했지만 그뿐이었다. 아무런 꿈도 없이 주말만 되면 힘들어서 그냥 멍하게 누워있는 나를 발견할 때마다 자괴감이 들었다. 이럴 때마다 취직 전에 즐겁게 했던 전공 공부와 한때 꿈꿨던 미국으로의 박사 유학도 계속 생각이 났다. 결국 이렇게 사는게 싫었던 나는 "한 번 사는 인생 못해보는 것 없이 다 해보고 가자!"라는 생각으로 30살을 넘긴 나이에 유학을 준비하게 되었다.